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심검문의 달을 보내며…
불심검문의 달을 보내며…
  • 승인 2018.05.31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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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선 대구교육대
학교대학원 아동문
학과 강사
벌써 유월이다. 불심 검문(不審檢問)의 달이 지났다. 불심 검문을 받게 되면 죄가 있건 없건 간에 누구나 긴장하기 마련이다. 그렇듯 늙은 선생들은 해마다 5월 스승의 날이 다가오면 제자들의 불심검문(不審檢問) 문자나 전화를 받을까 긴장하게 된다.

“선생님, 저 OO에요. 모르시겠어요?” 몇 십 년이 흘러도 자기가 아직도 선생님께 잊혀지지 않고 있는지 어떤지를 이름 두 자만 들이대고 불심검문을 해오기 때문이다. 내 탓이 큰 탓이다. “너네들 성공해서 찾아오는 것도 좋지만, 살다가 힘들 때 찾아오면 더 좋겠다” 일 년을 담임하고 울며 헤어지면서 세월이 가도 오로지 선생으로 남아주겠다고 큰소리쳐 보낸 탓일까? 초등학교 새내기 교사라서 왕따 당하는 아이의 일기장을 보고 왕따를 해결해주고, 누구를 좋아하는 가슴앓이 병을 앓는 아이의 편지를 받으면 다리를 놓아주고 부모님 문제로 고민하면 집에 까지 달려가는 등, 내가 해결해줄 수 있는 소소한 것들이라 큰소리쳤다. 세월이 가고 제자들이 커가고 다시 많은 제자들과 인연을 맺어가면서 서서히 버거움을 느꼈지만 선생의 자존심을 걸고 계속 큰소리를 쳐대었다. 덕택에, 통 소식 없다가도 군대 입영 통지서를 받으면 떼거지로 몰려왔다. “힘들 때 찾아오라 해서요”하며 몰려든 녀석들을 보면 별 수 있나? 데리고 가 삼겹살이나 구워 먹여 등 떠밀어 보내놓고 군대 가 있는 동안 보라고 ‘좋은 생각’이나 ‘가이드 포스트’지를 일 년 간 구독 신청해주는 걸로 내 책임을 땜빵해 나갔다. 점점 제자들이 나이 들면서 방 구하는 문제, 취직자리 구하는 문제 등 감당하기 버거운 일들이 늘어났다. 시집 장가 갈 때 주례를 써달라는 녀석까지 생겨나 “내가 여자라서 좀 그래”하며 서서히 거절을 하게 되고 크리스탈 패에 축시를 써서 보내주는 걸로 축하를 땝빵해 나갔다.

그런데 올해 걸어온 불심검문은 이름 두 자도 대지 않고 들이대는 검문이었다. “선생님, 늦게 죄송합니다. 주무시는지 모르겠습니다” 밤 11시에 온 문자다. 이런 문자를 받으면 ‘힘들 때 찾아오라’는 내 말에 책임을 져야 할 일이 분명 생긴 것임을 직감하게 된다. 어쩌면, 저네들끼리 모여 술 먹다가 옛 선생 생각이 나서 전화했다고 하던 녀석들도 있긴 했지만. “누구신지요?” 문자를 보냈더니 “아주 옛날 선생님 제자였습니다”한다. 누구란 말인가? 한참 있다가 전화가 왔다. “선생님 저 진입니다. 겨울에 제 손이 부르텄다고 제 손에 바세린 발라주셨죠?” “그랬나? 그래. 진아 반갑다” 기억나는 척 대꾸하며 얼른 기억 창고가 되는 학급문집의 글들을 떠올려본다. 서른 두 살 지은이도 나를 찾아올 때 학급문집을 미국에서부터 들고 왔다. 그렇듯 해마다 내는 학급문집은 우리 간에 추억 되새겨보기에 딱 좋은 자료이다. 그런데 떠오르는 글이 없다. 학반 아이들과 찍은 사진 밑에 아이들 이름을 일일이 적어 자주 넘겨보며 학습해온 기억들을 꺼내어보니 진이라는 아이가 세 명 떠오른다. 사십대 목소리라 “혹시 명식이랑 그런 얘들과 같이 다녔던가?” “예, 선생님 전화번호도 명식이한테서 알았습니다.” 명식이! 지금은 친환경 전기차를 연구하는 모 회사 이사이지만, 첫 월급 탔다며 서울에서 내려와 밥을 샀을 때 ‘혼자 자치하며 번 돈인데…’ 싶어 목에 밥이 넘어가지 않게 하던 녀석이다. “너도 장가갔냐?” 했더니 아직 장가 안 갔단다. “그래, 요즘 다들 늦게 가더라. 우리 집 녀석도 아직 못 갔어”하는데 “저. 7월에 장가 들려고요” 한다. “으? 그래 장하다. 축하, 축하!”하면서 아직 장가 들이지 못한 우리 집 녀석이 눈에 밟힌다. 늙은 교사들이 제자들의 결혼식장에 갈 때 제자들은 의사요, 검사요 하는데 내 자식이 그렇게 명성 높지 못하면 초라해지고 서글퍼진다.

“선생님, 제 결혼식 날, 거기서 동창회를 하제요” 그럴수록 예식장에 가기가 더 꺼려진다. 단번에 이름을 못 불러주면 ‘선생님이 나만 모르시네.’하며 마음에 새삼 상처 받게 될까봐. 쉰 한 살짜리 제자들이 우리 시골집에서 1박 2일로 동창회를 하고 갈 때도, 진작 못 알아본 제자들은 서운해 했다. 그래서 불심검문의 날이 다가오면 해마다 낸 학급문집과 같이 찍은 사진 밑에 써둔 이름들을 들쳐보고 학습하게 된다. 제자들은 옛 선생에게 자기를 인정받고 싶어서이고, 선생 역시 제자들에게 좋은 선생으로 인정받고 싶어서이리라. 돌아보면, 집에서는 남편한테 학교 일에 미친 여자로 불렸고, 내 집 아이들에게는 이름만의 엄마로 살아왔다. 운동회 날이나, 졸업식 날에도 학교 한 번 가봐준 적 없고 아들이 6학년이고 내가 6학년을 맡았을 때도 우리집 아이는 팽개쳐놓고 우리 반 아이들은 모두 7시 30분까지 오게 하여 수업 전, 논술지도를 한 시간씩 해준 미친 여자였다. “그래도 우리 엄마 맞아요?” 불심검문으로 들이대면 할 말 없지만 스스로 자랑스럽게 커주어 고마울 따름이다. 자책 되는 날은 ‘늙은 군인의 노래’를 ‘선생’의 노래로 바꾸어 불러본다.

<나 태어나 이 강산에 교사가(군인이) 되어/꽃 피고 눈 내리길 어언 사십년/무엇을 하였느냐 무엇을 바라느냐/나 죽어 이 흙속에 묻히면 그만이지/아들아 내 딸들아 서러워마라//좋은 옷 입고프냐 맛난 것 먹고프냐/아서라 말아라 선생(군인)아들 너로다/아 ~ 다시 못 올 흘러간 내 청춘/분필 가루에(푸른 옷에) 실~려간 꽃다운 이내 청춘//푸른 하늘 푸른 산 푸른 강물에/검은 얼굴 흰 머리에 노인 하나(푸른 모자) 걸어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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