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의 묘약
기획의 묘약
  • 승인 2018.05.09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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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복 영진전문대
명예교수 지방자치
연구소장
기획은 설정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최선의 수단이다. 기획과 계획은 엇비슷한 개념이지만 구태여 구별한다면 계획의 계획 즉 계획의 세밀화가 기획이다. 국가적으로 기획이 중요시된 때는 박정희 시대다. 경제개발 5개년계획 수립 단초가 경제기획원에서 비롯되었다. 현재와 미래를 연결하는 행정수단으로서 기획이 한국의 경제를 초석위에 올렸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대 소 기업들도 기획 중심으로 운영되고 개인이나 클럽이 사전에 계획을 세우는 것은 모두 효과성을 높이기 위함이다. 목표와 기획은 불가분의 관계다.

지난 4월 27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판문점 남북회담을 보면서 기획을 다시금 생각해 본다. 남북 정상 간의 회담이기에 얼마나 많은 준비를 했을까 추측할 수 있지만 회담의 기획이 아주 절묘했다. 기획의 오차를 허용하지 않고 전개되는 여러 장면들을 보면서 기획이 정부행정의 수단이지만 사람의 감정까지도 변화시키는 놀라운 힘이 있다는 생각을 했다. 회담 전 과정에서 이뤄지는 디테일한 기획이 자연스레 받아들여지기에 앞서 평범한 생각의 허술한 부분을 다스리는 효과를 보였다.

도보다리의 끝자락에 놓인 의자에 앉아 밀담하는 모습은 놀라운 기획 장면이라 경이로움 마저 준다. TV로 보아오던 독재자 김정은의 모습과 군사분계선을 넘어와 보여 준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생판 딴 사람이었다. 그는 우리와 아주 가까운 이웃 같았고 거부감이 없어 보였다. 모두가 잘 짜여 진 기획 때문이다. 어떻게 저렇게 자연스러울 수가 있을까. 두 정상의 행동은 명배우가 연기 하는 것처럼 보는 이들의 마음을 빼앗아 가기에 흡족했다. 배우가 작가의 시나리오를 어떻게 표현할까 연습을 거듭하고 고심한다는데 두 정상은 명배우 못지않게 여러 장면들을 잘 소화해 나갔고 관중들을 몰입시키고 환호를 받기도 했다.

우리는 여태까지 김정은의 그런 모습을 본 적도 없었고 회담에서 여사한 장면들을 보여주리라 예상도 못 했다. 행정학자의 길을 걸어 온 나는 가끔 청와대조직은 훌륭한 기획전문가들이 모인 집단이라고 생각해 왔다. 청와대가 진행하는 일들을 보면 과거 여느 정권에 비해 기획이 매우 뛰어남을 느낀다. 청와대는 라인조직이 아니다. 대통령의 의사결정을 도우는 스태프 조직이다. 비서실장을 비롯한 진용 모두가 스태프다. 스태프는 머리가 비상하고 계획적이며 전문적 지식을 가지고 집행기관인 라인조직을 자문하고 봉사한다. 청와대 모든 비서들이 그런 역할을 하는 것이다. 정부수반인 대통령은 청와대 참모조직의 전문성을 최대한 활용하여 국가행정을 이끌어 간다. 정부행정은 라인조직과 스태프조직의 협조로 이뤄지는 것이다.

이번 판문점 정상회담에서도 기획전문가의 역할이 두드러지게 보였다. 김정은 위원장이 분단선을 넘어오자 꽃다발을 주는 장면이 있는데 청와대 행정관인 기획연출 전문가가 화동들에게 꽃다발을 전해 주는 법을 교육하는 것을 TV에서 본 일이 있다. 이렇게 기획가는 한 점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매사에 전력투구 일사불란하다. 두 주역이 산길을 걸으면서 말을 나누고 오랜 세월 인적이 없던 산새 소리만 들리는 숲속 삼팔선 자락에서 두 사람만이 대화 할 수 있게 무대를 마련한 솜씨는 보통사람의 머리에서는 나올 수 없는 연출이다. 그곳에는 의자와 마실 차도 있었고 담배를 즐기는 상대를 위해 재떨이도 준비했다. 밀담 30여분의 내용이 선언문에 나올 것이라고 기대하는 이들은 없었지만 기획자는 분위기를 그렇게 유도하여 보는 이들의 관심을 극대화 시켜 나갔다.

기획은 실수를 차단하기 위한 진행의 수단이지만 과유불급이란 말이 있듯이 지나치면 사람을 답답하게 만들고 거부감을 보이는 경우도 생긴다. 청와대가 회담하는 날 오전까지도 김정은 위원장의 부인이 올 것인지 모르겠다고 안개를 피웠다. 국외자의 관심을 끌기 위한 기획이다. 나중에 대단한 뉴스처럼 청와대에서 리설주가 오후에 오기로 했다고 발표하는 것을 보고 실소를 금치 못했다. 그녀가 오고 안 오는 것이 뭐 그리 중요한가. 국가대사를 무슨 극화처럼 보인 기획 장면이다. 이번 판문점 회담의 전 과정을 보면서 기획의 효과와 중요성을 다시 살펴보는 기회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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