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여행에서 돈키호테와 베로니카 찾기
스페인 여행에서 돈키호테와 베로니카 찾기
  • 승인 2018.06.14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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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선 대구교육대
학교대학원 아동문
학과 강사
오래전부터 스페인에 가보고 싶었다. 집시들이 추는 격정의 플라맹코? 세기의 슈터 메시와 호날두가 뛰는 축구경기? 투우사의 소싸움? 그런 것들과는 다른 그리움 속 두 사람! ‘돈키호테’와 골고다 언덕을 오르다 쓰러진 예수님께 머릿수건을 건넨 ‘베로니카’를 만나고 싶었다. 돈키호테를 짝사랑한 것은 초등학교 때부터다. “라만차 지방의 어느 마을에 시골 양반이 살고 있었다”로 시작되는 ‘돈키호테’를 읽으며 너무 재미있어서 스페인으로 찾아가보고 싶었다. 대학생일 때는 독일작가가 쓴 ‘베로니카의 땀수건’이라는 책 번역을 하던 채석희 선생님을 돕다가 베로니카의 슬픔이 내게로 와서 책 속에 있는 스페인 성당으로 달려가고 싶었다. 그런데 육십에 접어 들어서야 비로소 짝사랑을 찾아 스페인 기행에 올랐다.

돈키호테를 탄생시킨 세르반테스 고향의 풍차를 생각하며 마드리드 광장으로 갔다. 세르반테스 앞에서 동상으로 서있던 ‘돈키호테’는 말 위에서 오른 손을 높이 들어 올리며 ‘오직 희망하는 것만이 현실이다’며 세상 속으로 달려 나오고 있었다. 산초는 한 발 뒤에서 ‘보고 만지는 것만 현실이지’하며 같이 따라오고 있었다. 내 속에도 늘, 어린 아이 같은 순수한 이상과 재미를 쫓는 돈키호테가 살고 있었다. 하지만 광장에 서서 바라보니 돈키호테를 충직하게 따라다니던 산초, 물질을 중시하던 산초의 그 마음도 상호보완적인 울림으로 담겨왔다. 이상을 바투 쫒았던 세르반테스! 55세 때 사기죄 죄목으로 감방에 갇혔을 때 쓴 ‘돈키호테’가 오늘날 전 세계 사람들에게 위안이 되기에 영국인의 세익스피어에 대한 자부심만큼이나 세르반테스가 자랑스럽다. 그래서 해마다 세르반테스가 태어난 알칼라 데에나레스에서 ‘세르반테스 문학상’을 수여하나보다. 2017년에 74세의 두아르포 멘도사가 그 상을 받았다는 기사를 읽었다. 상금도 1억 5천254만 원이라 작가의 천재성과 천운이 함께 따라 얻은 행운이었을 것이다. ‘시집 한 권 팔리면 받는 인세 삼백 원으로도 굵은 소금 한 됫박 살 수 있으니 푸른 바다처럼 귀하다’는 함만복 시인처럼 대부분의 작가들은 청빈하게 산다. 더구나 이름 없는 나 같은 작가야 23권의 책을 내고도 인세는 가끔 빗방울 떨어지듯 한 방울, 두 방울 받는 느낌이니 이 한 방울을 숭배할 수밖에 없다. 이것 또한 산초가 말하는 현실이다. 이렇듯 문학은 가난해도 탄생된다. 하지만 건축물은 풍요로운 재정이 뒷받침되어야만 탄생할 수 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를 찾았을 때, 내가 만나고 싶은 조각상은 오로지 성(聖)가족 성당 정면에 있는 베로니카의 땀수건이었다. 하지만 안토니 가우디는 성가족 성당을 비롯한 건축물 일곱 개를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시킨 천재적 건축가였다. 장엄하고 환상적인 분위기에 압도되었다. 그가 성당을 짓기 시작했을 때 익명의 부인이 많은 재물을 기부했기 때문에 저렇게 장엄하게 만들 생각을 할 수 있었겠다.

그렇다하더라도 곡선으로 장엄함을 표현한 그의 창조적 천재성은 경탄할 수밖에 없다. 그는 일요일마다 방파제에 나가 빛과 색이 서로 다른 색조를 바라보며 영감을 얻었단다. 그런 영감이 베로니카가 들고 있는 땀수건에 까지 생명의 감각을 불어넣어 펄럭이고 있었다. 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다 십자가의 무게에 눌려 쓰러질 때 그 뒤를 따르던 베로니카가 황급히 머릿수건을 풀어 예수에게 내밀었다. 예수는 겨우 수건을 집어 얼굴의 피와 땀을 닦았다. 그 수건에 ‘사람의 손으로 그려지지 않은 그림(아케이로 포이 에토스-acheiropoietos), 예수님 얼굴이 새겨졌다. 가우디도 예수의 고통을 함께 하며 베로니카와 같은 마음이었나 보다. 보통 건축가들은 성당 안에 조각물들을 새기는데, 가우디는 지나가는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도록 성당 바깥쪽, 그것도 정면에 베로니카의 땀수건을 새겨 놓았다. ‘누구라도 세상에 자식을 키우는 사람이라면, 아들의 마지막 가는 저 길의 수난을 어떻게 담담히 볼 수 있을까?’ 나는 사람들이 볼세라 성당으로 들어가 조용히 무릎을 꿇었다. 성모님의 슬픔 속에 내 영혼을 담아 묵상하며 울었다. 성당을 물러나올 때는 성모님의 온화해진 눈빛을 느꼈다. 44년간 성가족 성당을 지은 뒤 개인의 공적을 높이려는 욕심을 버리고 후배들에게 기회를 넘겨준 가우디에게 보내는 따스한 눈빛이었다. 요즈음 부실 공사와 날림 건축물이 판을 치는 건축 현장과 공덕 내세우기에 급급하는 우리들 사는 모습이 부끄러웠다. 전차에 치였을 때도 노숙자 차림새 때문에 세인들이 냉대하며 구조가 늦추어졌고 뒤늦게 교황이 알고 달려와 큰 병원으로 옮겨가려 했을 때 “나를 여기 그냥 두시오” 하며 가난한 사람들에게 관심 돌리기를 바라 죽음도 개의치 않았던 그! 가우디를 성인으로 추대했다니 성모님 보시기에도 참으로 오롯한 삶이었으리라. 내 영혼에 떨림을 얻어 보고 싶었던 감동은 ‘돈키호테’와 ‘베로니카’였지만 작가 세르반테스와 건축가 가우디의 영혼에 더 깊숙한 감동을 얻었다. 그래서 이렇게 발로 찾아와 보고 싶었나보다. ‘내게 남은 시간들도 가우디처럼 오롯하게, 세르반테스처럼 고통 속에서도 작품에 몰두하는 삶을 살아가야 하겠다’ 밖으로 나와 베로니카가 들고 있는 땀수건에 입을 맞추듯 고개를 숙였다. 예수님 음성이 들려왔다. ‘모든 걱정은 내려놓아라. 그리고 오롯한 삶을 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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