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황선거(救荒選擧)
구황선거(救荒選擧)
  • 승인 2018.05.20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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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윤 시인
감자는 고구마, 메밀과 함께 대표적인 구황작물(救荒作物)이다. 가뭄이나 장마에 영향을 받지 않고,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특성 덕에 흉년이 들어 기근이 심할 때 주식물 대신 먹을 수 대표적인 작물이었다.

김동인이 1925년 1월 ‘조선문단’에 발표한 소설 ‘감자’는 제목과는 달리 소재는 고구마다. 옛 국어에서 감자(Potato)는 저(藷) 혹은 북저(北藷)라 불렀고 고구마(sweet potato)를 달콤한 저, 즉 감저(甘藷)라고 불렀기 때문에 사투리를 제목으로 썼다고 보인다.

이 소설에서 주인공 복녀(福女)는 정직하지만 가난한 농부의 딸로 태어나 15살에 80원에 팔려 동네 홀아비에게 시집을 간다. 그녀의 남편과 함께 재산을 탕진하여 빈민굴로 쫓겨나서 힘든 생활을 하다가 성매매에 눈을 뜨게 된다. 그 후 중국인 왕서방의 고구마 밭에서 서리를 하다가 들켰으나, 그에게도 성매매를 통해 생계를 이어간다. 그녀의 남편은 이 사실을 알고도 고소득에 눈이 멀어 묵인하고 만다. 그녀의 생계형 매춘은 오래가지 못했다. 왕서방이 새로운 처녀를 맞아 혼인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낫을 들고 찾아가지만, 오히려 그녀가 낫에 찔려 사망하고 그녀의 남편과 한방의사에게 뇌물을 건넨 왕서방은 무사하고 그녀는 공동묘지에 묻힌다는 내용의 작품이다. 소설의 감자는 그녀에게 본격적인 성매매를 유도하는 매개(媒介)가 되지만, 그녀의 몸과 마음을 끝내 구해내지 못했다. 그래서 비극이다.

요즘 감자가 새삼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겨울 한파와 냉해의 피해로 수급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감자가 품귀현상을 일으킨 때문인데, 이는 식당 자영업자들에게는 치명적인 손실을 일으키고 있다. 뿐만 아니라 제주에서는 감자역병까지 돌고 있어 사태는 더욱 심각하다. 앞으로도 수급에 청신호가 켜질 기미가 쉬 보이지 않는다. 흔한 농작물이었고, 음식을 조리할 때도 푸짐하게 썰어 놓을 수 있는데다 과자의 재료로도 많이 쓰이던 감자가 이제 금(金)자가 되고 말았다.

한 때 우리는 대부분 가난한 복녀(福女)였다. 힘든 상황에서도 제사상을 푸짐하게 올리려고 노력하고, 당장 먹고 사는 문제가 어렵다 해도 자식들 공부만큼은 시키려는 향학열은 전 세계 누구도 따를 자가 없는 그런 복녀였다. 그 덕에 남한은 고급 인적 자원을 활용한 경제성장을 거듭해서 제법 왕서방의 면모를 갖춰가기 시작했고, 우리가 그러했듯이 개발도상국의 근로자들이 대거 유입해 들어왔다. 외국인 근로자들을 무시하며 못난 모습을 보이기도 했고, 그들이 일자리를 서리라도 한 양, 복녀 취급하기도 했다. 외국인 근로자들의 수는 50만 명에 이르지만, 여전히 이들에 대한 대우는 불합리하고 비인격적인 요소들이 남아 있다. 전산을 비롯한 전문직에 근무하는 사람도 있으나 극소수에 불과하고, 대부분 내국인들이 기피하는 위험하거나 단순한 노무직에 종사하고 있다. 결코 그들은 대한민국 청년들의 일자리를 훔치는 ‘서리꾼’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감자나 고구마는 더 이상 구황작물이 아닌 지는 이미 오래다. 먹거리가 다양해 진데다가 패스트푸드점에서는 가끔 구색으로 먹는 감자튀김 정도의 간식으로 전락해버렸지만, 여전히 많은 음식들에는 꼭 필요한 작물이다. 그래서 음식점마다 비상이 걸리고 세 배 이상으로 터무니없이 인상된 감자를 두고 대안을 마련하는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예전에 양파 파동이 있었을 당시에도 멀쩡한 햇양파를 눈물을 머금고 농부들이 갈아엎어 버리는 경우가 있었는가 하면, 반대로 배추가격이 폭등함으로써 부실한 배추까지 사재기를 일삼는 몇몇 악덕 유통 업자들 덕분에 때 아닌 품귀현상을 겪기도 했다. 이번 경우처럼 천재지변으로 인한 품귀현상은 어쩔 도리가 없다. 가격이 비쌀 뿐이지, 구하려고 들면 구할 수 있는 감자를 보면서 한편으로는 격세지감(隔世之感)을 느낀다. 한 때는 백성들의 기근을 해결해주던 대체식량으로 역할에 비해서 푸대접을 받아온 감자가 이제는 요리의 부재료로 인정을 받고 있으니 말이다.

제 7회 전국 동시 지방선거가 이제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다. 재·보궐 선거를 병행하는 일부 지역에선 총선분위기만큼이나 열기가 뜨겁다. 이번 단체장들은 영양가도 높고 근기(根氣)도 오래가는 ‘감자’같은 사람이 당선되었으면 좋겠다.

우리는 사람을 뽑는 일에 뒷짐을 지는 일은 없어야겠다. 왜 그런 지 역사는 잘 일러주고 있지 않은가. 필자도 이번 선거에서 대한민국에 이로운 ‘구황감자’를 뽑기 위해 두 눈 부릅뜨고 사람 人자를 쿡 누를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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