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날은 간다 2
[문화칼럼] 날은 간다 2
  • 승인 2018.05.16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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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국 수성아트피아 관장
벌써 봄날은 저 뒤쪽으로 쳐졌고 우리는 여름의 앞자락에 얹혀 이 계절을 나고 있다. 온갖 봄꽃들은 우리를 행복하게 하고 때로는 시름에 젖게도 한다. 봄을 상징하는 개나리, 진달래가 필 무렵에는 화사해진 계절의 풍경만큼이나 사람들의 옷차림과 마음도 덩달아 예뻐지고 가벼워진다. 벌써 져버린 동백과 매화도 우리의 마음을 두근거리게 했고 지금은 철쭉이 한창이고 이팝나무가 거리를 예쁘게 수놓고 있지만 이제 거리엔 푸르름이 한층 짙어졌다. 입하가 지난 지 벌써 열흘도 더 넘었으니 봄날은 갔다라고 해야 하나.

누구나 자기만의 취향이 있겠지만 나에게 있어 봄꽃은 뭐니 뭐니 해도 벚꽃이다. 지극히 개인적 생각이지만 벚꽃은 너무 아름다워서 왠지 슬퍼 보인다. 예전에 같은 제목의 글에 적은 바 있지만 그것은 백설희가 부른 동명의 노래, 이 노래를 좋아 하셨던 우리 어머니 그리고 이 노래에 나오는 한 마디 ‘연분홍’ 이 색깔의 벚꽃 뭐 이런 연상된 생각에 의해 봄날과 벚꽃은 나에게 그렇게 비쳐진다. 특히나 봄비에 하염없이 져버리는 벚꽃을 보노라면 애잔한 마음 가눌 길이 없다. 해마다 오는 봄이지만 이번 해 만큼 봄이라는 단어가 난무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2018 남북평화협력기원 평양공연 ‘봄이 온다’ 그리고 ‘판문점의 봄’이라 불리는 남북정상회담과 판문점 선언 환송공연 제목도 ‘봄이 온다’이다. 돌이켜 보면 올 초만 해도 북의 핵실험과 이에 따른 미국의 코피작전 운운 등 일촉즉발의 전쟁 분위기가 감돌았으나 감동적 이야기가 유난히 많았던 평창 동계 올림픽 후 분위기는 급반전되어 그야말로 봄날이 우리에게 왔다. 이대로라면 열매가 무르익는 여름과 그 과실을 수확할 가을이 금방 올 것만 같다.

생각해보면 잊혀진 사람만큼 슬픈 존재가 없는 것 같다. 짧은 봄날처럼 우리 인생도 그렇게 속절없이 쉬 흘러가지만 누군가 자신을 기억해주고 그 이름을 불러줄 때 그 사람은 행복한 사람, 축복받은 인생 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의 이름을 불러 줄 때는 그 사람이 불림을 받을 만큼 가치 있는 인생을 살았어야 했고 남은 자는 그 사람에 대한 사랑을 품고 있어야 그렇게 할 수 있으리라. 우리사회가 잊지 않고 불러줘야 할 이름이 참 많다. 그런데 그렇게 해야 할 때 그렇게 하지 못함은 그 사람에게는 슬픈 일이고 우리는 사랑을 가지지 못한 자, 의무를 저버리는 자가 된다.

판문점의 봄은 감동적이었고, 비현실적이어서 아름다웠다. 하지만 누구나 다 마냥 기뻐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기쁨의 빛이 너무나 밝아 그 만큼 깊은 슬픔의 그림자에 젖어든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의무를 다하다 순국한 사람들의 이름을 그 희망찬 순간에 불러줬어야 했다. 천안함, 제2연평해전에 희생된 장병들의 이름을 불러줬어야 했다. 이렇게 좋은날 그들이 없어 우리는 슬프다 라고 말했어야 했다. 일본에 의한 진주만 습격에 대해 후일 미국은 ‘용서하라 그러나 잊지는 말라’고 했다. 이것은 우리 사회에도 유효하고 필요한 말이다.

역사의 큰 물줄기를 바꿀 수 있는 즈음에 크게 생각하고 행동해야지 그런 작은 일은 나중에 라고 할 일이 아니다. 특히나 참척(慘慽)의 고통에 힘들어 하는 이들의 마음도 못 헤아린다면 그건 아니다. 아무리 아프고 슬퍼도 우리가 잊지 않고 함께 울어주며 그 이름을 불러준다면 견딜 수 있지 않을까. 누군가 말했다 ‘함께 울어준 사람을 잊지 못한다’라고. 최근 열린 ‘제2연평해전 바자회’에 보수 성향 만화가가 사인회를 연다는 이유로 참석치 않은 해군의 처사는 너무 몰인정하다. 6.29에 공식추모 기념식을 갖는다지만 작은 행사라도 가서 우리가 잊지 않고 있다며 함께 마음을 나누는 것이 큰 기념식을 여는 것보다 더 큰 위로가 될 수 있지 않겠는가.

‘이 산 저 산 꽃이 피니 분명코 봄이로구나. 봄은 찾아 왔건마는 세상사 쓸쓸허드라’로 시작하는 단가 ‘사철가’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아차 한번 늙어 지면 다시 청춘은 어려워라’몇 해 전 이른 초봄에 세상을 떠난 우리 어머니께서 생전에 자주 흥얼거리셨던 대목이다. 사철가를 배워야겠다. 그래서 어머니 무덤에 술 한잔 따라놓고 이 노래를 불러 드려야겠다. 그럼 빙긋이 웃으며 ‘참 잘 한다’라고 하시겠지. 이렇게 또 봄날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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