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차가 지나간 역사 인근 여인숙에서
묶던 낯선 겨울밤은 깊고 어두웠다
아랫목에 엎드려 선데이 서울 마지막 장
펜팔란을 읽으며 무료함을 달랬다
귓밥 얼얼한 추위에
등뼈 꺾인 벌판도 낮게 엎드려 있었다
좀 슬은 나무판에 기차 시간표 적힌 팻말
흔들어대던 칼끝 바람
미명을 기다리던 사람들의
앞섶을 꼭꼭 여미게 했다
타닥타닥 타오르던
조개탄 난로 앞에 모여
지난 10월 척살된 유신독제를
화두에 올려 주고받으며
대단한 걱정 늘어놓는 사이에도
새벽어둠 위에 더 짙은
어둠이 자꾸 쌓였다
난로 위에서 구워진 고구마
나누던 그들의 훈훈한 정은
시대의 가난마저 녹였다
◇김성찬=대구 출생
1992년 심상 2회 추천완료
시집 <파란스웨터>
2017 19회 민들레문학상 대상
<해설> 역은 늘 쓸쓸한 깃발처럼 우리 가슴속에 녹아있다. 더구나 막차 떠난 플랫폼에는 온기 잃은 의자만 덩그러니 앉아있다. 그래도 좀 슬고 낡고 찢겨진 시간표 팻말이 왜 그렇게 다정하게 다가오는 것일까? 참 어렵게 살아온 우리들의 발자취가 거기 있기 때문이 아닐까? -제왕국(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