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바로 서다
세월호, 바로 서다
  • 승인 2018.05.20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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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순란 (주부)



고2아들이 수학여행을 갔다. 어버이날, 여행준비를 한다고 11시가 넘도록 온 방안에 옷을 펼쳐놓고 고르고 있었다. 이제 스스로 선택할 나이가 되었기에 혼자 결정하라고 두었다.

아들은 변했다. 초등학교때까지는 밝고 착한 아이였다. 중학교때는 사춘기의 뇌는 자기 혼자 욹으락 붉으락한다며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데로 불쑥불쑥 나타나는 감정들을 이해해 주기를 바랬다. 고등학교 1학년, 공부를 하고 으쓱해하며 자신감이 늘었다. 고2가 되면서 공부시간과 집중시간을 좀 더 늘리기를 바라는 홍희와 아들의 갈등이 시작되었다. 1시간만 더, 아침일찍 일어나든지, 밤늦게 하든지 해주기를 바라는 엄마였다. 엄친딸과 조카의 공부시간을 듣고는 아들을 다그치고 싶은 엄마였다. 그러나 최대한 부드럽게, 아들의 의사를 존중하여, 자기주도적으로 결정을 내려 실행할 수 있기를 바라는 엄마였다.

할아버지 상을 당하고, 장례를 치른 후 아들에게 다시 한번 일어나는 시간을 협의했다. 7시에 일어나다가 6시로 일어나면, 엄마도 늦잠을 좋아하지만 같이 일어나겠노라고, 어떻냐고 물었다. 아들은 웃으며 알았다고, 그렇게 해보겠다고 했다. 홍희의 바람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결심을 해준 아들이 고마웠다. 홍희도 6시에 일어날 수 있을까 염려가 되었으나 자신부터 의지를 가지고 일어나보기로 했다.

첫날 비몽사몽 일어나 아들을 깨웠다. 아들도 간신히 잠이 깨어 일어나 앉았다. 조는지 마는지 모를 정도로 고개를 숙이고 휴대폰으로 수학인강을 들었다. 그래도 고마웠다. 홍희는 잠이 덜 깨어 잠을 깨우러 아침 산책을 나갔다 왔다. 출근해서도 머리가 띵하니 피곤하였지만 기분은 좋았다. 둘째날도 그랬다. 일주일만 되면 습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셋째날 아침에 겨우 일어났다. 그런데 아들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불을 돌돌말고, 몸을 더 웅크렸다. 작심삼일도 안 되는 것인가? 홍희는 아들의 의지를 불태워보려 세수라도 해봐라. 일어나서 턱걸이라도 해봐라, 밖에 나가 줄넘기라도 해봐라고 했지만 아들은 더 몸을 웅크릴 뿐이었다.

아들에 대한 기대를 단념해야 하나? 엄마로서의 욕심을 버리고 아들이 할 수 있는 만큼 하도록 격려해주어야 하나? 아들이 힘들어서 못 일어나니 원래대로 하고, 그 시간에 집중을 해보겠다든가 하는 말이라도 해주면 좋으련만 입을 다물고 몸으로만 의사표현을 했다. 홍희는 그런 아들이 답답했고 아들은 수학여행을 갔다. 서울로 가는 수학여행이었다. 경복궁도 가고, 동대문시장도 가고, 서울나들이를 떠난 아들이 밤새 안녕한지 궁금하여 문자라도 할까 하다가 참았다.

다음날 아침, 세월호가 직립한다고 뉴스에 나왔다. 많은 희생자중 단원고 학생들이 수학여행을 갔다가 참변을 당한 일이 떠올랐다. 침몰전 위급시에 부모에게 전화도 하고, 문자도 보냈다했다. 먼 길에서 한달음에 달려가지 못하는 부모, 해양경찰이나 해군이 구조를 해주겠지 기대한 부모, 정부가 일처리를 재빠르게 하리라 믿었던 부모들의 걱정들이 홍희의 가슴을 후벼팠다. ‘가만히 있으라’는 안내방송에 따라 가만히 있었던 아이들은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차디찬 바닷물속에 빠진 아이들, 시신마저 돌아오지 못한 아이들, 4년간 그 아픔이 얼마나 컸으랴.

왼쪽으로 넘어진 세월호가 선체를 바로 세우고, 내부안전조치를 마치는 다음 달 10일이후 미수급자 수색과 사고원인규명을 위한 정밀조사를 실시할 계획이라고 한다. 또 이후 세월호를 어떻게 보존할지에 대해서도 의논 중이라고 한다.

다시는 이와 같은 대참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안전점검은 물론이고 빠른 구조작업이 있어야 할 것이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에게 마음으로부터 깊은 위로를 드린다. 그리고 수학여행간 아들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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