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형식은 구체적이되 다양한 상징 담아야”
“미술, 형식은 구체적이되 다양한 상징 담아야”
  • 황인옥
  • 승인 2018.06.14 08: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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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옥이 만난 작가> 극재 정점식 <9>
1983년 대한민국 심사위원장 위촉
85년 亞 국제미술전·서울 미술대전
87년 개인전·88년 이중섭 미술상 위원
교수직 퇴직 후 자유롭고 활발한 행보
조형회화 통해 내면의 충동 형상화
직설적 표현 아닌 함축적 형식 선택
작품은 작가의 심적 변화에서 탄생
색 밝아진 1980년대작 주목할 만 해
극재작1985년와상캔버스에유채
극재 작 와상 1985년.


2001년 가을이었다. 아이와 함께 故극재 정점식 선생님(이하 극재) 댁으로 갔다. 그간의 안부도 궁금하고 음식 솜씨 좋은 필자의 시모가 직접 만든 도토리묵을 조금 나누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때 극재는 당신이 주례를 서준 제자의 아이를 첫 대면했다. 그래서인지 특히 아이를 무척 반겼다. 유치원생이던 어린 아이에게 악수를 건네는 모습은 마치 동등한 위치의 성인을 대하는 것 같았다. 사내아이에 대한 최고의 예우였지 싶다. 이어 등을 쓰다듬으며 “너 참 씩씩하구나, 훌륭한 사람 되어라” 하던 모습은 푸근한 옆집 할아버지의 모습 다름 아니었다. 호기심이 많던 아이의 손을 잡고 서재와 당신의 작업공간을 보여주던 모습도 귀하고 아름다운 풍경으로 기억된다.

1980년대는 아이가 세상에 나오기 훨씬 전이었고 필자 역시 극재가 재직하던 계명대학교에 입학하기 전이었다. 아직 서로 인연이 닿지 않은 그 시간에 극재는 60대의 나이를 맞이했고 1980년대로 진입하고 있었다. “일본의 고승(高僧) 한 사람으로부터 가장 보람된 생활이란 어떤 것이냐의 물음에 대해서「불확실성의 시대」의 저자인 갈브레이드 교수는 ‘많은 아름다운 여성들로부터 사랑을 받는 생활’ 이라는 답을 했다. 내 주위에도 나보다는 젊고 아름다운 여성의 벗이 많이 있다. 그러나 나는 그들을 이성으로 대하고 있지만 그들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이렇다 한 일도 없이 나이가 너무 먹었구나 하는 서글픈 마음으로 80년대를 맞이하게 되는 모양이다.”((一九七九, 國際新聞), 정점식, 아트로포스의 가위, 흐름사 pp.39~41에서 재인용))

극재에게 1980년대는 집필활동과 전시를 더욱 활발하게 하던 시기이다. 1981년에 첫 번째 에세이집 ‘아트로포스의 가위(흐름사)’를, 1985년에 두 번째 에세이집 ‘現實과 虛像’(도서출판 그루)를 출간했다. 이어 샘프란시스 전을 개명대학교에 유치하면서 논문 ‘샘프란시스와 Tachism의 의미’ 를 발표했다. 이 논문에서 극재는 “나는 회화에 있어서 액션의 가치는 비의도적인 데에 있다고 생각한다. 의도적인 것은 반드시 우리들을 속이고 강요하며 모든 것을 숨기는 표면을 가지고 있다.” 라고 한 샘프란시스의 말을 인용하면서 “이념이나 물질. 직위 따위의 상투적인 범위를 뛰어넘기 위한 방편의 하나가 액션(Action)” 이라고 쓰고 있다.

1983년은 극재가 계명대학교를 정년퇴직하던 해이다. 같은 해에 극재는 대한민국 심사위원장에 위촉된다. 2년 후 1985년은 대외적인 활동이 더욱 활발하던 시기로 수화랑에서 개인전을 열고 아시아 국제 미술전에 초대되었으며 서울시 미술대전에도 초대 출품을 한다. 한국 현대미술전 40년 전(국립현대미술관) 출품에 이어 두 번째 에세이집을 묶기도 했다. 2년 후 1987년에는 서울 신세계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었으며 계명대학교 명예교수(~2004)가 된다. ‘예술의 독학적 경험주의’ 라는 주제로 고희 기념강연을 한 이듬해인 1988년에 이중섭 미술상 창설위원으로 활약한다. 이어 1989년에는 ‘아마추어리즘의 자발성과 유희’ 라는 주제로 대한민국 예술원이 주최한 제 18회 국제예술심포지엄 주제 발표를 하기도 했다. 아마도 퇴직 후 조금 더 자유로워진 시간이 활발한 행보를 가능하게 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극재작세자매1983년캔버스에-아크릴
극재 작 세자매 1983년.


1980년대는 1970년대에 비해 작품 양이 늘어났고 색도 밝아졌다. 1980년대에도 역시 <소녀>(1982), <포옹>(1982), <사랑의 통곡>(1982), <세 여인>(1983), <누드>(1982), <누드>(1983), <입상>(1984), <군상들>(1984), <와상>(1985), <인물>(1985), <밀총>(1985), <누드>(1985), <누드>(1985) 등, 인물을 소재로 한 작품의 수가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밖에도 <회상>(1985), <꽃>(1985), <공간>(1985), <바위>(1982), <낙엽>(1982), <형상>(1983), <무제>(1982), <무제>(1985), <가을>(1985), <형상>(1983), <환상>(1985), <비상>(1986), <형상>(1986),(1985), <무제>(1986), <고인돌>(1986), <밀총>(1986), <비목>(1986), <하늘>(1986), <환상>(1986), <와상>(1986), <하늘>(1986), <풍경>(1986), <누드>(1986), <즉흥>(1986), <무제>(1986), <무제>(1986), <미풍>(1986), <작품>(1986), <회화>(1986), <필적>(1987), <공간>(1987), <공간>(1989), <누드>(1989), <매장>(1989), <필적>(1989), <타락한 천사>(1989), <바람의 노래>(1989) 등 작품의 양이 급격히 늘어난 점을 발견할 수가 있다. 아마도 학교를 퇴직한 후였으므로 좀 더 자유로운 몸으로 작업에 몰입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밀도감이나 완성도 등 작품에서 묻어나는 깊이감은 몰입의 시간 이외에도 작가의 숙성된 내면을 짐작하게 한다.

미술작품에는 많은 차원과 측면이 존재한다. 사회문화적인 맥락(context)도 무시할 수 없다. 극재는 우리가 무엇이라고 규정하더라도 작품 속의 대상은 우리의 규정 넘어 존재한다는 말은 거듭 강조한다. “우리들의 내적충동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복잡하고 미묘한 말의 언어로서는 나타내기 어려운 여러 가지 양상을 형(形)이나 색(色)으로 표현하는 일, 말하자면 조형언어라는 형식을 통해서 하고, 말을 할 수 없는 안타까움과 괴로움 그것은 이 세상을 살면서 누구나 느끼고 있는 내밀의 세계이며 나는 이것을 미술형식이라는 형상(形象)의 언어를 빌려서 나타내려한다. 그것이 미술창작의 본질이며 인생의 괴로움과 외로움에서 해방된다는 신념을 가지고 그 언어를 찾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언어는 직설적인 직유(直喩)가 아니라 암유(暗喩)나 비유(比喩)와 같은 함축적인 형식을 취한다. 왜냐하면 예술은 구체적인 사물의 제시가 아니라 많은 여러 가지 뜻을 머금고 있는 상징이 되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조형언어는 그것이 담고 있는 뜻은 추상적인 숨어있는 암유가 되겠지만 그것을 엮어내는 형상은 다른 어떤 예술 형식보다도 구체적인 것이 된다.”(鄭點植 畵集, 2008년, p. p.116)

극재는 1985년 글에서도 이와 같은 주장을 한다. “예술작품의 이미지는 일상적인 자연이나 현실에서 받은 것은 아니다. 매일 같이 보고 접하는 사물이라 할지라도 어느 날 갑자기 싸인을 던져주며 작가를 유인한다.“(정점식, 선택의 지혜, 미술공론사, 1993, p.64) 극재는 이것이 ‘자연이 숨기고 있던 것 또는 우리들이 미처 모르고 있던 모습에서 받은 것이라고 했다. 또한 극재는 1985년 ‘내가 신비에 눈 뜰때’라는 글에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각도에서 또는 작가의 심적 변화에서 찾아낸 새로운 모습’ 이 바로 작품이라고 한 바 있다. 극재는 작품 속의 자연이나 현실은 종래의 모습을 닮고는 있지만 그것과는 다른 차원으로 수수께끼를 던져주며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데, 이것은 일반적인 자연이라기보다는 자연과 작가라는 인격이 혼합된 창조물이라고 했다.

우리가 대상을 파악한다는 것은 닫힌 체계(closed system)일 수 있다. 그것이 언어로 아니면 icon, index, symbol 등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극재는 ‘내가 신비에 눈 뜰 때(1985)에서 그것이 ‘일상적이고 상식적인 대상을 새로운 경이로 이끄는 연금술이며 예술이 창조라는 이름으로 불리워지는 연유’라고 적고 있다. 이러한 주장들은 극재의 1980년대 작품분석 역시 부분의 총합에 주목할 것을 권하고 있다.

미술학박사 shunna9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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