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假面)무도회
가면(假面)무도회
  • 승인 2018.04.08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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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윤 시인
박근혜 전 대통령이 6일 1심에서 징역 24년, 벌금 180억원을 선고받았다. 그녀의 나이로 따지자면 그리 적지 않은 형량일수도 있지만, 죄과로 따지자면 그리 많지 않은 형량이다.

물론 필자의 생각이 그러하다는 이야기다. 법리를 따지고 판례 ‘과연 이와 같은 경우에 해당하는 판례가 있기나 할까 싶지만’를 근거해서 판사가 선고했겠지만 말이다. 법조인들의 판단에 이설을 제기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어차피 어떤 재판이건 필자가 크게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인 적은 없었으니 말이다.

특히 2008년 12월 11일 발생했던 ‘나영이 사건’의 범인 조두순에게 내린 선고는 ‘악의 승리’였음을 확신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2009년 1월 9일 강간상해죄로 기소된 이후 그해 3월 4일 사형이 아니라 무기징역형을 구형받았을 때에도 ‘법은 실존하는가’하는 회의를 가졌었는데, 그 후 기존 15년형에서 주취감형으로 인해 징역 12년을 선고받았고 이변이 없는 한 오는 2020년 12월에는 출소할 예정이다.

주취감형이 웬 말인가. 술에 취해서 저지르는 범죄는 형을 감해준다는 소리 아닌가. 의식이 불온전한 상황이어서 판단이 흐려져서 그에 따른 부분은 이해와 관용으로 받아들이라는 소리 아닌가. 설사 그렇다하더라도 경우에 따라 차등을 두어야 하지 않을까.

무엇보다 술에 취하면 인격조차 변이될 수 있다면 이는 술을 ‘향정신성의약품’으로 분류해야 할 것 아닌가. 상식적으로 분류되어져야 한다. 담배에 대해서는 그리도 단호하게 담뱃갑마다 혐오스러운 사진을 부착하는데 그리도 신속하던 정부가 술에 있어서만큼은 어찌 그리도 관대한 지 알 수가 없다. 8살짜리 여자아이가 등굣길에서 만취한 중년사내로부터 납치되어 교회화장실에서 생식기의 80%가 소실될 정도의 위해(危害)를 당했을 당시의 공포를 생각해보라.

조두순 사건의 경우 국민청원이 21만 명을 돌파함에 따라 주취감형 폐지에 대한 청와대의 입장이 있을 예정이라고 하니 지켜볼 일이다. 물론 이를 반대하는 이들의 의견도 적지 않다. 엄밀하게 따지면 술에 취한 상태에서 범죄를 저지른 사람에 대하여, 판사가 자기 재량에 따라 형벌을 감형해주는 것을 주취감형이라고 한다. 형법에 주취감형이 명시된 것도 아니다. ‘심신(心身) 장애로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 미약한 자는 형을 감경한다’는 형법 10조 2항에 근거하여, 술에 취한 상태를 일종의 심신 장애로 규정하여 관습적으로 감형을 해주고 있는 것이다. 굳이 감형을 해주어야만 할 사안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봐야 2년이다. 온 국민의 공분을 생각하면 그는 감형을 받을 어떤 이유도 없다. 이 또한 판례로 남길 수밖에 없다.

앞으로 이와 비슷한 사건이 발생한다고 해도 유사한 판결을 내릴 수밖에 없으리라고 본다면 끔찍하지 않은가. 법률 불소급의 원칙에 따라 이미 조두순의 형량은 더 이상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다.

대한민국의 현주소다. 행정부의 수반이 미래의 범법자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고 입법부는 이를 방관하고 사법부는 국민의 신뢰를 잃었다. 마치 모두가 가면(假面)을 쓴 채 이들에 대한 예우와 인정을 일삼으며 반복되는 무도회에 와 있는 것 같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수많은 지지자였던 사람의 충정(忠情)을 나무랄 생각은 없다. 개개인의 이해와 해석에 대해서 잘잘못을 따질 이유는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력까지 흐려져서야 되겠는가. 소위 ‘~빠’와 ‘~부대’라고 일컫는 ‘촛불’과 ‘태극기’들의 어느 한편에 선 사람들은 모두 대한민국에서 가장 소중한 상징물들을 들고 거리로 나서지 않았던가. 어떤 이해관계를 가지고 거리로 나선 이들도 있겠지만, 순수한 마음으로 나선 이들이 더 많았으리라고 믿고 싶은 그들 모두가 우리의 소중한 국민들임은 분명하다. 충정(忠情)은 흔히 애국애족과 맞물려서 쓰이는 표현이다. 내 나라를 사랑하고 내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이어야 충정이다. 맹목적인 지지와 개인적인 호감도에 따라 한 개인을 신격화해서는 곤란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제 18대 대한민국 대통령이다. 동시에 그녀는 1952년 대구에서 출생한 공소사실 18가지 중에서 16가지 유죄를 인정받아 구형된 피고인이다. 지난해 10월 16일 재판부의 구속 기한 연장에 반발하며 “재판부에 대한 믿음을 잃었다. 이 사건의 역사적 멍에와 책임은 내가 지고 가겠다”고 말한 바 있다. 변호인단에게도 “형량이 20년형이든, 30년형이든 개의치 않는다”고 항의성 발언을 할 만큼 사법부에 대한 기대를 버렸다고 한다. 사뭇 궁금하다. ‘전직 대통령이 믿음을 버린 재판부는 정당한가. 또 역사적 멍에와 책임을 지고 갈 만큼 나라를 사랑하는 그녀가 왜 판결을 받아야만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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