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기가 민망해 ‘복주머니란’ 새 이름 얻었다네
부르기가 민망해 ‘복주머니란’ 새 이름 얻었다네
  • 윤주민
  • 승인 2018.05.23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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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휘영의 야생화 편지 (19)개불알꽃
생육조건 까다롭고 무분별 채취
멸종위기 야생식물 2급으로 지정
습윤한 산기슭 반 그늘 풀밭서 자라
최근 전국적으로 새로운 개체 발견
5~6월에 개화해 7~8월에 결실
‘비너스의 잃어버린 슬리퍼’ 전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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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너스의 잃어버린 슬리퍼를 만나다

2013년 이른 봄 함백산 금대봉을 가겠노라고 벼르고 벼르다가 봄철을 다 놓쳐버렸다. 계절은 초여름으로 접어들어 고산지대의 낙엽수림도 신록으로 물들고 난 6월초 겨우 짬을 내어 두문동재로 향했다. 금대봉, 은대봉을 거쳐 대덕산을 돌아 검룡소 쪽으로 하산할 작정이었다. 며칠간이나 비가 내린 후의 태백산 산지에는 파아랗게 말끔한 하늘이 열어 젖혀 있었다. 간단한 장비를 챙겨 금대봉 가는 길로 접어든다. 참나무의 새순은 이제 무성히 자라 산정을 초록으로 뒤덮고 있다. 이미 얼레지와 홀아비바람꽃을 비롯한 봄꽃들은 열매가 맺히고 있었다. 낙엽수림 아래의 풀숲에는 풀솜대, 요강나물, 쥐오줌풀과 같은 초여름의 풀꽃들로 세대교체가 되어가고 있는 중이었다. 이번에도 또 타이밍을 놓쳐버렸구나 했다. 금대봉을 가는 길섶으로 눈개승마, 범꼬리도 모습을 드러낸다. 이제 난초류도 나타나겠구나 하면서 나무가 없는 넓은 개활지로 들어선다. 지느러미엉겅퀴가 무성한 곳에 은난초와 금난초도 보인다. 그런데 이게 왠일인가. 그곳에는 그 귀하다는 ‘비너스의 잃어버린 슬리퍼’ 개불알꽃이 한 송이 피어있는 것이 아닌가? 부지런히 각도를 바꾸어가며 셔터를 눌렀다. 그리고 2년이 지나 개화시기를 맞추어 다시 그곳을 찾았다. 그런데 간신히 찾아놓은 ‘비너스의 잃어버린 슬리퍼’는 누군가에 의해 다시 사라지고 없었다. 개불알꽃은 꽃의 모양새가 개의 ‘불알’과 닮았다고 해서 이름이 붙여진 식물이다. ‘봄까치꽃’이라고도 하는 ‘개불알풀’과는 전혀 다른 꽃이다. 부르기가 민망하다고 해서 개불알꽃도 ‘복주머니란’이라 개명하여 부르기도 한다. 생육조건이 까다로운데다 무분별한 채취로 인해 만나기란 좀처럼 쉽지가 않다. 멸종위기 야생식물 2급으로 지정되어 있다.

#개불알꽃의 특성

개불알꽃은 그 특이한 모양 때문에 복주머니란, 요강꽃, 개불란, 작란화, 까치오줌통, 오종개꽃 등의 이칭을 갖고 있다. ‘복주머니란’은 개불알꽃이라는 이름이 부르기 좀 거북하다는 이유로 ‘국가표준식물목록’을 작성하면서 새롭게 명명한 이름이다. 다른 이칭들은 대개 모양새에 연유하여 부르는 이름들이다. 개불알꽃은 외떡잎식물 난초목 난초과의 여러해살이풀로, 학명은 Cypripedium macranthum Sw.이다. 속명인 시프리페디움(Cypripedium)은 비너스(Cypris)와 슬리퍼(pedilon)의 합성어로 ‘비너스의 슬리퍼’란 의미이다. 여기서 비너스는 로마신화에서 미의 여신 베누스(Venus)인데 원래 그리스 신화에서는 사랑과 풍요의 여신 아프로디테(Aphrodite)이다. 시프리스(Cypris)는 아프로디테의 고향 키프로스(Cyprus)를 의미하며, 이는 곧 아프로디테 즉 비너스를 나타낸다. 종명 마크란탐(macranthum)은 큰 꽃을 의미하는 라틴어이다. 1753년 식물학자 린네에 의해 꽃의 설판 모양이 ‘비너스의 슬리퍼(Venus slipper)’와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영명으로는 ‘레이디슬리퍼(Lady’s slipper)‘, 일본에서는 ‘아츠모리(敦盛)’라는 장수가 사용한 투구와 같다고 하여 아츠모리소우(敦盛草)라 부른다.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복주머니란속(Cypripedium)의 종류로는 광릉요강꽃, 복주머니란(개불알꽃), 털복주머니란, 흰복주머니란, 노랑복주머니란, 얼치기복주머니란 등이 있다.

개불알꽃은 습윤한 산기슭의 반그늘이 진 풀밭이나 볕이 잘 드는 낙엽수림 아래에서 잘 자란다. 본래 백두산 등 고산지대에 자라는데 지리산, 보현산, 설악산과 태백, 정선 등지의 고산지대에 분포하며 그 개체수도 많이 줄어 만나기 쉽지 않은 희귀종이다. 그러나 최근 전국적으로 개체수가 새롭게 발견되고 있다. 줄기는 곧게 서고 높이 20~50㎝ 정도로 자란다. 잎은 어긋나기로 나며 꽃은 꽃자루 끝에 붉은색으로 1개씩 달린다. 꽃의 크기는 어린 아이의 주먹 정도로 아주 큰 것도 있다. 5~6월에 개화해 7~8월에 결실한다. 지리산을 기준으로 5월초~5월 중순, 태백산을 기준으로 6월초~6월 중순 고산지대의 풀밭에서 만날 수 있다. 한방에서는 뿌리를 오공칠(蜈蚣七)이라 하여 주로 풍증을 다스리거나 소종양, 행혈에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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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불알꽃의 전설

미와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Aphrodite)는 끊임없이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는 성격의 소유자였다. 어느 봄날 아프로디테는 사랑의 파트너를 찾기 위해 신들의 파티에 갔지만 마음에 드는 짝을 찾지 못했다. 외롭고 답답한 마음에 아프로디테는 지상으로 내려가 여기저기 명승지를 산책하고 있었다. 아프로디테가 이타 산을 지날 때였다. 눈에 띌 만큼 용모가 고운 소년이 양을 돌보고 있었다. 양치기 소년 안키세스였다. 양들이 풀을 먹다가 다른 곳으로 흩어지면 피리를 불어 양들을 다시 모으는 모습이 여간 사랑스럽지 않았다. 그렇지만 여신인 자신이 직접 안키세스 앞에 나타나면 놀라 달아날 것이 뻔했다. 아프로디테는 숲에 숨어서 기회만 엿보고 있었다. 그때였다. 프리지아 왕의 딸인 오트세우스 공주가 시녀들과 함께 들판에서 꽃을 따는 것이 보였다. 그녀는 예쁜 들꽃들이 담긴 작은 바구니를 들고 있었다.

양치기 소년 안키세스는 우연히 들꽃을 따는 공주 일행을 보게 되었다. 그 광경이 너무 평화롭고 아름다워 공주 일행을 지켜보던 안키세스는 그만 오트세우스 공주에게 한눈에 반해 버렸다. 공주는 그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안키세스는 공주 일행의 주위를 서성이며 공주가 자기를 바라봐 주고 말을 건네주기를 간절히 기다렸다. 그러나 공주 일행은 안키세스가 있는 곳에는 전혀 관심도 주질 않았다.

이 광경을 숨어 지켜본 아프로디테는 안키세스에게 다가갈 절호의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다. 아프로디테는 바로 오트세우스 공주로 변신하여, 멍하니 바위에 앉아 있는 안키세스에게 다가갔다. 안키세스는 허탈한 마음을 달래는 듯 피리를 불고 있었다. 그 어느 때보다 슬픈 곡조였다. 아프로디테는 안키세스의 등 뒤에 앉아 연주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한 곡이 끝나자 아름다운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좋은 곡이군요. 정말 아름다운 음악이에요.” 놀란 안키세스가 뒤돌아보았다. 가슴을 졸이며 지켜보던 그 아름다운 아가씨가 내 곁에 와 있다니! “아, 네….” 안키세스는 가슴이 두근거려 말을 잇지 못했다. “저는 프리지아 왕의 딸 오트세우스입니다. 당신이 연주하는 피리소리가 너무 감미로워 여기까지 왔습니다. 방해하였다면 용서하세요.” “아 아닙니다. 공주님께서 어지 이런 곳까지….” “한 곡만 더 들려주실 수는 없을까요?” “서툰 솜씨지만 공주님께서 들어주신다면 영광입니다.” 안키세스가 부는 피리소리는 너무나 감미로웠다. 사랑의 노래를 연주하는 안키세스의 등은 따뜻하기만 했다. 아프로디테는 가슴이 설레고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지금까지 그 많은 사람을 만나면서 사랑을 즐겨왔지만 이런 기분은 처음이었다.

둘은 어느덧 하나가 됐다. 그때였다. 언덕 아래쪽에서 여러 사람이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프로디테는 여신의 직감으로 오트세오스 공주 일행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너무나 급한 나머지 다시 만자는 약속도 하지 못한 채 달아났다. 아프로디테는 한쪽 구두가 벗겨진 줄도 모르고 숲 속으로 달아났다. 아프로디테의 예쁜 구두는 한 송이 꽃으로 변했다. 그 꽃은 침실에서 신는 슬리퍼와 같은 모양이었다. 그 후, 로마에서는 이 꽃을 ‘베누스의 슬리퍼(Venus’s sleeper)’라 했는데 지금도 유럽에서는 그렇게 부른다. 베누스의 영어식 발음은 비너스이고, 비너스는 아프로디테의 영어 이름인 것이다. 미국에서는 ‘여인의 슬리퍼 (lady’s sleeper)’ 라고 부르는데 ‘비너스의 잃어버린 슬리퍼’에서 연유하는 것이다.

연못가 누운 소나무 아래/ 올봄에도 개불알꽃이/ 두 송이나 피었다/ 눈썹만한 햇볕에서도 고개 돌리고/ 솔개그늘 좋아하는/ 개불알꽃// 누운 소나무를/ 차일로 삼아/ 들깻빛 반점도 선명하니/ 발그레한 불알 두 쪽이/ 암내라도 맡았는가/ 갸웃갸웃 흔들린다(개불알꽃/ 오탁번)

칼럼니스트 hysong@y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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