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귀향(歸鄕)
[문화칼럼] 귀향(歸鄕)
  • 승인 2018.04.03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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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국(수성아트피아 관장)


벚꽃이 한창인 초봄의 통영은 온 도시가 화사하다. 도다리 쑥국, 멍게 비빔밥 등 온갖 맛난 먹거리도 풍부해 이맘때쯤 펼쳐지는 통영국제음악제를 즐기기 위한 발걸음이 더 가벼워진다. 그러나 올해 마주한 이곳의 모습은 예년과 사뭇 다른 느낌이다. 지난달 30일 2018통영국제음악제 개막공연에 앞서 열린 작곡가 윤이상 선생의 유해 안장식으로 인하여 도시가 시끄러웠다 한다. 세계적 작곡가인 그가 평생을 두고 그리워한 고향에 사후 23년 만에 돌아와 묻히게 된 것을 두고 그를 추모하는 마음과 이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한꺼번에 터져 나온 것이다.

윤이상의 예술적 성과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그는 세계 현대음악사에 큰 획을 그은 사람이며, 윤이상이란 존재로 인해 통영이 유네스코 음악창의도시에 선정될 수 있었다. 그는 통영에서의 어린 시절부터 접해온 다채로운 민속음악, 한국과 중국의 궁중음악 그리고 그가 심취해온 도교와 불교사상을 작품 속에 녹여 넣었다. ‘우리가 모차르트, 베토벤의 음악을 들으면 금방 누구의 작품인지 알 수 있는 것처럼 윤이상의 작품을 가만히 듣노라면 곧 그의 음악임을 알 수 있다’는 것이 음악계의 중평이다. 윤이상은 모든 가능성이 열려있는 현대음악의 조류 속에서 자신만의 정체성과 독창성을 가진 음악언어를 찾아 확립한 거장이다.

그 자신이 과거 유명한 ‘동백림 사건’의 피해자이기도 했으며 뜨거운 인류애를 가진 사람이자 예술을 통한 현실 참여자이기도 하다. ‘음악이란 유토피아적 공상에서뿐만 아니라, 사람과 함께 살아야 하며, 또 멀리 있지 않아야 한다’고 말한바 있다. 그런 한편 친북행적으로 인하여 의혹을 받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전후 독일의 가장 뛰어난 작가인 ‘루이제 린저’로부터 ‘상처 입은 용’으로 불렸던 윤이상은 생전에 이렇게 말했다. ‘한 번도 잊은 적 없는 내 고향 통영바다가 바라보이는 곳에서 파도 소리 들으며, 자장가처럼 듣고 싶다. 죽고 싶다. 묻히고 싶다’ 그의 묘소는 바다가 보이는 통영국제음악당내 언덕위에 자리했다.

2018통영국제음악제 주제는 ‘귀향’이다. 이념의 벽을 넘지 못하던 상처입은 용의 귀향을 우리 사회는 받아들였고 음악제 프로그램도 이에 걸맞게 구성했다. 가장 핵심적 작품은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를 텍스트로 작곡한 몬테베르디의 오페라 ‘율리시스의 귀환’과 동시대 조선의 전통 가곡을 결합한 뮤직 시어터(음악극) ‘귀향’이다. 두명의 성악가와 한명의 전통가곡 연주자가 극을 이끌어 가는 주인공이다. 반주는 베를린에서 결성된 솔리스트 앙상블 칼라이도스코프(Kaleidoskop)와 대금, 거문고 그리고 해금과 타악으로 구성된 국악연주가 함께했다. 원전악기를 다루는 솔리스트 앙상블의 뛰어난 연주와 우리음악이 잘 어우러진다.


동서양의 다른 음악을 버무려 만들어 내는 음악극은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 런웨이처럼 길고 좁게 만들어진 무대 양쪽에 따로 자리잡은 검은 옷, 검은 눈 화장의 서양악기 앙상블과 한복과 두루마기를 곱게 차려 입은 전통악기 연주자들은 서로 다른 문화와 이념을 상징하는 듯 했다. 초반부 너무나 이질적인 바로크 음악과 조선 전통가곡을 따로 교차하듯이 연주하고 노래하던 그들은 놀랍게도 극의 진행에 따라 서로의 음악을 바꿔 연주하기도 하고 주인공과 반주자들이 한데 섞여 연주와 동작을 만들어 나가기도 했다. 율리시스를 20년째 기다리는 페넬로페의 마음을 황진이의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허리 베어 님 오신 날 굽이굽이 펴겠다’는 가곡으로 표현함은 절묘했다.

뮤직 시어터 ‘귀향’은 음악적 성과와는 별개로 여러 가지를 시사한다. 율리시스가 트로이로부터 불과 500해리 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그의 집 이타카 섬으로 돌아가기 까지 걸린 10년 세월은 거장의 지난했던 귀향길을 떠올리게 한다. 마침내 두 사람은 만났지만 너무나 변해버린 모습에 페넬로페가 자신을 알아보지 못해 괴로워하는 그에게서 윤이상의 절망과 아픔이 느껴진다. 두 사람이 예전과 같이 돌아 갈 수 없음은 세상의 아픔과 고통이 쉽사리 치유 될 수 없음을 말하는 듯하다. 하지만 대척점에 있던 동서양의 음악과 악기 그리고 연주자들이 함께 뒤섞여 만들어 나가는 음악극은 우리더러 따로놀지 말고 함께하라, 화합하여 새로움을 창조하라 그리고 열린 눈으로 세상을 보라고 노래하는 것 같다.

며칠 전 평양에서 우리 예술단의 공연이 있었다. 이를 보면서 기대감과 더불어 마음이 매우 착잡했을 사람들이 있다. ‘더 늦기 전에 이들의 귀향도 허하라 그래야 내가 여기에서 편히 쉴 수 있겠다’라는 상처 입은 용의 으르렁 거리는 소리가 해무 가득한 통영 바다에서 들린다. 환청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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