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의 새벽
노동의 새벽
  • 승인 2018.06.03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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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윤 시인
5월은 가정의 달이었다. 어린이날을 비롯해서 크고 작은 가족모임들을 많이 가지기도 한다. 물론 5월하면 광주 민주화 운동을 떠올리는 이도 적지 않다. 80년대에는 노동문학과 민중가요 등을 자주 접할 수 있었고, 이와 관련해서 민중노래 한 두곡, 박노해의 시 한 구절 읊어 보지 않은 이는 드물다. 필자도 당시 학보사에서 발행한 유인물을 보며, 떨리는 손으로 그의 시를 처음 접하고 두근대는 심장과 뜨거운 열정을 가졌음을 고백한다.

전쟁 같은 밤일을 마치고 난/새벽 쓰린 가슴 위로/차거운 소주를 붓는다/아/이러다간 오래 못 가지/이러다간 끝내 못 가지//서른 세 그릇 짬밥으로/기름투성이 체력전을/전력을 다 짜내어 바둥치는/이 전쟁 같은 노동일을/오래 못가도/끝내 못가도/어쩔 수 없지//탈출할 수만 있다면,/진이 빠져, 허깨비 같은/스물아홉의 내 운명을 날아 빠질 수만 있다면/아 그러나/어쩔 수 없지 어쩔 수 없지/죽음이 아니라면 어쩔 수 없지/이 질긴 목숨을,/가난한 멍에를,/이 운명을 어쩔 수 없지//늘어처진 육신에/또다시 다가올 내일의 노동을 위하여/새벽 쓰린 가슴 위로/차거운 소주를 붓는다/소주보다 독한 깡다구를 오기를/분노와 슬픔을 붓는다//어쩔 수 없는 이 절망의 벽을/기어코 깨뜨려 솟구칠/거치른 땅방울, 피눈물 속에/새근새근 숨쉬며 자라는/우리들의 사랑/우리들의 분노/우리들의 희망과 단결을 위해/새벽 쓰린 가슴 위로/차거운 소줏잔을/돌리며 돌리며 붓는다/노동자의 햇새벽이/솟아오를 때까지

<박노해「노동의 새벽」전문 (도서출판 풀빛) 1984>

5연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노동자들이 현실에서 부딪히는 분노와 체념에 그치지 않고, 마지막 연에서는 희망의 메시지를 우리에게 건네고 있다. 특히 새로운 새벽을 노래하며 우리들의 희망과 단결의 의지를 북돋아 포기하지 말라는 대목은, 외부의 핍박으로부터 해방되어 노동자들이 정당한 대우를 받고 참주인이 되는 세상을 꿈꾸는 구절이 이리도 진솔할 수가 없다.

대구 중구 대봉동에 소재한 방천시장은 가수 김광석이 그곳에서 출생했다는 이유로 거리가 조성되어 특화된 곳이다. 도시 규모에 비해서 볼거리가 드문 대구에서 명소로 자리 잡은 지 이미 오래다. 거기에 반해서 대구 남산동에서 출생한 전태일 열사가 대구출신임을 아는 이는 드물다. 그가 1970년 11월 13일 평화시장 앞에서 자신의 몸에 석유를 뿌리고 불을 붙인 채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등의 구호를 외치며 산화한지도 어느덧 반세기가 다 되어간다. 그가 어머니에게 남긴 유언은 “내가 못다 이룬 일을 어머니가 대신 이뤄주세요”였다. 그는 1948년 8월 26일 대구시 중구 남산동에서 전상수(全相洙)와 이소선(李小仙) 사이에서 2남 2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6·25전쟁이 일어나자 가족과 함께 부산으로 피난을 갔으나 봉제 기술자였던 아버지 전상수가 파산하는 바람에 1954년 가족이 모두 서울로 올라와서 ‘서울사람’이 되었다. 그가 노동운동에 미친 영향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다각적이고 방대하다. 그가 평화시장 봉제공으로 일한 당시 기록한 일기 등은 당시 노동 상황을 이해하는 데 소중한 자료로 쓰일 만큼 섬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노동운동의 상징이 된 그의 흔적은 출생지 대구 남산동,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마침내 무(無)노조 신화가 무너졌다. 삼성전자의 첫 정식 노조가 설립되었기 때문이다. 지난 2월 삼성전자 직원 2명이 낸 노조설립 신고서를 고용노동부 중부지방고용노동청이 수리하고, 지난 3월 노조설립 통보서를 보낸 것으로 확인되었다. 삼성의 62개 계열사 중에서 현재 8곳에는 노조가 있지만, 그룹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삼성전자에 정식 노조가 설립된 것은 창업 이후 49년 만에 처음이다. 삼성전자는 이미 오래전부터 노조와 관련해서 수많은 루머와 의혹이 시중에 떠돌았지만, 실제로 직원들에 대한 복리와 임금이 업계 최고 수준이어서 소위 ‘삼성맨’은 노조가 무의미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였다. 과연 그럴까. 고용주와 노동자는 합리적인 협의를 통해서 관계를 이어져가는 존재다. 인간적인 면으로 맺어진 관계가 아니다보니 서로의 이해관계가 ‘모두만족’이라는 결과를 도출하기는 쉽지 않다.

따라서 매년 임금 협상 시기가 되면 업계에선 몸살을 앓고 있다. 물론 여기에서도 귀족노조와 일반노조가 나눠지긴 해도 말이다. 삼성전자에 노조가 설립된다는 것은 노동자들의 권익을 위해서는 지극히 고무적인 일이긴 해도 또 하나의 귀족노조가 탄생되어 눈살을 찌푸리게 할 일이 생기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가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는 안 된다. 노동자와 고용주가 동등한 세상이어야 한다. 근로기준법은 헌법에 따라서 근로조건의 기준을 정함으로써 근로자의 기본적 생활을 보장, 향상시키며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제정한 법이다. 그 어디에도 투쟁을 위한 투쟁이어야 한다는 대목은 없다. 소위 ‘임금투쟁’은 행사나 이벤트가 아니다. 생존을 위한 국민의 기본권을 지키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노동자뿐만 아니라 그 누구도 ‘귀족’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래야 ‘햇새벽’에 누구도 눈살을 찌푸리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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