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의 술수(術數)
대화의 술수(術數)
  • 승인 2018.05.13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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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윤 시인
약속은 미래다. 현재나 과거를 두고 약속을 하지 않는다. 가까운 미래로부터 먼 미래까지 약속을 한다. 그래서 약속은 믿음을 바탕으로 한다. 친구나 연인 간에도 크고 작은 약속들을 한다. 약속을 하면 지키려고 노력을 하지만, 때때로 지켜지지 않는 경우도 있다. 때로는 지키지 못할 걸 알면서도 약속을 하는 경우도 있다. 술에 찌든 남자친구에게 ‘한번만 더 술을 마시면 절교하겠다’는 약속에 내포된 의미는 이미 ‘힘든 사회생활로 지친 자신을 위해 술을 좀 줄여 달라’는 관용적인 요구이다. 이렇듯 약속은 서로의 이해관계를 따져 득을 보고자 하는 의미 이상으로 서로를 위해서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가치를 가진다. 세상 모든 약속들이 모두 지켜진다면 분명 아름다운 세상이 될 것임에는 틀림없다.

세계 평화는 국가 간의 각종 협약과 합의를 통해서 이뤄지고 있다. 열강들의 야욕이 극단적으로 치달을 때는 이런 조약들의 파기는 예사였고, 식민지를 얼마나 보유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 국력의 척도였다. 마치 고대국가에서 노예를 얼마나 보유하고 있나 하는 것이 부의 척도였던 것처럼 말이다. 지금도 여전히 강대국들의 보이지 않는 힘의 작용 중 대표적인 것이 자유무역협정(FTA: Free Trade Agreement)이다. 수교가 그들의 재화를 공급하는 경제식민지가 되는 경우도 흔하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2015년 7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5개 상임이사국과 독일 등 주요 6개국과 이란이 핵협상을 타결한 지 불과 3년도 되지 않아 핵합의(JCPOA·포괄적공동행동계획)로 유예했던 대(對) 이란 제재를 다시 시행할 수도 있다고 발표했다.

한마디로 ‘약속파기’를 선포한 것과 다름없다. 그는 부임하자마자 동맹국들의 방위비 분담금 인상으로 긴장감을 준 것을 시작으로 미국의 국익을 위해서는 물불 가리지 않는 행보를 보여 왔다. 오바마 정부 당시 핵협상을 진행하면서 이란이 못미더워 여러 가지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했는데, 오히려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확인한 사찰 보고서에 따르면 이란은 분기별로 감축 조건을 잘 이행하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미국에서는 꾸준히 재협상을 하지 않으면 이란 핵합의를 파기하겠다고 위협을 해왔다.

2018년 6월 12일 북미 정상 회담이 싱가포르에서 열리기로 결정이 되었다. 판문점을 비롯해서 회담장소를 두고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처음 예상대로 정해진 모양이다. 판문점이 결정되지 않은 가장 큰 이유가 김정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보다 더 부각될 수 있다는 극우 인사들의 만류가 작용했다고 한다. 그럴 수 있다. 솔직하고 호탕한 성격으로 알려진 김정은 위원장과 그의 만남은 여러 가지 면에서 귀추가 주목된다. 파격적이면서도 자극적인 화두를 서슴지 않고 발언해오던 트럼프의 협상기술이 이번에는 어떤 결과를 낳을지 궁금하다. 게다가 북한이 억류되어 있던 한국계 미국인 3명을 즉시 석방한 것도 이례적이지만, 트럼프 대통령 내외가 마중나간 것도 이례적인 일이었다. 보여 주기식의 정치를 한다는 비아냥거림도 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그는 이를 의식하지 않고 원하는 대로 행동하는 추진력을 그대로 보여줘 왔다.

미국은 강대국이다. 경제적인 면이건 군사적인 면이건 상당부분에 있어서는 책임감 있는 언행을 필요로 한다. 이는 국제사회에서 힘을 과시하거나 국익을 명분으로 내세워 약소국들에게 술수를 부려서는 안 된다는 소리다. 술수는 권모술수(權謀術數)의 약자다. UN을 비롯한 산하 NGO단체들이 추구하는 것은 오로지 인류공생과 평화다. 영국과 프랑스를 비롯한 우방국들이 모두 만류한 이란과의 핵 협정파기를 트럼프 정부가 시행한 것은 잘못이다. 정권이 바뀌었다고 해서 국가 간의 약속을 파기해도 된다면 임기 말의 지도자를 둔 국가와는 어떠한 협약도 맺을 수 없다는 말이 된다. 미국은 명약관화한 약속 불이행을 어떤 미사여구로도 표현할 방법이 없다. 이는 한 국가에 대한 또 다른 그루밍(Grooming)범죄라고 할 수 있다.

대화는 기술이 필요할 뿐, 술수는 필요 없다. 시간이 지나면 모두 밝혀질 속내들이 한번은 통할 수 있을지 모르나, 두 번은 통하지 않는다. 총선을 앞두고 여야의 야설(野說)들이 부끄럽다. 도무지 이 나라 국회의원들은 일을 하려들지 않는다. 골목마다 누비고 다니는 선거운동으로 ‘얻는 표’의 수보다 민생현안을 뒷전으로 미루고 ‘잃는 표’가 더 많음을 어찌 모르는지 답답하기 그지없다. 정치라고는 문전에도 가보지 않은 필자의 눈에도 이리 잘 보이는 것들이 어찌 다선(多選)의원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건지 답답한 노릇이다. 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 제44조 제1항에 “사용자는 쟁의행위에 참가하여 근로를 제공하지 아니한 근로자에 대하여는 그 기간에 대한 임금을 지급할 의무가 없다”고 규정되어 있다. 국민은 사용자이고 국회의원은 국민들이 고용한 근로자이다. 부디 이를 부정하는 후보자들은 사퇴하는 것이 옳다. 유권자가 선출하는 자는 일꾼이지, 상전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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