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한 유리에 박제된 욕망… 아트스페이스 펄 초대작가 공병훈
투명한 유리에 박제된 욕망… 아트스페이스 펄 초대작가 공병훈
  • 대구신문
  • 승인 2018.03.29 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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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 가방·시계 등 사치품

밝은 색으로 투명하게 표현

인간 욕망 간접적으로 담아
공2
공병훈


작가 공병훈이 성인이 되자 전에 없던 고민에 빠졌다. 미술 작품을 관람하는 사람들의 엄숙한 태도가 눈에 자꾸만 거슬려왔다. “레오나르드 다빈치의 ‘모나리자’나 밀레의 ‘만종’은 아름답잖아요? 그런데 왜 다들 거룩하게만 바라보는지 안타까웠어요.” 그가 문제점을 콕 집어 말하자 도서관보다 더 엄숙한 미술관이나 갤러리의 풍경이 떠올랐다.

“중학교 때부터 선생님의 권유로 그림을 보러 갤러리를 찾아 다녔어요. 그때 작품을 보며 어린아이처럼 좋아했었죠. 그런데 저 마저 성인이 되고 나니 그림 앞에서 엄숙해졌죠.”

공병훈은 미대생 시절, ‘어떤 미술을 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했다. 이런저런 상념이 오고가던 차에 문득 신념 하나가 번뜩였다. “사람들이 친숙해하는 그림을 그리자”는 것. 때로는 무거운 주제일지라도 가볍거나 친근하게 풀어내며 사람들과 소통력을 높이겠다고. 그러자 어느 것이 먼저랄 것 없이 명화와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동시에 떠올랐다. “누구나 편하게 제 작품을 보게 하고 싶었어요. 제가 중학교 때 동심으로 작품에 빠진 것처럼요.”

대학 졸업 후 첫 작업에 고전명화와 애니메이션 캐릭터 피규어를 혼용했다. 레오나르드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에 미국 만화 캐릭터 스머프와 일본의 소닉과 짱구, 한국의 뽀로로, 게임 캐릭터 앵그리 버드 등을 예수와 열두제자를 대체하는 식이었다.

고상하고 엄숙한 고전과 가볍고 친숙한 현대 캐릭터와의 만남은 친근하게 다가가는 요건에는 절절했지만 내용면에서 ‘적잖은 충돌’을 낳았다. 고전명화와 대중적인 캐릭터가 뒤섞이면서 본래의 의미가 퇴색되어 간 것. 남은건 외적 형식뿐이었다. 이 부조화는 시대의 정체성, 진정성, 또는 몰개성에 대한 작가의 우회적 비판이자 풍자였다.

“규정된 틀이나 형식을 강요하는 사회의 요구가 억압으로 다가왔어요. 미술도 다르지 않았어요. 미술은 개성을 추구하는 흥미로운 작업인데 정해진 틀을 요구하는 현실이 버거웠죠. 그때의 심정을 접근하기 쉬운 대중적인 캐릭터와 고전 명화로 풀었어요.”

최근 시작한 전시인 아트스페이스 펄에 소개된 작품은 ‘누구를 위한…’ 연작이다. 명품 가방과 시계, 넥타이를 화사한 파스텔 톤으로 속이 훤히 들여다 보이도록 표현했다. 마치 얼음이나 유리에 쌓인 것 같은 효과다. 화사한 색채감과 속이 훤히 비치는 표현법은 인간의 물질에 대한 욕망의 상징화화다.    

“얼음이나 유리에 박제된 것처럼 표현한 사치품을 욕망으로 점철된 우리의 자회상에 은유했어요.”

명품 가방이나 시계는 성공의 척도다. 현대인은 성공해서 주류가 되기 위해 죽을 힘을 다한다. 비주류로 전락하지 않으려는 발버둥이기도 하지만 행복이 그곳에 있다는 믿음도 한몫한다. 작가는 욕망의 노예로 전락한 인간을 향해 나긋나긋한 이미지로, 그러나 단호하게 말을 건다. “당신은 어느 지점에서 어떻게 행동하고 있으며, 과연 누구를 위해 그렇게 하고 있느냐”고.

symbolical
공병훈 작 ‘symbolical’


“‘당신과 내가 진지하게 우리의 욕망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해 볼까요’라고 말을 건네고 싶었어요. 엄숙한 어법이 아닌 친근한 말투로 편안하게 지금 우리의 문제를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고 싶었죠.”

몇 백년 전의 고전명화는 사실 버거웠다. 과거의 고전을 현재를 사는 그가 완벽하게 이해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래서 현대의 문제로 주제를 변화했다. 현대인의 물질에 대한 지나친 욕망과 그로 인한 불안요소들로 이야기를 풀어냈다.

현제의 문제로 주제를 돌렸더니 많은 것이 변했다. 표현법도 강렬함에서 화려함으로 변화하고, 과거와 현재가 주는 괴리감도 사라졌다. 그러나 여전히 고수하는 한 가지는 있다.

“생각의 변화에 따라 표현법도 변하지만 사람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고 싶은 것은 변하지 않아요. 진지한 이야기지만 때로는 농담처럼, 때로는 보들보들하게 다가가고 싶었죠. 사람들이 어린시절 가졌던 동심의 마음으로 작품을 대할 수 있도록 말이죠.”

남채은과 함께 청년작가전으로 초대된 공병훈의 전시는 아트스페이스 펄에서 4월 15일까지. 053-651-6958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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