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이 된 ‘청도 삼평리 송전탑’ 현장
예술이 된 ‘청도 삼평리 송전탑’ 현장
  • 황인옥
  • 승인 2018.04.14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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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산문화회관 내달 27일까지 박경제展
청도·밀양 송전탑 설치 반대 소재
전자파가 인간에 미치는 폐해·불안
송전탑·붉은 형광등·필름으로 전달
봉산-유리상자 박경제1
봉산문화회관 유리상자에 설치된 박경제 작품. 봉산문화회관 제공

봉산문화회관 유리상자에 설치된 박경제의 작품 속에 있으면 짐짓 무거워진다. 축소됐다고는 하나, 송전탑의 무게가 만만치 않기 때문. 수많은 전선으로 연결된 녹슨 송전탑 사이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강렬한 전류가 몸을 꿰뚫을 것만 같다. 툭 건드리면 재가 되어 바스라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은 생각보다 크다. 의식주 만큼이나 일상적으로 사용하며 삶을 윤택함으로 이끄는 전기지만 전기를 실어 나르는 송전탑 가까이 있는 것은 공포다. 박경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의 주제도 이런 것이다.

그가 “전기는 누군가에게는 편하다 못해 삶 자체다. 그러나 또 누군가는 평생을 보낸 삶의 터전을 잃고 끝없이 병들게 하는 무서운 존재일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누군가의 편리 이면에서 삶을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는 고통받는 이가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유리상자에는 7개의 송전탑을 축소해 설치했다. 탑 중 2개의 큰 송전탑은 밀양의 765kV 송전탑을, 변압기를 둘러싼 5개의 송전탑은 삼평리의 345kV 송전탑을 상징한다. 2개의 큰 송전탑으로부터 뻗어 나오는 전선은 5개의 송전탑을 둘러 변압기로 모인다. 그가 작품의 중심이 송전탑이 아닌 ‘변압기’라고 언급했다.

“변압기는 미시적으로는 전기가 소모되는 거대공간인 ‘도시’를, 거시적으로 전기를 사용하는 이 세상 전체를 의미한다. 전기소비자가 송전탑 문제를 야기한 근원적인 존재이고, 그 존재들의 의식을 건드리고 싶었다.”

그는 대학을 졸업한지 갓 2년된 청년작가다. 송전탑을 소재로 한 작품은 졸업작품전에서 처음 형태를 갖췄다. 이후 각종 단체전에 초대되면서 형상과 의미에서 자가발전해 왔다. 말하자면 송전탑 작품은 그가 작가로 이름을 건 첫 작업이다.

그는 두 가지 면에서 의외성을 드러내고 있다. 그 중 하나는 우리사회의 표출된 사회담론인 송전탑 문제를 다루지만 그 자신 대단한 문제의식의 소유자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청도 삼평리 송전탑을 만나기 전까지 직업을 고민하는 평범한 청년에 불과했다. 레인메이커(rainmaker)에서 일하게 되면서 송전탑이 그의 의식 속으로 들어왔다. 그는 영상촬영 의뢰를 받아 삼평리 송전탑 할머니들을 만났다. 당시 송전탑 설치문제보다 송전탑 설치를 반대하던 할머니들에게 더 주목했다. 그러면서 할머니들의 이야기가 보이기 시작했다.

“송전탑이 거창한 사회문제가 아니었어요. 삼평리 할머니들의 삶에 밀접하게 연결된 사람 사는 이야기였죠. 졸업작품전을 준비하면서 자연스럽게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해 보자는 것이 계기가 됐죠.”

주제가 사회문제다. 시각적으로 녹여낸 형상은 주제를 심화한다. 345 킬로볼트(kV) 삼평리 송전탑에서 시작해 강력한 765 킬로볼트(kV)를 흐르는 밀양 송전탑에도 관심을 가졌다. 하나의 주제가 의식 속에서 형태를 갖춰가고 있었던 것. 그러면서 작가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고민도 시작됐다. “예술가라고 개인적인 이야기만 하는 것은 아니라고 봐요. 사회적인 메시지를 풀어놓을 책임이 분명히 있죠.”

작업의 출발선은 두려움이다. 송전탑 주변지역에 흐르는 강렬한 전자파가 인간에게 미치는 폐해는 그야말로 두려움 자체다. 전시장 바닥에 설치된 붉은색 형광등은 송전탑 주민들의 불안을 직접적으로 대변한다. 바닥에 깔아놓은 삼평리 사건의 장면을 기록한 345장의 흑백 필름이 삼평리에서 공수한 흙과 낙엽과 어우러지면서 불안감은 증폭된다. 이 두려움은 그들만의 두려움에서 그쳐서는 안된다는 것이 작가적 주장이다.

“붉은색 형광등은 우리에게는 낯선 두려움이에요. 그러나 결코 이것이 송전탑 주변 사람들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봤어요. 저는 그 문제를 우리의 문제로 보지 않는 사람들의 잘못된 태도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싶었어요.”

그는 서양화 전공자다. 용접이나 설치가 낯설 수 있지만 송전탑을 만들기 위해 용접을 꽤나 했다. 다양한 오브제를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만들며 설치작품을 구성했다. 그렇더라도 그의 작품은 다분히 회화적이다. 조소전공자의 설치와는 확연하게 다른 지점이 있다는 이야기다. 구성과 주제를 다루는 방식에서 그렇다. 그러나 그는 시각적인 구현법은 의미없다고 선을 그었다.

“평면회화나 설치나 영상 등 매체로 미술을 나누는 것을 경계해요. 작가는 경계를 뛰어넘는 존재여야지 경계를 나누는 사람들이 아니죠. 저는 이제 시작인만큼 특히나 다양한 표현법으로 주제에 접근하려 해요.” 전시는 5월27일까지.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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