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드러운 가시
부드러운 가시
  • 승인 2018.05.13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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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열매 몇 알 맺지도 못 하면서

한 켠에 서 있는 대추나무

마당 여기저기 자꾸 새 순을 내민다

오늘은 또 두어 걸음

장독대 콘크리트 깨진 틈으로도

아뿔싸, 저러다 낡은 방바닥까지 뚫고 나오지 않을까

슬금슬금 번지는 뿌리의 기세를 꺾어 보겠다고

오래 된 책을 덮고

새 순 나온 자리를 살살 파 보았더니

없다!

있어야 할 자리에 대추나무 뿌리는 없고

초록 고양이, 어린 발톱으로 손등을 할퀴고

부리나케 눈부신 그늘 속으로 달아난다

서재에 앉아 대추나무 가시만 흘겨보던 내가

머쓱하였다



◇변홍철 =1994년 동인지 <저인망>으로 작품 활동 시작. 시집 <어린왕자, 후쿠시마 이후>, 산문집 <시와 공화국>. 현재 도서출판 한티재 편집장, 대구경북 작가회의 회원.



<해설> 제1연에서 9연까지는 대추나무에 대한 평범한 언어로 구성되어 있다. 묘사 또한 그렇다. 시는 차이성 속에서 유사성이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 한데 제 10연부터 반전이 일어난다. 언어의 추상성이 그것이다. ‘대추나무 뿌리가 없다’라는 지극히 상징성을 내포한다. 게다가 초록 고양이가 등장함으로써 사실적 묘사에서 추상성을 더욱 부채질한다. 참 어려운 시다. -제왕국(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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