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희롱, 대법원의 판결을 환영하며
성희롱, 대법원의 판결을 환영하며
  • 승인 2018.04.18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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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논단
김선희
지방분권운동 대구경북본부공동대표
지난 주, 성희롱 재판에서 피해자가 처한 특별한 사정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미투 운동이 확산돼 성범죄에 대한 관심과 관련 소송이 잇따르는 가운데 이번 판결은 향후 성범죄 재판의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뿐만 아니라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기 힘든 다수 국민들에게 성범죄의 특수성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볼 여지를 준다는 점에서 반가운 일이다.

대법원 2부(주심 권순일 대법관)는 지역의 한 대학교수 A씨가 교원소청심사위원회를 상대로 낸 해임 결정 취소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A씨는 학과 MT에서 자는 여학생 볼에 뽀뽀를 하고, 또 다른 여학생에게 “뽀뽀해 주면 추천서를 만들어 주겠다”고 하는 등 3명의 여학생을 상대로 14건의 성희롱 혐의로 2015년 4월 해임됐다. A씨는 해임 처분이 부당하다고 소송을 제기해 1심에서 패소했으나 2심은 성희롱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해임 취소 판결을 내렸다.

‘미투’(Me Too·나도 피해자다) 운동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대법원이 성희롱 재판에서 피해자의 특별한 사정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이 2심 법원의 시각을 조목조목 지적한 내용은 앞으로 하급 법원들의 성범죄 재판에 영향을 줄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대법원은 피해자가 성희롱 피해 진술에 소극적이었거나 발생 이후 일정 시간이 경과한 후에 문제를 제기하였다는 사정이 피해자 진술을 가볍게 배척할 사유가 아니며, 성희롱 피해자가 처한 특별한 사정을 고려해야 한다며 원고의 행위가 성희롱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가해자가 교수고 피해자가 학생이라는 점, 성희롱 행위가 학교 수업이 이루어지는 실습실이나 교수의 연구실 등에서 발생하였고, 학생들의 취업 등에 중요한 교수의 추천서 작성 등을 빌미로 성적 언동이 이루어지기도 한 점, 이러한 행위가 일회적인 것이 아니라 계속적으로 이루어져 온 정황이 있는 점 등을 충분히 고려하여야 한다고 판결하고 있다.

결국 우리 사회 전체의 일반적이고 평균적인 사람이 아니라 피해자들과 같은 처지에 있는 평균적인 사람의 입장에서 성적 굴욕감이나 혐오감을 느낄 수 있는 정도였는지를 기준으로 심리·판단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성범죄가 일반 범죄와 다른 아주 중요한 지점이다.

지역의 여성단체들은 그동안 미투 운동과 관련한 정기적인 집회를 계속해왔다. 동성로 캠페인, 미투운동과 대구경북지역언론보도 토론회가 진행되었으며 미투운동 특강, 위드유 토론회 등이 계획되어 있다. 주말에도 동성로에서 성폭력에 대한 통념을 지우개로 지우고, 바로보자는 집회가 계획되는 가운데 대법원의 판결은 성폭력을 바로 알리는데 큰 힘이 될 것이다.

여성단체는 성차별과 성폭력을 없애자며 ‘한국사회가 성폭력을 지우는 세가지 방법’을 카드뉴스로 제작하여 홍보하기도 한다.

성폭력을 지우는 세가지 방법은 첫째, 상대의 의사확인도 없이, 싫다고 해도 동의로 보는 등 모든 성폭력을 성관계로 만든다는 것 둘째, 피해자에게 원인과 책임을 전가하기에 법이 있어도 신고조차 못하고, 신고해도 처벌을 기대하기 어려워 이를 범죄가 아닌 것으로 본다는 것 셋째, 피해자다움에 대한 통념으로 피해자를 거짓말쟁이나 꽃뱀으로 몰며 허위신고로 몰아간다는 것이다.

피해자가 조심하면 성폭력이 일어나지 않을까? 호기심과 성적본능에 의한 성범죄는 죄가 가벼워야 하는지 30년 동안 지속된 물음이 아직도 유효하다. 성폭력 피해자가 용기를 내어 신고하더라도 재판과정에서의 2차 피해를 견뎌야 한다. 성폭력 재판은 가해자가 의사에 반하지 않았음을 입증하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가 저항할 수 없었음을 입증해야 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성범죄는 피해자가 2차 피해에 대한 두려움을 느낄 수 있는 특별한 사정을 충분히 고려하고 성희롱 여부를 따질 때 일반적이고 평균적인 사람이 아니라 피해자와 같은 처지에서 성적 굴욕감이나 혐오감을 판단해야 한다는 이번 대법원의 판결이 남성 중심의 성적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성인지 감수성’을 키우는 집단 학습의 기회가 될 것이다.

일반 형사사건과는 구분되는 성범죄의 특수성에 비춰 철저히 피해자 입장에서 사건을 심리하라는 대법원의 주문이 아니겠는가? 그런점에서 미투와 위드유 운동은 계속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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