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바쳐 일한 사람들을 기리며…
몸 바쳐 일한 사람들을 기리며…
  • 승인 2018.04.05 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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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선 대구교육대
학교 대학원아동문
학과 강사
벚꽃 흐드러지게 피어나려던 3월 30일, 충남 아산 국도에서 유기견이 차도에 있다는 신고를 받고 구출 작업을 위해 출동하던 소방관 세 명이 25톤 트럭에 치여 숨졌다. 버려진 개나 고양이가 도로에서 방황할 경우 그들의 생명도 생명이지만 자칫 교통사고를 일으켜 대형사고로 이어질 염려에 소방 인력이 달려간 일이 비극을 불러왔다. 특히 숨진 29세 소방교(消防校)는 부부소방관으로 신혼 4개월 된 새댁이요, 임용 예정 실습생 2명 역시 꽃다운 나이에 당한 비보였으니 소식을 들은 온 국민들 가슴이 뭉그러져 내려앉았다. 그렇잖아도 우리들 가슴에는 세월호 참사로 죽어간 꽃다운 아이들이 묻혀있는데…. 3월 마지막 날의 비보는 잔인한 4월을 떠올리게 하고 다시 한 번 우리들 앞에 놓인 위험들 앞에 몸을 떨게 한다.

위험은 언제, 어느 곳에나 도사리고 있지만 소방 업무 특성상 안전을 보장받지 못하는 환경에서 일하고 있는 이들의 노고를 새삼 돌아보게 된다. 불이 났을 때는 물론이고 집에 문이 잠겼을 때, 사람이 많이 다니는 곳의 나무꼭대기에 말벌집이 달려있을 때, 누가 기르던 강아지가 길에서 방황할 때, 급하게 병원으로 가야할 긴박한 순간에 119 소방대원은 우리에게 슈퍼맨처럼 달려와 주었다. 2015년 메르스가 휩쓸 때도 그랬다. 메르스 의심환자를 119 앰뷸런스에 태우고 병원 의사와 간호사들과 함께 뛰며 전염에 몸을 사리지 않았다.

그런 봉사와 희생의 삶을 살아보겠다고 소방관이 된 이들의 죽음인 만큼, 이들의 죽음을 높이 여겨 옥조근정훈장을 내리고 16일 정식 임용을 앞두고 있던 두 교육생에게도 직무수행 중 숨진 것으로 보고 순직 처리 해준다니 국민들로서는 비통한 마음들을 조금이나마 추스르게 된다. 2016년 8월에 국민안전처에서 정책 설명 자료를 통해 암 투병 공무원이 최초로 ‘공상 승인’을 받았다는 발표를 한 탓일까? 순직 처리에 너그러운 사회가 되어감이 반갑다. 그전까지는 소방관이 화재 진압 현장에서 유독가스를 들이마셔 불치의 병이 되어도 공무 중 부상 처리를 받기 쉽지 않았다. 목숨 바쳐 일하다 죽어도 순직처리마저도 인색해온 사회였다.

김승섭 의학박사가 2017년 9월에 출간한 ‘아픔이 길이 되려면’ 책을 보자면 그런 사례가 너무나 많다. 특히 소방관 일로 압축해 봐도 그렇다. 2015년 9월, 이 모 소방관이 경남의 한 농가에서 말벌 집을 제거하는 일을 거들다가 말벌에 왼쪽 눈이 쏘여 과민성 쇼크로 사망했을 때도 ‘말벌 퇴치 작업’은 위험직무가 아니어서 순직이 아닌 공무상 사망으로 본다고 결정내린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후 법에 기대어 겨우 승소했지만 2016년 4월, 한 소방관은 혈액암으로 투병하며 공상을 인정받기 위해 소송을 제기했지만 소송 중 사망하자 순직이나 공무상 사망으로도 인정받지 못한 채 평생 고귀하게 일한 삶이 덧없이 묻혀 버렸다. 이를 봐도 2016년 이전에는 화재현장에서 유독물질의 영향을 직접 받는 코와 인두에 생긴 비인강암으로 투병 중인 소방공무원에게 공상으로 치료를 받게 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지방직 소방관들이 설문 조사한 결과를 보면, 우울증, 불면증, 수면 장애, 전신 피로에 시달리며 일반인한테 폭행당하고 여소방관들은 성희롱을 당하고 상부에 보고해도 후속 조치가 없는 열악한 환경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이런 고충은 초·중·고등학교에서 학생의 생활지도를 위해 밤낮 없이 일하면서도 학부모와 학생들의 폭력 앞에서는 같이 싸우고 주먹질할 수 없는 직업이라 속절없이 당하기만 하는 교사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이를 비롯하여, 환경 조건이 나쁜 일터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고충은 이루 말할 수도 없겠거니와 깨끗한 병원에서 주당 120시간 이상 일해야 하는 전공의에게도 우울증상은 심하다. 가까이에서 지켜봐도 그렇다. 집에 와도 잠잘 시간이 부족하여 12시에 들어와 쓰러져 자다 새벽같이 출근하고, 7~8시간씩 수술이 길어지면 수술실에서 소변을 본다고 한다. 거기다 여성 레지던트들은 성희롱과 언어폭력을 당할 때 우울 증상이 1.7배 높아지게 된단다. 어느 곳 하나, 온전하고 편안하게 근무할 수 있는 곳이 어디 있으랴?

돌아보면 일터에서 묵묵히 일하는 모든 이에게 감사할 일이다. 교통신호 단속을 하는 경찰이나 딱지를 떼는 경찰관도 고마워할 일이다. 그들은 우리의 안전을 위해 질주하는 차를 목숨 걸고 쫓아가다 사고를 당하기도 한다. 몸이 아파 개발된 신약 한 알 먹을 때도 감사할 일이다. 임상 실험에 가난한 몸을 바쳐 백만 원도 안 되는 아르바이트를 한 그들의 희생으로 우리는 신개발 약을 먹으며 더 건강하게 살고 싶어 한다.

궁극의 목표는 다 같이 건강하게 살고 싶은 것이다. 그러기 위해 우리가 속한 공동체는 좀 더 성숙해져야 하겠다. 이번에 순직한 세 명의 소방관의 죽음을 애도하며 이들의 순직 처리를 발판으로, 위기 상황에서 몸을 도사리지 않고 최선을 다해 일하는 사람들의 노고를 소송을 통해서가 아니더라도 온전히 인정해주고 고귀하게 대해주는 품위 있고 안정된 사회가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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