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백의 미 살린 누드화 속 여인, 존재 본질을 묻다
여백의 미 살린 누드화 속 여인, 존재 본질을 묻다
  • 황인옥
  • 승인 2018.05.24 07: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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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옥이 만난 작가> 극재 정점식(1917~2009)
관능 다룬 서양누드와 달리
모성애와 잉태의 근원 확보
일제치하·남북분단 겪으며
존재의 본질에 질문한 결과
극재작-나부1976년
극재 작 ‘나부(1976년)’


선구자는 외롭다. 때론 비참하기까지 하다. 지역인물을 재조명하는 강연장에서 문득 든 생각이다. 대구지역 출신 최초의 여성 영화감독인 故박남옥을 재조명하는 자리였다. 그날 강연자는 대구지역 영화인들이 대구에 머물기보다 활동무대를 중앙으로 옮겨가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강연을 마친 강사는 영화의 불모지나 다름없는 대구의 영화산업 활성화를 위한 지역민들의 관심도 촉구했다. 그의 호소가 마치 대구지역화단의 현 실태를 비추는 듯하였다. 중앙무대는 지역예술인들의 로망이자 넘어야 할 산이다. 70년대에도 다르지 않았다. 오늘날처럼 교통과 미디어(Media)가 발달하지 못한 당시 중앙과 지역예술의 간극은 극복해야할 현실이었고 중심은 늘 중앙으로 기울었다. 1950~60년대에도 전후(戰後)시기였던 만큼 화단의 분위기는 미래를 예단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故극재 정점식 선생(이하 극재)의 행보는 중앙화단과 교류로 이어졌고 극재는 대구 시민의 한 사람으로 자리를 굳혔다. 더하여 1950년대 이래 대구로 피난 온 문인 및 예술인들과 소통하며 예술의 지평을 넓혀갔다.

극재라고 좌절이 없었을까. 종잡을 수 없는 삶의 한 가운데를 걸어온 극재도 불완전한 사람이었다. 형태와 색채가 두루 어우러진 화면전체 분위기에서 우리의 모습이 얼비치는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극재의 그림 면면에는 어둡고 암울한 시대를 살아낸 화가의 족적이 진솔하게 담겼다. 곰브리치는 서양미술사(The history of art)에서 “아름다움의 진실은 표현의 진실과 같다”고 하였다. 극재가 작품에 녹여낸 아름다움은 치열한 삶이 토대된 생득적인 것이다. 일찍이 서구현대미술을 받아들였지만 모방보다 당면한 조국의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진솔하게 예술로 승화시켰던 것이다. 극재가 ‘독학적 경험주의’ 에서도 밝혔듯이 극재의 그림은 시처럼 함축적이다. “(상략)그것을 치밀한 사실적인 묘사라기보다 전체적인 분위기를 기조로 한 생략과 데포메이션(deformation)에 의한 것이지만 어떤 시적(詩的)관심에서 디테일하게 미시적으로 묘사하면서(하략)”(정점식 화집 p.79. 2008년). 한편 동양정신과 한국적 정서도 감돈다. 특히 ‘한국인의 미의식’에 관심을 보인 극재는 ‘여백의 미’에 ‘한국의 미’를 견주었다. 수필집 <선택의 지혜>에 수록된 ‘한국의 미’에 관한 극재의 단상에서 그의 미의식을 가늠해볼 수 있다. 앞선 글에 이어 14쪽 분량의 ‘한국의 미’를 축약한 내용을 추가하면 다음과 같다.

“한국인의 예술에 나타난 미의식(美意識)은 이 여백공간에 대해서 특별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그것은 메아리치면서 되돌아오는 오행상생(五行相生)의 원리와 관련된 모습이다. 서양인들의 물질형성의 배후에 있는 공간은 심연(深淵)과 같은 허무(虛無)를 뜻하지만 동양의 그것은 모든 것을 포괄하고 있는 형(形)이 없는 의미로서의 공간(太虛)을 뜻한다. 이 오행상생의 태허상생(太虛相生)의 태허사상(太虛思想)은 물, 불, 공기, 흙과 같은 원소적(元素的)인 기(氣)가 물질을 태어나게 하는 순환작용의 터전으로서의 공간(空間)이다. …(중략)… 어떤 시인의 말에 모국어(母國語)가 없다면 인간은 모든 생물 중에서 가장 우둔한 존재로 떨어질 것이라는 말을 하고 있다. 이 모국어라는 말의 뜻은 반드시 언어적인 것만이 아니라 우리들 감관(感官)에 스며있는 인간적인 특징을 말함이다. 국적이 없고 이웃이나 벗이 없는 존재, 가슴을 열고 나누는 내밀의 대화를 잃은 인간의 삶이란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중략)… 이 현실은 고정되어 있는 실체가 아니라 쉼 없이 움직이면서 흐르고 있다. 천 년 전의 현실과 오백년 전의 또는 백 년 전의 현실과 오십년 전의 그 현실들은 그 때를 살아온 사람들이 겪어야 했던 터전이다. 따라서 그것에 대응하면서 살아온 사람들의 의식도 그 시대에 따라서 달라져왔다. 그러나 그것이 살아오면서 버릴 수도 없고 버려지지도 않는 특성이 있다면 그것이 우리들의 전통적인 미의식(美意識)이다.…(하략). (정점식 에세이 3 <선택의 지혜>, 미술공론사, 1993, pp.96~109.)

위 글은 한국의 풍속이나 예술에 나타난 ‘한국의 전통적인 미(美)’가 핵심이다. 극재는 그것이 ‘장대한 거인문화도 아니요 화려한 감각의 미도 아닌 근면과 성실로 수놓아진 인간적인 미’라고 한다. 바로 극재의 예술과 맞닿는 지점이다. 단상에서도 밝혔듯이 극재가 내린 ‘한국의 미’에 대한 정의는 서구 모더니즘과는 거리를 둔다. 제1차 세계대전 전후로 성행한 서구 모더니즘은 다양한 양상으로 세계 여러 지역에서 전개되었다. 이를테면 표현주의(expressionism)를 비롯하여 미래파(futurism), 다다이즘(dadaism), 초현실주의(surrealism), 주지주의(intellectualism), 신즉물주의(Neue Sachlichkeit) 입체파(cubism), 야수파(fauvism), 추상표현주의(abstract expressionism) 등이 그것이다. 신모더니즘(neo-modernism) 혹은 후기모더니즘(post-modernism)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그 중 추상표현주의는 미국의 평론가 알프레드 바(Alfred Barr)가 1929년 미국에서 전시 중이던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 1866~1944)의 초기작을 보고 형식적으로는 추상적이나 내용적으로는 표현주의적이라고 한 데서 유래되었다. 1940~1950년대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회화의 한 양식이었던 추상표현주의가 한국에서는 전쟁 이후 암담한 현실을 표현한 조형언어였다. 정치현실의 반영이나 한국의 전통에 대한 관심 등 한국의 현실에 적응한 양식으로 정착한 것이다. 극재는 초기의 몇몇 작품을 제외하면 일생동안 추상미술에 기반을 둔 작업을 한 작가이다. 분명한 것은 극재의 작품은 서구의 추상표현주의와는 다르다는 것이다. 작품 <카리아티드>(1971)만 보아도 그렇다. 극재의 누드를 관능이나 애욕의 은유로 치부할 수 없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앞서 나열하였듯이 극재의 1970년대 작품 모티브의 상당수가 인간 형상이었다. 70년대 이후의 작품에서도 인간형상은 꾸준히 등장한다. 서양미술사에서 여성의 나신은 신의 몸에 존재를 숨기는 것으로 출발했다. 비너스상이 그랬고, 성모상도 동류이다. 그리스시대 이후에도 여성의 몸은 미술작품에서 즐겨 다뤄진 소재이다. 마네((Edouard Manet)가 1863년 <올랭피아>를 발표한 이후 현실적인 여인의 몸도 당당하게 그림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다. 이런 사정을 감안할 때 누드가 극재만의 차별화된 소재라고 할 순 없다. 그러나 극재의 관심사를 유추해볼 수 있는 단서로 주목할 만하다. 극재의 그림에서 인체는 코스튬(costume)보다 누드가 압도적이다. 바로 극재가 고민하던 본질(本質)에 대한 아이콘이자 싱징체가 아닐까 한다. 극재가 성장할 당시 한국의 생활상은 빈곤하고 척박했다. 일제강점기와 분단의 비극이 원인이다. 현재의 안정된 삶은 비극을 극복한 선조들의 땀이 담보된 것이다. 그러나 예의범절과 온정은 한국인에게 체화된 삶의 미덕이었다. 이러한 한국인의 정서와 문화는 극재의 작품과 무관하지 않다. 요컨대 극재의 그림에 등장하는 여인들은 고난으로 점철된 현실마저도 푸근하게 품어 안는 모성애 내지는 모본(母本) 다름 아니다. 음양오행(陰陽五行)에서 여성은 음(陰)에 해당하며 대지이고 잉태의 근원지이자 생명의 출발점이다. 미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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