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들은 왜 거리로 나오는가?
의사들은 왜 거리로 나오는가?
  • 승인 2018.04.29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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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한
대구시의사회 공보이사
아이꿈터 아동병원장
2017년 12월 10일 서울에서 전국의사궐기대회가 열렸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3만 여명의 의사들은 추운 날씨와 휴일임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한 자리에 모였다. 다가올 2018년 5월 20일에도 전국의사궐기대회가 있을 예정이다. 도대체 무슨 이유로 보수적이고 개인적인 성향이 강한 의사들이 거리로 나와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문재인 케어(이하 ‘문케어’)와 한의사의 현대의료기기 사용을 허용하는 정책 때문이다. 이런 의사들의 집단행동이 일반시민들이 보기엔 자칫 직역 이기주의로 보여질 수도 있으나, 의료계의 현실을 조금 더 관심 있게 들여다본다면, 국민들도 의사들의 행동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지면 관계로 여기선 문케어에 대해서만 언급하겠다.

문케어는 2017년 8월 비급여 항목의 전면 급여화를 골자로 하여 국민의 건강보험보장성을 확대하겠다는 정부의 정책이다. 의료계도 이 정책의 취지엔 동의한다. 다만 의료계가 우려하는 것은 현 의료보험제도의 개혁 없이 문케어를 시행할 경우 의료계는 붕괴될 것이고, 결국엔 그 피해가 국민에게 돌아간다는 점이다. 지금의 보험제도는 [저부담-저급여-저수가] 구조이다. 다시 말해 국가가 의료수요자인 국민들로부터 돈을 적게 걷어, 의료 공급자인 의사의 의료행위에 대한 보상을 최대한 싸게(원가이하로) 책정한 후, 의료행위를 최소한으로 하도록 통제하여. 의사가 받는 요양급여를 적게 지급하는 시스템이다. 이렇다 보니 전국민 의료보험제도가 만들어진 후, 지난 30년 동안 최소한의 진료를 받는 국민들도, 최소한의 의료행위로 최선의 결과를 낳기 위해 노력한 의사들도. 모두 만족하지 않는 의료현실을 만들었다. 이런 현실 속에서 병원경영유지를 위해 의원의 경우 되도록 많은 환자를 진료해야 했으며, 더 많은 직원이 근무하는 병원의 경우 비급여항목을 늘려 진료해야만 하는 왜곡된 의료 환경이 형성되어 버렸다. 학생시절에 배운 최선의 진료보다는 최소한의 진료를 선택해야 하는 현실에 의사들은 내몰려 왔던 것이다.

의료계가 우려하는 또 다른 문제는 환자의 의료 이용에 대한 진료선택권 제한이다. 문케어로 인해 많은 항목이 급여화 될 경우, 지금보다 더 많은 보험료를 걷어 보험재정을 충당하지 못한다면, 재정부족으로 정부의 급여항목 통제(의료급여 삭감이나 지급제한)가 시작될 것이 분명하다. 이렇게 되면 반드시 필요하거나 환자가 원하는 검사 및 치료가 있더라도 이를 받을 수 없게 되는 경우가 생긴다. 돈을 더 지불하더라도 받고 싶은 검사와 치료를 급여기준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법적으로 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정부가 제시하는 급여기준은 재정부담 때문에 항상 최소한으로 정해지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우려되는 부분은 보험재정 파탄과 정부정책의 낮은 신뢰성이다. 문케어는 기본적으로 재정이 많이 드는 정책이다. 비급여 항목의 급여화로 검사나 치료가 싸지면, 의료소비자의 병원 쇼핑은 지금보다 늘어날 것이다. 여기에 상급병원 쏠림현상이 더해져 필요한 재정은 기하급수적으로 늘 것이고. 1·2차 병의원이 차츰 사라져 의료체계도 무너질 것이다. 1인당 국민소득 3만불 시대에 들어온 지금, 국민들의 건강에 대한 관심은 매우 높다. 또한 저출산 및 고령화 시대로 인해 조세수입은 줄고, 의료비 지출은 늘어날 것이다. 게다가 빠르게 성장하는 의학기술을 고려해 볼 때 신기술이나 신약에 대한 의료수요가 늘어날 것이고, 의료비 지출은 자연스레 많아질 것이다. 이렇게 되면 북유럽처럼 세금을 급여의 50% 가까이 걷는다 해도 문케어의 성공여부를 장담할 수 없다. 그러나 정부는 임기 5년간 30조 6천억원의 투자로 늘어난 재정부담을 막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정말이지 눈 가리고 아웅이다. 백보 양보해서 정부의 예상대로 된다 해도, 7년 아니 10년 뒤에도 가능할지 의문이 남는다. 의료계는 이미 2000년 의약분업을 경험했다. 그 당시 의료계는 정부에게 의약분업 시행 시 보험재정파탄이 생길 것이라는 제언을 하였다. 하지만 정부는 이를 무시한 채 정책을 시행하였다. 그러면서 의료계에 저수가 보전을 약속하였다. 과연 정부가 자신하던 의약분업의 결과는 어땠을까? 보험재정 절감에 대한 기대는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재정적자라는 걱정스런 현실로 바뀌었고, 불법 대체 조제 등 의약품 관리의 문제는 지속되었다. 그리고 의료계에 약속한 수가 보전은 1년 만에 손바닥 뒤집듯 보건복지부 고시를 바꾸어 원위치로 돌려놓았다. 정책 시행 후 보험재정 파탄이 오면 정부는 그 정책의 파기나 수정보다는 급여삭감 등의 재정절감 대책을 세워서 정책 실패에 대한 책임을 고스란히 의료계에 전가해왔던 것이다. 결국 정부의 잘못된 정책으로 의사와 국민은 피해를 보았고, 의사와 국민 사이의 관계도 악화되었다. 의약분업 이후로도 정부의 이런 행태가 지속되다 보니 의료계는 정부를 더 이상 믿지 못하게 된 것이다. 이번 정부도 문케어 시행 시 수가 보전을 약속하고 있다. 과연 정부는 국민들의 보험료부담을 최대한으로 늘리지 않은 채, 국민의 의료보장성 확대와 의료계의 저수가 보전이라는 서로 다른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아직도 늦지 않았다. 문케어 정책이 성공하기 위해 정부는 충분한 시간을 갖고 의료수요자인 국민의 적정부담(보험료나 세금인상)에 대한 국민적 합의와 의료공급자인 의료인의 수가 현실화(수가 보전)를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이런 전제조건 없이 시행되는 문케어는 의약분업 때처럼 의료계를 붕괴시키고 그 피해를 국민에게 주는 정책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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