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란은 눈보라에도 푸르름 잃지 않고 살고 있습니다
때죽나무는 뿌리 내린 곳이 좋아 제자리를 지킵니다
그들은 피우는 꽃이 예뻐도 예쁘다하지 않습니다
다람쥐는 더 좋은 곳으로 갈 수 있어도 가지 않습니다
다른 친구들의 삶과도 비교하지 않았던 것이겠지요
춘란은 때죽나무의 높음을 부러워하지 않고
때죽나무는 다람쥐가 오거나 가거나 간섭하지 않습니다
다람쥐는 먹을 수 있는 열매가 없는 춘란을 미워하지 않습니다
선방에 든 듯 평화롭습니다 공소에 든 듯 경건합니다
그곳은 제 혼자 소유하지 않는, 하나같이 말을 하지 않고 사는 /산입니다 산비탈입니다 계곡입니다 별빛만 가득합니다
◇김윤현 = 경북 의성 출생. 1984년 <분단시대>로 등단. 시집 <적천사에는 목어가 없 다>, <들꽃을 엿듣다>, <지동설> 등.
<해설> 붙박이 춘란이나 때죽나무도 제 범위 내에서 서로 의지하며 시기하며 산다. 우리네 삶과 별반 다르지 않다. 한데 우리는 그 란이나 나무들의 평화롭고 아름다운 겉만 본다. 그리고 제 9연의 선방(禪房), 공소(公所)란 단어들은 적절한 비유다. 참선하는 방과 공공사무실이니 그러하다. 또한 연과 연, 단어와 단어들의 의미 충돌에서 빚어지는 재현적 이미지가 맛깔스럽다. -제왕국(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