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 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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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5.31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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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조





서부 정류장 삼각지

첫차타고 왔는지 턱하니 선수치고

전을 펼친 저 여자에게

초겨울 바람은 칼날 같은 손 내밀었다가

이따금 햇살 한 줌 얹어줍니다

손톱 빠진 엄지손가락 끝으로

허옇게 벗겨내는 아랫도리와

새파랗게 남겨진 윗몸이

차곡차곡 쌓이는 겨울 대파를 보며

저 여자의 하루치 탑 무늬를 읽습니다



매운바람 마시며 저렇듯

대파의 떡잎 까는 일이란

세상의 남루함과 내 허물까지

다 내려 줄 것만 같습니다



보폭을 좁히며 오가는 사람들 손으로

한 장 한 장 옮겨지는 파 봉지들

어쩌면, 생의 숱한 횡단보도 건너온

인근 성서공단 다국적 근로자들의

오늘 저녁 한 끼, 붉은 라면 발에 모셔 질

저 파 탑 앞에서

겸손해 지는 법 배웁니다

퇴근시간 하늘에 검은 구름 몰려오는 거보니

푹 하니 첫눈, 오시려나봅니다



◇박경조=경북 군위 출생

2001년 <사람의 문학>으로 등단

 시집 <밥 한 봉지>, <별자리> 등





<해설> 서부 정류장 삼각지시장 모퉁이에 전(廛)을 벌린 아줌마의 대파가 탑처럼 쌓여지고, 짓뭉개진 손가락으로 떡잎 까는 아줌마의 하루치 삶이 보폭을 좁히며 오가는 사람들의 손으로 옮겨질 때마다 입가로 스치는 미소 한 다발의 파 봉지들…. 다국적 근로자들의 따뜻한 한 끼로 모셔진다. 그리하여 삶의 후덕한 겸손을 깨닫게 된다는 화자의 비장미가 아름답다. -제왕국(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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