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마리의 빚, 한 마리의 희망
천 마리의 빚, 한 마리의 희망
  • 승인 2018.04.01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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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윤 시인
1998년 6월과 10월, 현대그룹 고 정주영 명예회장이 1001마리의 소떼를 몰고 북으로 올라갈 때의 장면은 잊을 수가 없다. 그의 고향은 북한의 강원도 통천군 아산리라고 한다. 그곳에서 그는 17살이 되던 해 부친의 소 판돈 70원을 훔쳐 가출해서 지금의 현대그룹을 이루었다. 얼마나 그에게 큰 빚으로 남았을까. 1992년부터 그는 이미 70만평 규모의 충남 서산 간척지에서 현대 서산농장에서 소를 방목하고 있었다. 이 역사적인 사건은 단순한 우발적이나 돌발적인 이벤트가 아니란 이야기다. 소 500마리가 50대의 트럭에 실려서 판문점을 넘어설 때 남과 북이 하나 될 희망을 보았다. 당초 계획된 천 마리의 소에서 한 마리가 덧보태 진 것도 통일에 대한 염원과 남과 북의 희망을 담았다고 밝힌 바 있다. 이를 두고 정치적인 해석을 하는 이도 있었고, 현대그룹의 경제적인 부가가치를 위한 노림수였던 것으로 보는 이도 있었다. 어찌되었던 그런 명분들은 아무 의미가 없다. 우리의 역사를 돌아보면 사모관대를 두른 자들의 명분이 얼마나 많은 패를 나누고 그들의 붓은 죽창이 되어 민족의 한(恨)으로 남은 사화(士禍)가 얼마나 많았던가.

2000년과 2007년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고 김대중 대통령과 고 노무현 대통령과 남북 정상회담을 가진 바 있다.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유일의 분단국가가 대화를 통해 독일처럼 벽을 허물 수 있으리란 기대를 가질 만한 사건이었다. 하지만, 열혈 우국 인사들이 마치 남한을 통째 북한에 상납이라도 하는 것처럼 원색적인 비판을 일삼기도 했던 기억도 뚜렷하다.

여기에서 우국(憂國)의 의미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이야 얼마나 아름답고 숭고한가. 하지만, 북한이라고 하면 무조건 대놓고 헐뜯는 병폐는 사라져야 한다. 이미 북한은 국방백서에서도 사라진 주적(主敵)이 아니다. 우리의 민족이고 한 겨레다.

2018년 4월 27일에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이 평양에서 판문점 인근까지 이동한 후 걸어서 군사분계선(MDL)을 넘어 남한 땅을 밟는다. 문재인 대통령이 2007년 당시 정상회담 준비위원장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의미는 더욱 남다르다고 할 수 있다. 남북의 경계 포장도로 위에 ‘노란 선’을 긋는 묘안을 통해 고 노무현대통령의 북한 땅 밟기에 극적인 효과를 성공시킨 바 있기 때문에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어떤 극적인 장면을 연출하게 될지 기대하는 바가 크다.

고 노무현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의 순수한 의미를 이벤트화하지 말라는 지시를 내렸지만, 감동을 더하는 방법론적인 면에서는 다양한 방법을 재고(再考)해보는 것도 방법이다. 독일이 45.1km의 베를린 콘크리트 장벽을 허물 때 베토벤의 9번 교향곡 ‘환희의 송가’가 베를린 시내 한복판에 울려 퍼졌다. 레오나드 베른슈타인(Leonard Bernstein)이 지휘한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은 서독과 동독 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모인 혼성팀이었다. 이들은 동서냉전의 상징인 베를린 장벽의 붕괴를 축하하기 위해 보인 사람들이었다. 합창단은 ‘환희’를 ‘자유’로 개사해서 불렀다. 얼마나 감동적이었던가.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이 체결되어, 총성은 멎었지만 한반도는 허리를 접었다. 반 토막 난 남과 북은 이후 수없이 많은 도발과 대응을 반복해온 것을 부정할 필요는 없다. 도끼만행사건, 각종 땅굴 발견 등 제목만 들어도 섬뜩한 일들이 어느덧 반백년이 지났다. 그 외에도 크고 작은 사건 사고는 헤아릴 수조차 없다. 그로 인해 피해를 입은 군인들과 유가족들은 물론이고 연평도의 주민들은 북한의 도발을 용서할 수도 없을 것이고 이해할 수 없을 지도 모른다. 그에 대한 반감을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을까. 그러나 분명한 건 북한에도 선량한 주민들이 병마의 고통과 빈곤으로 지옥 같은 나날을 보내고 있다는 점이다. 한겨울에도 사금을 채취하기 위해 얼어붙은 압록강에 손발을 담그는 그들도 우리의 형제자매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2018년 4월 27일, 남과 북은 탁상공론에 그쳐서는 안 될 일이다. 양측의 최고지도자의 만남인 만큼 뚜렷한 회담성과를 거둬야 한다. 3차 남북정상회담이라는 명칭은 잘못된 표현이다. 민족 숙원사업의 성과를 도출하는 데, 차수는 의미가 없다. ‘2018 남북 정상회담’은 가식의 탈을 서로 벗어 던지고, ‘통일’을 향한 염원만으로 마주해야 한다. 주변 강대국들의 하수인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서는 안 된다. 해마다 생존자가 줄어드는 이산가족 상봉도 더 이상 미루어서는 안 된다. 만주 벌판을 호령하던 백두산의 호랑이가 이제 접힌 허리를 펴야할 때가 도래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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