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의학 = ‘한국’의 의학?
韓의학 = ‘한국’의 의학?
  • 승인 2018.05.20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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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칼럼
김기둥
시의사회 정보통신이사
마크원외과 원장
우리나라 한(韓)의학의 뿌리인 중국의 한(漢)의학(중국 한족의 전통의학이라는 의미)을 미국에서는 chinese medicine(중국의학)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이는 논리적으로 잘못된 용어이다. chinese medicine이라고 하면 ‘중국이라는 지역’에서 사용하는 의학이란 의미가 되는데 현재 중국에서의 주된 의료행위는 ‘현대의학’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국 의학계에서도 매우 싫어하는 표현이다. 사실 그 이전에는 불과 몇 십 년 전에 중화인민공화국에서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전통 중국의학(traditional chinese medicine)이라고 불렸는데 이는 중국 역사에서 고안된 여러 치료법들 중, 서로 유사성을 띄고 있는 여러 개념들과 치료법들의 집합을 의미한다. 1950년대와 1960년대엔 이 치료법들에 대해서 전례 없는 표준화가 강요되기도 했다. 과학이나 논리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저 정부의 명령에 의해서 말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traditional이라는 단어에 부정적인 뉘앙스가 쌓이면서 traditional을 슬쩍 빼버린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어떨까? 韓의학, 즉 한민족의 전통의학이란 의미를 담고 있다고 볼 수 있는데 애초 한의사협회는 korean oriental medicine(한국 동양의학)으로 불려왔다. 하지만 앞서 설명한 작명법에 근거한다면 oriental 또한 동양이라는 특정 지역을 의미하므로 잘못된 작명이라 할 수 있다. 동양에서 그것도 한국에서의 주류 의학 또한 당연히 현대의학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2013년 한의사협회에서는 한술 더 떠 oriental을 빼고 korean medicine으로 영어명칭을 바꿔버렸다. 즉 한국이라는 나라의 의학이라는 의미가 되어 버린 것이다. 국제적인 시각에서 봤을 때 엄청난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 있는 작명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한방의료가 ‘근거 중심의 과학적 논리와 검증을 바탕으로 한 현대 의학’인 척 꾸미려고 드는 것은 명칭뿐만이 아니다.

최근 한의사들의 중앙회 단체인 대한한의사협회가 의료법과 약사법에 따라 의사나 치과의사만 처방할 수 있는 신바로정·레일라정·에피네프린·스테로이드·항히스타민 등 전문의약품을 한의사가 사용하도록 한의사 회원들에게 안내하기로 했다. 한의사들을 대표하는 단체의 공식적인 이사회에서 의료인 면허 제도를 부정하고 불법행위를 조장하는 결정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이 실로 놀라울 따름이다. 협회가 소속 회원들을 모두 범죄자로 만들려 하는 것인지, 그간 자랑해마지 않은 ‘한약’이 있음에도 현대의학의 의약품은 무슨 필요가 있어 불법을 감수하고서라도 사용하려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한의사협회는 거기에 한술 더 떠 의과의료기기(현대의료기기) 사용으로 불법행위를 저질러 법원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한의사 회원들의 소송비를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불법행위를 저지른 회원들에 대해 자체적인 징계는 하지 못할망정 오히려 소송비를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한의사의 면허범위는 엄연히 법적으로 제한되어 있다. 그들이 항상 강조해 온 것처럼 그 근거가 되는 원리 자체가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하는 의학과는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사법부 또한 한의사의 전문의약품 사용 행위를 일관되게 불법행위로 판단하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지난해 의사나 치과의사만 처방할 수 있는 전문의약품을 한의사가 처방한 행위에 대해 자동차보험 진료수가가 인정되지 않는다며 삭감결정을 한 적이 있다. 이에 해당 한의사는 소송을 냈지만 법원은 “한의사가 일반의약품이나 전문의약품을 처방하거나 조제할 권한이 없음이 명백하다. 한의사가 전문의약품인 신바로 캡슐이나 아피톡신주사를 처방하거나 조제한 것은 한의사의 면허범위 밖의 행위에 해당한다!”면서 심평원의 삭감결정이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지난해 경기도 오산의 한 한의원에서는 한의사가 환자에게 전문의약품인 리도카인을 주사해 환자가 의식을 잃고 끝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한의사의 면허범위를 넘어서는 전문의약품 사용은 국민의 생명까지 위협할 수 있는 것이다. 정부는 불법 행위와 무면허 의료행위를 조장하고 방조하는 한의사 단체에 대해 보다 강력한 조치를 취해야만 한다. 그리고 지난 수년간 수조원의 정부지원금으로 한의학의 과학적 근거를 증명하기 위해 벌여온 온갖 노력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미진한 성과로 인하여 추진력을 잃고 있는 현 상황을 직시하고 인정해야만 한다. 한의사들이 현대 의료기기를 합법적으로 사용하겠다고 불을 켜고 달려드는 것에 그치지 않고 현대 의약품에까지 손을 데려는 것은 그 학문의 태생적 한계에 다다른 결과가 아닐지 깊게 성찰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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