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병, 그 후
파병, 그 후
  • 승인 2018.06.26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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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현숙 시인
해마다 6월이면 떠오르는 한 사람, 그리고 베트남 작가 바오 닌의 첫 장편소설‘전쟁의 슬픔’을 만나게 됐다. 1975년 4월 30일, 베트남이 통일된 지 43년이 지났다. 지난 4월27일. 제주에서는 4·3항쟁 70주년을 맞아 ‘동아시아의 문학적 항쟁과 연대’라는 국제 문학 심포지엄이 열렸다.

그 곳엔 동아시아 전쟁과 학살 현대사를 공유한 작가 세 사람이 초대되었다고 하는데 그 중, 북베트남군 전사로 참전했다가 살아남아 '전쟁의 슬픔'을 소설에 녹여낸 베트남 대표작가 바오 닌이 있었다. 전쟁의 참혹성을 누구보다 깊이 체험한 그는 평화를 위한 남북의 만남에 대해 이렇게 얘기했다고 한다.

“너무 훌륭한 역사적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싸우지 않고 대화로 통일을 위해 만나는 일은 귀하고 소중합니다. 전쟁이 벌어져서 한쪽이 지고 이긴다 한들 그 폐해를 어떻게 감당하겠습니까. 정말 귀한 날인데 실제로 한민족 전체 염원이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바오 닌의 첫 장편소설 ‘전쟁의 슬픔’은 베트남문인회 최고상과 영국 ‘인디펜던트’지 최우수 외국소설(1994)로 선정되기도 한 작품이다.

‘끼엔’과 ‘프엉’이라는 두 젊은 연인의 절대적인 사랑이 전쟁이라는 사회적인 상황에 의해 비극적으로 종결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의 배경이 되는 베트남전이 일깨운 것은 인간의 삶과 소중한 관계를 파괴한다는 것이다. ‘끼엔’과 ‘프엉’은 서로를 잃었고, ‘끼엔’은 전쟁 후 심한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을 앓는다. 바오 닌은 베트남 전쟁에 대해 “이 비극은 모든 베트남인의 운명과 문학에 깊이 각인되어 있다”고 말했다.

1969년 17세 나이에 군에 입대하여, 1975년 종전까지 6년 간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소년병이 직접 경험한 전쟁에 대한 비극을 그대로 재현해낸 소설 속에는 페이지마다 홍수처럼 범람하는 전쟁의 상처와 슬픔들이 상흔처럼 번져 있었다. 과거를 딛고 미래로, 변화된 세계질서 안으로 진입하려는 베트남 정부가 내건 슬로건이 넘실거리는 거리의 한 모퉁이에서 바오 닌은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속삭인다.

“결국 아무것도 잊을 수 없다. 슬픔과 고통은 어린 시절부터 시작되어 전쟁을 거치고 지금까지 이어지면서 크게 하나로 뭉쳐진 응어리가 되었기 때문이다. 사람이 고통을 받아들여야 세상에 태어날 수 있듯이, 또한 삶을 다하는 날까지 고통 때문에 살아야 하며 행복을 추구하고 사랑을 하고 예술을 하고 즐기고 견뎌야 하리라.”

직접 겪어보지 못해 알 수는 없지만 어릴 적, 삼촌으로부터 들었던 전쟁에 대한 공포는 가슴 속 깊이 두려움으로 여전히 남아있다. 온기가 남아 있는 적병의 몸에 못을 박듯 한 발 한 발 방아쇠를 당겼던 ‘끼엔’이 전쟁 후 살아남은 단 열 명의 병사 중 한 명이었던 것처럼 삼촌 역시 또 다른 ‘끼엔’ 이었다. 베트남 파병 이후 매일 군인 수통에 소주를 넣어 마시고, 군용 단도를 차고 다니면서 주변 사람을 위협하는 등 평생 참혹한 전쟁의 트라우마에 시달렸던 삼촌은 결국 고향인 합천호 속으로 몸을 던지고 말았다. 평화를 수호한다느니 공산주의를 막는다느니 했었던 거창한 명제에 떠밀려 자원입대했던 삼촌은 벗어날 수 없는 악몽과 같았던 전쟁의 참혹함을 겪은 후,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술에 기대는 일 뿐이었을까. 세 명의 아이와 숙모 그리고 할아버지 할머니를 남겨두고서 홀연히 합천호와 한 몸이 되고 말았다.

손실된 것, 잃은 것은 보상할 수 있고, 상처는 아물고 고통은 누그러든다. 그러나 삼촌이 겪었던 전쟁에 대한 슬픔은 나날이 깊어지고, 절대로 나아지지 않았을 것이다. 정신적 재산이라든가 내면적 삶의 가치는 한번 무너지거나 부서지고 나면 누구도 처음의 순수한 시절로 되돌리지 못하는 것 같다.

전쟁 이후, 바오 닌은‘전쟁의 슬픔’이라는 소설 속에 영원히 남을 테지만 나의 삼촌이 합천호에 뛰어든 것을 기억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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