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보면 화가 납니다
아이를 보면 화가 납니다
  • 승인 2018.06.14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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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효정(우리아이 1등 공부법 저자)


아이 때문에 열이 받고 속이 확 뒤집어질 때는 이런 생각을 하기도 한다.

‘예수님과 부처님이 성인이 된 것은 자식을 안 키워서다. 그분들도 말 안 듣는 자식을 키워보면 그렇게 좋은 말씀만 하실 수는 없을 거다.’

내가 인격자로 살지 못하고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는 것은 자식 때문이지 내 성격이 나빠서는 아니라고 생각하면 나름 위로가 된다.

그렇다. 우리는 아이를 키울 때 수없이 열을 받고 화를 낸다. 내가 하지 말라는 행동을 하고, 내 말을 죽어도 안 듣는 아이를 보면 소리를 안 지를 수가 없다. 그런데 정말 내가 화가 나는 것은 아이 때문일까?

우리는 흔히 ‘나의 분노’가 상대방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심리학자들이 ‘분노는 자신의 내면에서 온다’고 말한다.

내가 외모에 심한 콤플렉스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런데 친구가 내 외모를 가지고 가벼운 농담을 한다. 나는 화가 난다. 외모에 콤플렉스가 클수록 더 많이 화가 난다. 그 친구가 내 상처를 건드렸기 때문이다. 나는 소리를 지른다.

“네가 뭔데 내 얼굴을 가지고 이러쿵 저러쿵 말을 해? 네 외모는 그렇게 자신 있어? 정말 재수 없어!”

나는 내 상처를 건드린 친구가 괘씸해서, 친구는 별일 아닌 것에 화를 내는 내게 섭섭해서 둘의 관계는 서먹해진다.

내가 외모에 콤플렉스가 없다면 친구의 농담에 같이 웃으며 넘어갈 수도 있다. 외모 비하가 좋은 것은 아니지만 친구들끼리 그 정도 농담은 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결국 상대방의 행동에 ‘화가 나는가? 아닌가?’는 ‘내가 그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내가 그 문제에 어떤 관점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예를 들어 내가 ‘엄마가 나를 오빠만큼만 뒷바라지 해줬으면 내가 지금보다 훨씬 좋은 처지가 되었을 텐데!’라는 상처를 가지고 있다면 공부 안 하는 내 아이를 보면서 이런 말을 하게 된다.

“너는 엄마가 뒷바라지 해주잖아! 그런데 왜 공부 안 해!”

초등학생답게 살고 있는 평범한 아이가 일순간 ‘은혜를 모르는 배은망덕한 자식’이 되는 것이다.

맞다. 분노는 우리의 내면에서 온다. 결코 외부에 있지 않다. 그러니 우리는 화가 나는 순간에 “너 때문에 내가 화가 나잖아!”라고 소리를 지를 것이 아니라 ‘내가 왜 이 지점에서 화가 나지? 내가 이 부분에 상처가 있나?’를 고민해야하는 것이다.

아이에게 화를 내기에 앞서 한 가지 더 생각해야 하는 것은, 내가 ‘내 사정, 내 상처’가 있는 것처럼 아이에게는 ‘아이의 사정, 아이의 상처’가 있다는 점이다. 내가 기분이 좋을 때는 아이의 사소한 실수나 잘못에 너그러워졌다가도 내가 스트레스가 많을 때는 아이의 작은 잘못에도 짜증이 나는 것처럼, 아이 역시 자신이 컨디션이 좋을 때는 엄마의 말에 협조적이 되었다가도 자신이 기분이 안 좋을 때는 엄마의 말을 안 듣게 된다.

아이가 엄마의 말을 안 듣는 것은 아이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나는 모르지만 선생님한테 야단을 맞았을 수도 있고, 나는 모르지만 친구와 싸웠을 수도 있다. 어제 늦게 자서 피곤할 수도 있다. 아이 역시 어른처럼 자신의 기분에 따라 행동이 달라진다.

그러니 아이가 유독 내 말을 안 듣는다면 “왜 이렇게 엄마 말을 안 들어! 너 나 무시해?”라고 소리를 지를 것이 아니라 ‘쟤가 뭐 기분이 안 좋은 일이 있나? 왜 저렇게 컨디션이 안 좋지?’라고 생각해줘야 한다. 아이의 기분을 이해해주고 공감해주는 것이 마땅히 엄마의 할 일이기 때문이다.

아이를 키우는 것이 힘이 드는 것은 아이를 통해 내 과거와 내 성장기가 자꾸 반추되기 때문이다. 잊고 지내던 내 어린 시절 상처가 아이를 통해 떠오르기도 하고, 덧나기도 한다. 육아가 힘이 드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아이 때문에 화가 날 수는 있다. 우리가 성인군자도 아닌데 아이를 키우며 화를 안 낼 수는 없다. 하지만 지금 이 분노가 어디에서 오는지 잘 생각해보자. 내 어린 시절 상처 때문에 화가 난다면 이건 아이의 잘못이 아니다. 나의 내면의 문제일 뿐이다. 그러니 아이를 야단치기 전에 내 분노를 다스리고 내 상처를 치유하자. 그게 해결된다면 아이는 ‘웬수 같은 자식’이 아니라 ‘사랑스런 내 새끼’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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