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대의 봄날
60대의 봄날
  • 승인 2018.03.19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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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선 대구교육대
학교 대학원아동문
학과 강사
내가 3,40 대이었을 때, 바라보이는 60대는 재미도 없고 더 이상 즐길 낭만도 없는 세대쯤으로 알았다. 정년퇴임 뒤에는 꿈도 없고 사회에 쓰임도 없는 폐품이 될 것만 같았다.

막상, 정년퇴임을 하고 여느 만큼 살다보니 내 둘레 친구들 삶의 모습에서 ‘봄날은 간다.’는 말 뒤에 ‘또다시 봄날은 온다.’는 말을 덧붙이고 싶어진다. 그보다 봄날의 의미부터 달라 보인다. 청춘의 빛남 앞에 허겁지겁 자신만을 생각하며 화려하게 꽃피워온 삶이 봄날이었다면, 늙은 날의 봄날은 화려하진 않아도 그보다 더 향기롭다. 나이 들어 지금껏 누려온 건강과 여유를 둘레에 감사로 나누는 봄꽃향기 펼쳐가는 농익은 봄날이기에. 그 중 으뜸이 집에서 손주를 돌보는 희생의 시간을 사는 것이고 거기서 좀 벗어난 사람들은 둘레에 베풀며 산다.

최장! 그는 정년퇴직 전에도 교회 장로 일에 열심이더니 퇴직 뒤에는 해외 선교 사업에 열을 올리고 있다. 작년에는 아프리카에 교회 헌당을 하고 오더니 올해는 필리핀 다바오에 교회를 헌당 하러 나가 있다.

박장! 그녀는 퇴임 전에도 에너지가 철철 넘치는 여자였다. 하모니카를 배우더니 동호회를 만들어 병원이나 지하철역을 찾아다니며 연주활동을 즐겼다. 삶은 전염된다. 이렇게 재미있고 활력 넘치게 사는 모습에 가담한 퇴직교장 8명이 합세하여 달서지회 노인자원봉사 클럽인 ‘반딧불 봉사’ 클럽을 만들어 경로당을 찾아다닌다. 배움의 기회가 늦은 어르신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는데 배우는 사람보다 남을 도우면서 얻는 자신들의 기쁨이 더 크다.

그런데 너무 열정적으로 한 탓일까? 여성부장관이 표창장을 주는 바람에 본인도 놀랐다. “상 받으려고 한 건 아닌데…”

숨어서 솔솔 재미 보며 사는 친구도 있다. ‘신장’이다. 퇴임 뒤에 한 달에 일주일씩 절의 큰 스님들을 찾아다니며 법문을 익힌다 싶더니 한국불교대학에서 힘써하는 독거노인 돕기 사업에 참여하여 매주 화요일 도시락 배달을 하고 있다. 이웃 할머니들한테도 김치를 담궈 갖다 드리느라 일 년에 김장을 몇 번씩 하고 장을 담궈 나눠 드리느라 장담기도 몇 번씩 한다. 마흔이 넘게 장성한 제자들의 어머니, 8~90세 어르신들도 찾아다니며 말벗 노릇도 하고 미용도구를 챙겨가 머리도 깎아 드리고 염색도 해드리고 있다. 새벽 3시에 불경을 드리러 절로 가는 그녀에게는 소소한 봉사가 일상이다. 같이 등산을 하다보면 쓰레기 주워 담을 큰 비닐봉지와 일회용 비닐장갑을 준비해 온다. 무심코 산 타는 재미만 즐기려고 나선 우리는 민망해서 쓰레기를 찾아 건네며 “야, 신 교장. 보물 찾았다!” 며 쓰레기 선물을 준다. 그러면서 ‘좋은 산이 있어 등산을 즐기면 감사할 일이지. 이 좋은 산을 즐기면서 쓰레기까지 버리고 가느냐?’며 쓰레기를 버리고 간 사람들을 욕하던 입들이 쑤욱 들어가 버린다. 신장이 ‘나부터 줍자!’는 자성을 몸으로 가르쳐주기 때문이다.

장장! 그는 대학 동기들 산악 모임을 리더 하고 있다. 달마다 2~30 명이 넘는 회원들에게 일일이 알리고 모아서 산을 오르게 한다. 미리 사전 답사는 기본이요. 뒤치다꺼리 하는 일이 참 번거로울 텐데 줄곧 묵묵히, 번번히 봉사하고 있다. 산을 오르다 뒤처지는 친구를 챙겨서 등 밀어주며 오르고 약초와 나무, 산나물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나누어주고, 등산에서 일용할 선물들을 얻을 수 있게 이끌어준다. 둘레 사람들의 건강을 책임지는 미더운 친구다.

이장, 그녀는 문학박사이지만 중·고등학생들에게 날마다 무료 논술 강의로 봉사하고 있다. 가톨릭 문인회 일을 맡아 회무 챙기랴, 연도 다니랴, 성당 레지오 활동하랴, 차량 봉사하랴, 그녀 자신의 건강도 챙겨야 할 형편인데도 헌신하는 모습은 하느님 보시기에도 참 좋으실 듯하다.

이렇듯, 내 둘레 사람들은 나이 들수록 여유 있는 시간을 자신만을 위해 살지 않고, 베풀고 나눔에 보태고 있다. 그러니 그냥 꽃피우는 봄날이 아니라 나눔의 꽃향기 내뿜는 봄날로 농익어가고 있다.

이런 친구들을 보면 자신이 부끄러울 때가 많다. 나도, 내가 사는 시골 동네 어르신들에게 해드리고 싶은 숙제 같은 일이 있긴 하다. 남편은 그림을 가르쳐드리고, 나는 글 쓰는 일을 도와 어르신들의 살아온 이야기를 기록문학으로 남기며 어르신들의 시집, 자서전을 선물해드리고 싶다. 하지만 아직도 내겐 욕심이 많이 남아있나 보다. 대학원 강사로 나가고 여기저기 학교나 도서관에 작가와의 만남에 불려 다닌다.

물론 강사료로는 수강 선생님들의 매 때 식사비를 대고 결혼하면 축시패를 만들어주는 등 베풀고 살려 하지만 댓가를 받고 있으니 향기가 적다. 학교에 강의 나갈 때는 강의료만큼 책을 사 가져가 학생들에게 선물로 나눠주고, 선생님들 중에 더 공부하고 싶어 물어오는 이들에게는 돌아와서도 책을 사 보내주곤 하지만 강의료를 받는 일이 마음에 걸린다. 그나마, 멀리 봉사활동 다니기 싫어서, 시골 우리 집에 굿네이버스 친구들이나 손님들을 모셔 내 손으로 밥 한 끼 대접해드리는 일로 위안을 삼고 있다. 아직 실천하지 못한 숙제를 품고서도 뻔뻔하게 말한다. 봄날은 언제나 지금! 베풂을 실천하는 60대에게는 참 향기로운 봄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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