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미술관 박정기 ‘걷다 쉬다’展
대구미술관 박정기 ‘걷다 쉬다’展
  • 김성미
  • 승인 2018.05.27 21:1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내면에 저장된 시대정신
현대인의 내면·사회 병리 풍자 주제
퍼포먼스·영상·설치·드로잉 50여점
_MG_0491


어느날 대화 속에 ‘군인정신’이라는 단어가 불쑥 나왔다. 무의식적으로 뱉어 놓고 흠칫했다. 제4차 산업혁명 시대의 핵심 정신에서 한참이나 지난 단어다. 이전 시대에 매우 중요했던 ‘군인정신’이라는 단어를 지금도 의미의 강도는 다르지만 불쑥불쑥 사용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놀란 것.

그러면서 과거에 중요하게 작동했던 정신들이 지금 세대에게 어떤 영향력을 미치는지 궁금해졌다. 곧바로 그 시대의 정신을 함축적으로 축출할 수 있는 것을 찾았다. 대구미술관에서 선보이는 작품 ‘먼 가까운’의 탄생 스토리다. 대구미술관 전시장 마주보는 두 벽면에 재향군인회 영천시회와 대구 수성구 동신교회의 과거부터 지금까지의 활동사진들을 각각 테마별로 전시했다.

“재향군인회나 교회라는 공동체를 떠올릴 때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상반된 생각들이 함께 존재한다고 봐요. 그것은 그 단체들에 대한 경험에서 비롯됐을 수도 있지만, 산업화시대에 대한 우리들의 무의식적인 생각들이 작용했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작가는 왜 과거의 시대정신을 대할 때 특정한 감정이 일어나는지를 전시장에서 펼쳐놓고 환기해보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주로 현실에 대한 통찰을 환기의 형식으로 풀어내고 있다.

대구미술관 4,5전시실에서 박정기의 ‘걷다 쉬다’전이 열리고 있다. 그는 젊은 작가 지원 프로젝트인 Y+ 아티스트 프로젝트 3번째 선정 작가다. 전시는 설치, 퍼포먼스, 영상, 드로잉 등 현대인들의 내면과 이 시대의 사회 병리적 현상들을 날카롭게 풍자하는 50여점의 작품을 총 6개의 주제로 구성했다.(사진)

작품 ‘가까운 먼’은 산업화를 이끈 시대정신을 현재적 시점에서 다루고, ‘알바천국Ⅱ’는 신자유주의시대 노동의 의미를 생각한다. 또 ‘말 같잖은 소리’는 언어 세계를 넘어 직관적 의미 전달을 실험하고, ‘모델의 방’은 작가가 현실공간에 대한 상상을 아이디어들을 모형과 드로잉의 형태로 모아놓았다.

그리고 물질적 소비욕구으로 가득찬 현시대를 비판하는 ‘첫 번째 정원’과 눈을 통해 외부로 향해있는 시각적인지 방향을 내면으로 돌려놓은 ‘말레비치 보기 20초’ 등도 소개되고 있다.

이번 전시를 끌고 가는 중심은 작품 ‘알바천국Ⅱ’과 ‘첫 번째 정원’이다. 걷기도 하고, 쉬기도 하는 휴식의 상징인 정원이 가진 공간적 특성을 비틀어 주제화하고 자기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내면의 정원을 되돌아 걸어보는 형식으로 작품들을 구현했다.

‘알바천국Ⅱ’는 대나무 100그루로 정원을 꾸민 후 대나무 사이에 동물 인형탈과 의자를 놓고 바닥에는 전단지를 놓았고, ‘첫 번째 정원’은 ‘에덴동산에서의 추방’을 소재로 에덴동산을 구현하고 뱀가죽 부츠와 사과박스를 설치했다. 두 작업은 자본축척의 부속물로 전락한 노동과 인간의 지나친 소비욕구로 인해 착취의 대상이 되어버린 자연 등 자본주의의 민낯을 다룬다.

작가는 “자본주의 경제시스템들이 우리들의 의식·무의식에 어떻게 투영되는지를 현대인들의 내면 풍경을 통해 다각적으로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무의식에 저장된 시대정신, 노동의 의미, 언어의 의미 왜곡을 넘어 직관적 의미전달 실험, 모델을 이용한 아이디어를 통한 현실개입과 구현, 현시대 비판 등 작품별 사유가 다르다.

통일감 없이 서술적으로 주제를 나열한 것 같지만 공통분모는 있다. 작품 전반을 관통하는 주제는 현대인의 내면과 시대상에 대한 은유. 주제가 지극히 추상적일 개연성이 높고, 작업의 전제가 통렬한 통찰이다. 어떤 형식으로 담아내면 가장 효율적인 전달법이 될까? 작가는 개념미술에 손을 들었다.

“미술에 대한 이야기로 출발하지만 사회적, 경제적 철학적인 문제를 함께 다루고 있어요. 기존의 생각이나 관념을 전환하는 방식으로 작업을 많이 진행해 왔어요. ‘이것이다’라고 내용과 형식을 확정하기 보다 관람자들이 여러 측면에서 다가갈 수 있게 환기하는 방식으로 작품을 구현해 오고 있어요.” 전시는 8월19일까지. 053-803-7900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많이 본 기사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