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의료봉사를 다녀와서
베트남 의료봉사를 다녀와서
  • 승인 2018.05.13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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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호(대구시의사회 공보이사)



베트남 남부지역의 4월 날씨는 결코 만만하지 않다. 특히 빈증성의 4월은 무더위에 높은 습도로 숨이 턱턱 막히는 한증막 더위 그 자체이다. 그 더위 속으로 대구지역 5개 보건의료단체로 구성된 ‘메디시티 대구 해외나눔의료봉사단’ 60여명이 의료봉사활동을 떠나 4월 9일부터 3일간 4천여 명의 환자를 진료하고 돌아왔다.

최근 우리나라는 높아진 국제적 위상에 걸맞게 저개발국의 원조 활동에 많은 힘을 쏟고 있다. 초기에는 KOICA 등 정부 차원의 원조 활동이 주를 이루었지만, 근래에는 지자체, NGO, 기업 등 많은 단체에서 다양한 형태의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 중에서도 ‘메디시티 대구’의 해외 의료봉사활동은 단연 돋보인다. 직능간의 마찰이 없을 수 없는 보건의료단체의 특성을 고려하면 보건의료 5개 단체(의사회, 치과의사회, 한의사회, 약사회, 간호사회)가 합동으로 의료봉사활동을 매년 나서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로 타 지자체의 부러움의 대상이 되고 있다.

거기에 더하여 대구시와 메디시티 대구협의회의 세밀한 기획과 적극적인 지원 또한 명품이어서, 의료봉사를 다녀온 지역에 메디시티 대구의 브랜드를 각인시키고 대구시의 의료관광을 홍보하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 봉사활동에는 김연창 대구시 부시장이 직접 봉사단을 이끌고 현지를 방문하여 베트남의 거대 국유 기업인 베카맥스 그룹의 회장과 빈증성 인민위원회 의장 등 유력 인사와 교류하고 MOU를 체결하여 상호 협력의 물꼬를 열었다. 의료봉사활동이 단순한 봉사활동으로 끝나지 않고 지역 경제 활성화까지 연결되는 세일즈 모델을 제시한 것으로 향후 그 성과가 기대된다.

해외의료봉사활동은 기획 단계부터 귀국하여 해단하는 순간까지 긴장의 연속이다. 봉사단원 전체의 스케줄을 조절하고 수많은 의료 기기와 약품, 소모품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크고 작은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기고, 외국에서 펼치는 활동이라 예기치 못한 돌발 상황이 수시로 발생되어 자칫 잘못하면 소기의 성과를 달성하지 못하고 예산만 축내는 허울 좋은 골칫덩이가 되기 십상이다.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대구시와 메디시티 대구 협의회, 5개 보건의료단체가 서로 배려하고 양보하여 보조를 맞추고 갓 20대의 대학생부터 70대의 고령의 단원까지 함께 노력하여 성공리에 마칠 수 있었다.

내가 좀 더 일하고 한명이라도 더 진료하겠다는 단원들의 헌신적인 열정은 정말 칭찬받을 만한 일이었고, 이러한 분위기가 현지 의료진들과 환자들에게도 전해져 좋은 인상을 남겨 주고 돌아올 수 있었다. 봉사활동을 통해 많은 현지인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었지만, 선천성 심질환(심실 중격 결손증) 소아를 현지 병원과 긴밀히 연계하여 입체적인 진료를 하고 귀국 후에도 현지 병원과 협력을 통한 지속적인 진료의 길을 열어 놓은 것은 백미였다.

진료 마지막 날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진료소에서 4시간을 밀림을 헤치고 가야하는 오지인 환아의 집까지 왕진하여 환아의 상태를 다시 살펴보고 보호자를 안심시키는 의료진의 정성은 현지인들에 큰 감동과 반향을 남겼다.

봉사활동 기간 동안 많은 에피소드가 있었지만, 필자에게 제일 마음에 남는 것을 말하라면 베트남전에 참전하여 총상을 입었다는 70대 노인을 진료한 것을 꼽겠다. 초음파검사를 위해 옷을 걷어 올린 배에는 기찻길인 듯 두 줄기의 긴 흉터가 있었다. 상하복부를 완전히 가로지르는 흉터는 대수술의 흔적인 것 같아 통역을 통해 무슨 수술을 받았는지를 물었다. 암과 같은 거창한 병명을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베트남전에 참전하여 2발의 총탄을 복부에 맞아 생사를 가르는 대수술을 했다는 답이 돌아왔다. 북베트남군의 일원으로 한미연합군 2000여명에 포위되었으나 항복하지 않고 조국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싸우다 총상을 입었다는 것이다. 특히 한미연합군, 즉 한국군과 싸워 다친 상처라는 이야기에 40여년의 긴 세월에도 치유되지 않은 전쟁의 그림자가 아른거려 마음이 어두워졌다.

과거 김대중 대통령이 베트남을 방문하여 베트남전 참전에 대해 유감을 표명하는 것을 보고 한국에 대한 적개심을 버렸고 지금은 한국을 이해하며 한류를 좋아한다는 그 노인의 말에 다소 안도할 수 있었지만 진료실의 분위기는 여전히 어두웠다. 검사가 끝난 후 연신 고개 숙여 인사하며 고맙다고 두 손을 꼭 잡는 그를 보면서 베트남 사람들의 마음 한편에 아직 남아 있을지 모르는 전쟁의 상처를 치유하는데 우리의 의료봉사활동이 조금이나마 일조하는 것 같아 오길 잘 했다는 생각과 함께 날이 궂으면 아프다는 그의 상처가 호전되기를, 그리고 행복하게 장수하기를 빌었다.

이번 베트남 의료봉사에서 현지인들이 보여준 미소 한 조각은 긴 여정과 생소한 식사, 40도의 폭염, 과중한 진료스케줄을 견뎌내게 해 준 원동력이며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큰 선물이었다. 선한 일을 베풀 때 교만에 빠지는 선마(善魔)에 빠질까 우려하며 마음을 다잡고 출발하였으나 오히려 많은 것을 얻고 배워 온 귀한 시간이 되었다. 베트남전으로 상처받은 한국과 베트남의 모든 분들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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