[서영옥이 만난 작가] 사진작가 김상희...멀찍이 물러나 바라본 성당, 겹겹이 쌓인 숭고함
[서영옥이 만난 작가] 사진작가 김상희...멀찍이 물러나 바라본 성당, 겹겹이 쌓인 숭고함
  • 황인옥
  • 승인 2018.03.29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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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사이 숨겨진 성전처럼
대상서 멀찍이 떨어져 촬영
안정적 구도와 흑백톤 활용
숭고한 종교적 느낌 극대화
현대인에 종교의 참뜻 전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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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공간’ 시리즈 작.

어떤 일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을 ‘바람’이라고 한다. 바람은 늘 진행형이다. 불어야 생명을 부여받는 바람을 멈추게 할 재간이 인간에게는 없는 듯하다. 하여 작가는 바람결에 성소聖所를 찾는다. 성소에서 아득히 멀어져간 시간을 끌어당긴다. 당겨진 시간엔 중세 천년의 역사와 현재의 시·공간이 공존한다. 사진작가 김상희의 사진은 그것을 품고 있다.

사진은 곧 작가와 피사체와의 관계 맺음이다. 피사체는 의식이 반영된 작가의 다른 모습이기도 하다. 김상희가 지금까지 관계 맺은 피사체에는 종교적 교의敎義가 스며있다. 지난 2013년 3회 개인전(CU갤러리)<침묵의 공간>뿐만 아니라 그의 작품은 대부분은 성당이 주요 테마이다. 3회전이 성당내부에 집중하였다면 2017년에는 성당의 외양 중에서도 십자가를 중심으로 한 첨탑과 그 주변부에 주목했다. 그의 이런 사진은 기록이 아니다. 사실을 알리거나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기 때문이다. 김상희에게 사진은 현실경의 전달이 아닌 ‘느낌感’의 기록이다. 신심이 반영된 그의 이러한 작업은 16년 전부터 꾸준하다.

작가는 2002년부터 성당 여러 곳을 순례하였다. 익산의 나바위 성당을 비롯한 가실성당과 계산, 공세리, 범어, 성주, 목성, 용소막, 옥수, 전동, 합덕성당과 왜관 베네딕도 수도원 등 다양하다. 그의 발길엔 ‘기도의 집’을 체험하기 위한 의도가 전제되었다. 카메라에 담는 것은 그 다음 차례다. 그는 작가이기 전에 신자이기 때문이다. 하여 김상희가 포착한 성당은 ‘기도의 집’으로 봄이 옳다. 제목이 바람에서 ‘바람望’으로 치환된 이유이다.

흑백으로 일관되어온 그의 사진은 현란한 색채를 모두 버렸다. 구도는 안정적이고 원근법과 무게중심도 적당하다. 집과 나무의 조합에서는 작가의 내면이 고스란히 읽혀진다. 100년이 넘도록 또바기 한 자리만 지켰을 고목은 인고의 세월에 견주어진다. 고목은 굽거나 곧게 뻗은 잔가지들을 천지사방으로 내보낸다. 혈관 같은 잔가지들 사이로 살포시 ‘기도의 집’이 드러난다. 성스러운 집은 화면을 박차고 나와 우리의 시선을 압도할 법도 한데 나무 뒤나 곁에서 제 모습을 감춘다. 집체 곳곳엔 바람望결에 실려 온 신심이 붙박여 있다. 저녁 답엔 하루를 성찰하는 기도의 종소리 울리지 않았을까.

엄숙하고 경건한 그 풍경 속을 자분자분 드나들었을 수도자들, 그 곁에서 심신을 조아렸을 작가는 성당과 자신을 겹겹이 포갠다. 바람望결에 성전에 들어 경건하게 성호를 긋고 잠시 묵언의 두 손도 모았을 것이다. 그 시간만큼은 사진가가 아닌 오롯이 신의 피조물이지 않았을까. 작가는 평화와 떨림의 공간에서 십자가 위의 예수와 하나 될 만큼의 가까운 거리를 유지하지 못하였다. 관망할 만큼의 거리에서 주主의 몸 전체를 카메라 줌으로 밀고 당긴 것은 아마도 신을 향한 존경심과 경외심이었을 것이다.

알프레드 스티글리츠(Alfred Stieglitz 미국 근대 사진의 아버지)가 “나는 구름을 통해 내 삶의 철학을 기록하고 싶다.”고 하였듯이 김상희도 성당이라는 피사체를 통해 삶의 철학과 신심을 표면화 한다. 어쩌면 현실을 초월하는 염원 몇 곡절이 더 추가됐을지도 모르겠다. 사진 위로 흐르는 잔잔한 감성이 그렇다. 자신만의 내적 영상을 피사체에 투사하고 영혼의 성화를 실현하려는 의도였으리라. 이러한 종교적 본의에 접근할 때 그의 성당은 현실과 이상계(또는 영원한 세계)의 가교가 된다.
 

10공세리성당
‘침묵의 공간’ 시리즈 작.

감실龕室을 모신 성당은 삶과 죽음이 공존하면서도 이미 그 경계가 소멸된 곳이다. 죽음을 통해 더욱 생생해진 신의 존재가 살아있는 곳이다. 성당은 육성의 설교와 침묵의 가르침이 동시에 유효한 곳이다. 당신의 전부를 사랑으로 바친 신의 섭리를 통해 존재에 대한 감사가 지극해지는 곳이기도 하다. 미술사는 성당 설립의 출발점을 311년 콘스탄티누스Constantinus 황제가 기독교를 국교로 정한 이후로 기록한다. 중세 교회는 천년이란 긴 세월 동안 로마네스크와 고딕이라는 거대한 건축양식을 낳았다. 김상희의 사진에서도 이와 같은 건축양식이 확인된다. 그중에서 가장 두드러진 것은 비잔틴 건축양식이다. 장식이나 치장보다 의미와 본질에 더 충실했던 이집트인들처럼 김상희의 사진에 응축된 교의도 이집트인의 미술을 닮았다. 흑백으로 일관된 화면은 담백하다. 첨탑 위의 십자가는 상징성을 보충한다.

다년간 검프린트와 판화기법의 혼용을 실험한 김상희는 사진 특유의 기계적인 맛보다 회화적인 미감을 획득하는데 성공하였다. 상당한 인내와 노력이 담보된 사진과 판화기법의 결합이다. 디테일한 묘사보다 ‘느낌’전달에 더 효과적인 이 기법은 과정이 까다롭고 긴 시간을 요한다. 기존의 사진이나 판화처럼 복수제작을 기대할 수도 없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작가는 가림 속의 빛을 통해 좌표를 상실한 현대인에게 종교가 가져야 할 몫을 전달한다. 나아가 사랑의 신을 표본 삼아 어둠 속 그 너머를 보게 한다. 체념과 상실이 아닌 수렴이 곧 김상희의 바람望이다.
 

 

프로필
 

김상희
계명대학교 디자인대학원 졸업, 안동예술의 전당·시안미술관·예담갤러리 등 초대전 3회, 대구고토갤러리, 우봉미술전시관, CU갤러리 등 개인전 5회, 동양대학교·대구대학교·경운대학교 강사 역임, 현 현대사진영상학회 회원·한국사진작가협회회원·대구사진대전 초대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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