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짝 함초롬히 보랏빛 순정…누굴 기다리나
산골짝 함초롬히 보랏빛 순정…누굴 기다리나
  • 대구신문
  • 승인 2018.04.18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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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휘영의 야생화 편지 (14)처녀치마

전년에 돋아난 잎이 시들지 않은 채

세찬 겨울 견뎌내며 상록의 잎 유지

3월말 꽃대 올라와 홍자색 꽃 피워

시간이 지나며 짙은 자주색으로 변해

중부 이북 산지서 주로 만날 수 있어

‘절제’ ‘희망’ 꽃말이 ‘시골처녀’ 연상

‘처녀치마’ 이름은 일본이름 잘못 번역

북한말 ‘치마풀’이 오히려 잘어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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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진 겨울을 견뎌낸 봄꽃

계절의 변화와 더불어 꽃이 피고 또 꽃이 지는 것은 대자연의 섭리이자 법칙이다. 바람과 물과 햇살의 정도에 맞추어 자신에게 적합한 토양과 환경을 선택하는 것이 풀꽃들의 생존전략이다. 올해는 3월 이후 2~3번이나 한겨울을 방불케 하는 눈발을 맞아야 했다. 벌써 우리 주변의 나무들에게 새순이 돋아나 온통 연둣빛으로 물들이고 있다. 이제는 가히 ‘불가역적 봄날’이라고 해도 될듯하다. 예로부터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 했다. 모든 꽃은 10일 이상 붉게 피지 않는다는 것 또한 자연의 이치이다. 제때를 맞추어 찾지 않으면 풀꽃들의 활짝 핀 모습을 만나기란 여간 쉽지 않은 일이다. 풀꽃들이 우리를기다려 주는 법은 없다. 자신의 때를 알고 나타났다가 불과 일주일 정도면 모습을 감추고 사라진다.

수년전 몇 번이고 가까운 곳에 옛 친구가 살고 있는 천마산을 찾곤 했다. 어느 산행길의 계곡을 지나다가 언덕배기를 지날 즈음, 마치 미역줄기 같은 잎을 치맛자락처럼 펼치고 있는 녀석이 턱 하니 앉아있었다. 식물도감이나 지인들이 찍은 사진으로만 보던 처녀치마였다.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긴 꽃대 위로 이미 꽃은 철을 다하고 조금씩 열매를 맺고 있었다. 계곡을 조금 더 올랐다. 계류에는 잔설이 더러 남아 있었고 바로 근처에 제법 많은 개체가 여기 저기 꽃대를 올리고 있었다. 그들은 산등성이로 기우는 햇살을 받아 꽃이 홍자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누가 치맛자락 넓게 드리운 처녀치마가 이곳에 있다는 것을 알겠는가. 나는 나무꾼이라도 된 것처럼 처녀치마의 치맛자락 사이로 한참 동안이나 셔터를 누르고 있었다.



나무꾼이 선녀의 날개 옷 숨겼다는/ 금강산 상팔담에 봄이 오면/ 선녀의 옷자락 스친 자리마다/ 처녀치마 핀다/ 옥규동 계곡 거슬러 오르는 동안/ 맑게 씻긴 영혼에/ 선연한 보랏빛 물들이며// 절경의 풍경 속에서/ 암벽에 이름 새길 궁리나 하는 자들에겐/ 보이지도 않을 만큼 조촐한 풀꽃이다.// (처녀치마/ 최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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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녀치마는 전년에 돋아난 잎이 시들지 않고 무성한 채로 세찬 겨울을 강인하게 견뎌낸다. 겨울의 잔설이 녹아내릴 때쯤 꽃방석처럼 방사상으로 펼쳐진 잎 가운데에서 꽃대가 올라오기 시작한다. 아직 새싹들이 돋아나기 전에 상록의 잎을 지니고 있기에 이른 봄 토끼, 고라니 등 야생동물에게 노출되지 않아야 온전히 살아남는다. 혹독한 겨울을 견뎌냈기에 처녀치마의 꽃은 계곡의 길모퉁이에서 그 누구를 기다리듯 요염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중부지방을 기준으로 3월 말경에 꽃대가 올라와 홍자색의 꽃은 4~5월에 줄기 끝에서 3~10개 정도가 뭉쳐 달린다. 꽃은 시간이 경과하면서 홍자색에서 짙은 자주색으로 변한다. 처녀치마는 우리나라 특산식물 중의 하나로 우리나라에는 처녀치마와 숙은처녀치마의 2종이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처녀치마의 특징

이른 봄날 산속에서 치맛자락을 넓게 펴고 앉은 ‘처녀’ 같은 풀꽃이 언덕배기에서 내려다본다. ‘치마풀’, ‘치맛자락풀’, ‘성성이풀’이라도 불리는 처녀치마이다. 땅바닥으로 펼쳐진 잎의 자태가 옛날 처녀들이 즐겨 입던 치마같이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처녀치마는 생명력이 아주 강하여 가을을 지나 겨울에도 싱싱한 잎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산속의 추위와 눈보라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상록성 식물이다. 이러한 점에서 ‘절제’, ‘희망’이라는 꽃말처럼 처녀치마는 수줍게 웃고 있는 꿈 많은 시골처녀의 모습을 연상하게 한다.

처녀치마는 백합목(Liliiflorae) 멜란티움과(Melanthiaceae) 처녀치마속(Heloniopsis)의 상록성 여러해살이풀이다. 이전에는 백합과(Liliaceae)에 속하는 것으로 했으나, 새로운 식물분류표에 따르면 멜란티움과(Melanthiaceae)로 분류하고 있다. 학명은 Heloniopsis orientalis로, 속명 Heloniopsis는 그리스어로 헬로니아스속(Helonias)과 닮은꼴(opsis)이라는 의미이다. 종소명 orientalis는 동양 혹은 동방이라는 뜻으로 그 분포지역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서식지로는 우리나라와 일본, 대만, 사할린 등지에 분포한다. 처녀치마속으로 분류되는 것으로 6종이 있는데, 한국에 2종, 일본에 3종, 대만에 1종 서식한다. 우리나라에만 자라는 한국특산종으로 처녀치마(Heloniopsis koreana Fuse, N.S.Lee & M.N.Tamura)와 숙은처녀치마(Heloniopsis tubiflora Fuse, N.S.Lee & M.N.Tamura)가 있다. 높은 산지의 그늘이나 고산지대의 습한 초지 또는 낙엽수림 아래 습기가 많은 곳에서 자생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전국적으로 분포하나 북한산, 천마산, 청태산, 소백산, 태백산 등지와 같이 중부 이북의 산지에서 주로 만날 수 있다.



#‘처녀치마’의 유래

처녀치마는 옛날 처녀들이 즐겨 입던 치마같이 생겨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얼핏 그 자태를 보면 ‘그렇구나.’하고 쉽게 수긍이 간다. 이런 처녀치마는 생명력이 아주 강하여 가을까지 무성한 잎을 그대로 지니고 있고, 겨울에도 푸른 잎이 땅바닥에 퍼져 산속의 추위와 눈보라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잎이 땅으로 퍼져 있어 치마폭을 펼쳐 놓은 듯한 모습이지만 정작 ‘처녀치마’라는 이름은 일본이름을 잘못 번역한 것이다.

처녀치마는 일본에서 ‘쇼오죠오바카마(ショウジョウバカマ)’라고 한다. 여기서 쇼우죠우(猩猩)의 장음이 없는 쇼우죠(處女)는 우리말 처녀의 의미이다. 처녀의 ‘치맛자락’ 혹은 ‘도포자락’으로 오인하여 ‘처녀치마’라 불렀다. 정작 쇼우죠우(猩猩)는 오랑우탕을 의미하는 중국어로 중국 전설에 나오는 상상의 동물 ‘성성이(猩猩)’이다. 일본에서 붉은색 처녀치마를 보고 상상의 동물인 성성이로 비유해서 부른 이름이고, 하카마(袴)는 일본의 전통 의상의 겉옷으로 하반신에 착용하는 하의이다. 허리에서 발목까지 덮으며 가랑이가 져있고 스커트 모양을 한 것도 있다. 이 꽃은 중국의 전설상 동물로 술을 좋아했던 ‘성성이(猩猩)’에, 꽃방석 모양으로 펼쳐진 넓은 잎을 펼친 모습이 “치마(하카마, 袴)”와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전설에서 등장하는 성성이(猩猩)는 사람의 말을 이해하며 온몸이 주홍색의 긴 털로 뒤덮여 있다. 지금의 오랑우탄과 같이 생긴 상상의 동물이다. 성성이는 술을 아주 잘 마셨다고 한다.

옛날 효자인 한 남자가 있었다. 그는 밤에 꿈에서 계시를 받고서 다음 술장사를 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원숭이처럼 생긴 성성이를 만났는데 그에게서 술 단지를 선물로 받았다. 그 술 단지는 아무리 퍼내서 마셔도 없어지지 않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 효자는 선물로 받은 술 단지 덕에 부자가 되었다고 한다. 이것이 쇼우죠우(猩猩)의 유래이다.

하지만 처녀치마는 생명력이 아주 강인하다. 꽃은 초봄에 피지만 잎은 혹독한 겨울에도 추위와 눈보라를 견딘다. 겨울에도 치마를 입는 우리나라 처녀들과 매치되는 부분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처녀치마의 북한 말 ‘치마풀’이 오히려 어울린다 할 것이다. 연보라색 통꽃 하나하나가 아가씨들 미니스커트처럼 생긴 꽃이다. 줄기가 길게 올라와 보라색 통꽃이 아래를 향해야 처녀들의 주름치마 같겠지만 꽃대는 꽃을 피운 다음에야 자라나 20~30cm 정도로 올라온다.



북한산 골짜기에서 업어온 지 십년/ 해마다 도랑치마만 대고 만들어 쌓더니/ 마침내 치마 벗고/ 하늘몸 열었다/ 사월 초하루 만우절에/ 거짓말처럼,// 슬픔 젖어 가슴 아린 엷은 자줏빛/ 새물내 나는 속살로, 몰래/ 꽃을 올리고/ 새실새실 웃고 있는/ 처녀치마/ 낮은 자리가 수런수런 환하다.// (처녀치마 벗다/ 홍해리)

칼럼니스트 hysong@y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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