찔레꽃 향기
찔레꽃 향기
  • 승인 2018.06.17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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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순란(주부)


아버지는 ‘찔레꽃’ 노래를 즐겨 불렀다. 구성지고 멋들어지게 꺾어넘기는 아버지였다. 남편도 ‘찔레꽃’ 노래를 고등학교 수학여행 때 가서 불러 히트를 쳤다고 한다. 두 사람이 친하지는 못했는데 노래 취향은 비슷하다.

아이들이 어버이날이라고 카네이션 꽃다발을 준 것을 말려서 화병에 꽂아두었다. ‘사랑합니다’라는 글자가 찍혀있었다. 그 화병에 남편이 시골에서 꺾어온 찔레꽃을 꽂았다. 홍희는 아이들의 ‘사랑합니다’를 자신의 허락도 없이 빼낸 남편에게 항의를 했지만 찔레꽃을 그대로 꽂아두었다.

찔레꽃은 꽃축제에서 나눠주는 이름모르는 보라색 외국 꽃과 잘 어울렸다. 녹색 잎과 흰 꽃이 숲속의 하얀 새를 연상했다. 풍성하게 꽃꽂이를 하고 바라보는 남편의 얼굴에 미소가 그득하다.

남자도 갱년기가 있다던데 남편이 갱년기인가? 지난번에는 버들강아지를 잘라와 꽂아 두었다. 끝이 조금 뭉툭한 긴 원뿔모양의 겨울눈이 달려 있었다. 긴 나뭇가지가 천장으로 뻗은 모습이 난초잎이 뻗은 수묵화처럼 힘이 있었다. 보기에도 시원해보여 나쁘지는 않았다. 며칠 지나 강아지 꼬리처럼 털이 북슬불슬한 노란 꽃이 피었다. 시골에서 자란 홍희도 어린 시절 봄이 생각났다. 개울에 얼음이 반은 녹아, 얼음 밑으로 맑은 물이 졸졸 흐를 때 개울가에 버들강아지꽃이 귀엽게 피었었다. 설레는 봄이 시작된 것이었다.

찔레꽃도 보기 싫지는 않았는데 유난을 떠는 남편 때문에 의아했다. 마치 신기한 것이라도 보는 양 멀찍이 소파에 앉아서 바라보고, 오며가며 고개를 돌려 바라보고, 향기가 좋다며 계속 코를 킁킁거렸다. 이틀 정도 지나 꽃이 많이 피니 향기가 퍼졌다. 은은한 향기가 집안 분위기를 좋게 만들었는데 유난을 떠는 남편이 괜시리 심술이 나서 별로 좋지 않다고 핀잔을 주었다. 며칠 지나고 나니 수술에서 꽃가루가 떨어지고, 흰 꽃잎도 떨어져 보기가 흉해졌다. 다음날에 찔레꽃은 없어지고, 화병엔 ‘사랑합니다’ 외치는 아이들의 꽃다발이 꽂혔다.

주말이 되어 남편은 어머니가 계시는 시골에 가자고 했다. 논을 밭으로 만들고 있는 중이었다. 객토사업이 있으면 군에서 흙을 지원받아 수월할텐데, 2018년에는 이미 끝났다고 한다. 내년을 기약해야해서 포크레인으로 땅을 뒤집어엎어서 고르는 중이었다. 분명히 논이었는데도 바위같은 큰 돌멩이가 나왔다. 둑으로 골라낸 돌멩이들이 제주도 돌담같았다. 작은 돌을 집으려고 해도 빙산처럼 큰 돌이 땅 밑으로 깊게 박혀 있었다. 남편은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쉬라고 말을 했지만, 손 하나 거들면 일이 더 빠른 법이라 돌멩이를 골라내었다.

남편은 ‘나는 자연인이다’처럼 살고싶어했다. 결혼초부터 시골집을 짓는 것을 삶의 마지막 과제처럼 되뇌었다. 시골에 모르는 사람이 새 집을 지어놓은 것을 볼 때마다 부러워하며 자신도 빨리 집을 짓고, 300평쯤 밭을 가꾸고 싶어했다. 이것은 남편의 꿈의 일부이다. 남편이 꿈에 가까이 가고 있는 것을 도와주고 있었다. 깊게 박힌 돌멩이를 억지로 빼내어 둑으로 던져놓는 일이 쉬워보였는데 1시간쯤 지나니 오른팔이 아프고, 허리와 무릎도 아팠다. 그 때쯤 시원한 바람이 도랑에서 불어와 휙휙 얼굴을 지나갔다. 목마른 사람이 물을 마시듯 상쾌했다. 몸을 일으켜 바람이 불어오는 커다란 밤나무를 보고있는데 코끝에서 익숙한 냄새가 났다. 남편이 집안에 들여두고 오가며 킁킁거렸던 바로 찔레꽃향기였다. 아하!

남편은 밭을 만들면서 찔레꽃향기를 맡았고, 그 향기를 방안에 들여다 놓고 싶었던 것이다. 주말마다 밭을 가꾸는 일로 시골을 갈 때마다 자연인이 된 자신이 행복한 것이다. 그 행복을 주중에도 느끼고, 가족과 함께 느끼고 싶었던 것이다. 찔레꽃 향기를 킁킁거리던 남편이 땡볕에서 힘차게 일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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