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4.3 아픔 어루만지는 ‘구름물고기’
제주 4.3 아픔 어루만지는 ‘구름물고기’
  • 대구신문
  • 승인 2018.04.08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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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구철 ‘4.3 꺾이지 않는 동백’展

14일부터 서귀포문화빳데리충전소

구리 골격에 한지 씌워 물고기 제작

“생명의 빛으로 세상에 희망 전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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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구철


표구철은 잘나가는 무대 디자이너였다.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국민가수의 무대미술을 담당하는 등 앞길이 탄탄대로였다. 거기까지였으면 지금의 설치미술가 표구철이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가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 시기 상업미술 일이 허허롭게 다가왔다”고. “가슴 속에 피어오르기 시작한 응어리를 풀어내고 싶었어요. 남의 일이 아닌 나 자신을 오롯이 표현하는 작품에 대한 열망이 피어오르고 있었죠.”

빵을 위한 일과 자아실현을 위한 작품 활동 사이에서 고뇌가 깊어갈 무렵이었다. 현실과 이상이 끊임없이 충돌하는 과정에서 섬광처럼 구름물고기가 그의 손끝에서 형태를 갖춰가고 있었다. 구름물고기는 구리 골격에 한지(韓紙)를 씌워 만든 물고기로, 일종의 매개자에 해당한다.

“저의 상상 속에서 세상의 가장 낮은 땅 밑 물에서 사는 물고기와 가장 높은 하늘이 만나 구름물고기가 됐죠. 이 물고기가 꿈을 관장하는 주재자에게 꿈을 전하는 매개자 역할을 하게 되죠.”

구름물고기로 꿈을 전하는 설치미술가 표구철의 ‘4.3꺾이지 않는 동백’전이 14일부터 5월31일까지 서귀포문화빳데리충전소에서 열린다. 전시는 표구철의 대표 상징인 생명, 구름물고기, 그리고 ‘4.3사건 70주년’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동백꽃을 중심으로 제주4.3사건의 아픔을 바라다볼 수 있도록 구성된다. “‘생명현상’이라는 구름물고기의 상징성이 제주4.3사건의 눈물의 치유와 맞물리도록 작품을 구성했어요.”

표구철의 분신인 구름물고기는 현실과 이상이 충돌하는 과정에서 탄생했다. 무대미술로 탄탄대로를 달리던 시절에 그의 가슴속은 다른 곳을 향하고 있었다. 상업적인 일이 아닌 자신을 오롯이 표현하는 작품을 하고 싶었던 것.

그러면서 틈틈이 시작한 작품 활동이 무대미술 일을 잠식해 가자 현실은 실타래처럼 꼬여갔다. 경제적 이해관계가 옅어지면서 하나 둘씩 사람들이 떠나가기 시작했다. 설상가상 그토록 원해 마지 않았던 작품세계 마저 요원했다. 그때 뇌리를 친 것이 ‘생명현상’이었다. “나를 되돌아보고 비워가면서 생명의 빛을 만났어요. 생명현상이 나와 세상을 치유해 줄 것이라는 확신이 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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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구철 전시작 ‘구름물고기’


생명현상과의 만남은 드라마틱했다. 현상과 이상 사이에서 방황하던 어느 날 이제는 방황과 이별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가방을 꾸리기 시작했다. 여행을 가기 위함이었고, 그가 싼 가방은 마음의 가방이었다. “막상 떠나려고 하니 가방이 너무 무거웠어요. 살아오면서 내 것인 줄 알고 담기만 했으니 무거울 수밖에 없었겠죠.” 버리지 않으면 떠날 수 없다는 것을 깨닫자, 가득찼던 가방이 하나둘씩 비어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긴 것, 그것이 생명의 덩어리였다.

“꽉 채워져 있어서 보이지 않았던 깊숙한 곳에 뭔가 하나가 남아 있었어요. 직관이었죠. 그러면서 정말 소중한 것들이 보였고, 그 소중한 것만 가방에 담았죠.” 생명 덩어리가 여행을 하며 사람들을 만나자 소망의 꽃잎이 붙여졌고, 마침내 생명현상의 상징, 구름물고기가 탄생했다.

스스로를 공간디자이너라고 했다. 바다나 산, 들판, 공원 어디나 그의 마음이 꽂히면 전시를 하고, 그는 작가 겸 큐레이터가 된다. 전시는 초대전 또는 게릴라전으로 펼쳐진다. 개릴라전은 딱히 전시홍보 없이 짧은 시간에 조용하게, 그러나 의미는 깊게 진행한다. 하늘과 땅, 별과 구름을 통해 꿈을 쏘아 올리는데 번잡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반면에 초대전은 관람객의 시끌벅적한 개입을 선호한다. 그들의 꿈을 현실태로 만들어주고 싶은 것이다.

“아이 하나가 탄생하면 별도 태어나죠. 그 아이가 커서 꿈을 잊어버리면 그 별에서 구름물고기가 찾아와 사람의 꿈이 담긴 씨앗을 가져가 자신의 별에 심고 그것을 키워가게 됩니다. 이 이야기 속에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희망’이죠.”

상업미술을 버리고 순수미술을 선택한 표구철. 구름물고기와 함께 하는 시간이 쌓여갈수록 세상이 그의 구름물고기에 손을 내밀었다. 그는 대구를 중심으로 활동하며 광주, 서울, 인천, 순천, 제주 등 전국적인 행사에 초대되고 있다. 자아 찾기를 하면서 얻은 자유와 치유적 요소에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는 것. “꿈을 소중하게 여기고, 그 꿈을 별에게 전하는 구름물고기는 우리 모두의 희망이겠죠. 앞으로도 세계인의 꿈을 담아 불을 밝히는 희망과 자유의 길을 계속해서 가고 싶어요.” 황인옥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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