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네제 세갱과 조르당
[문화칼럼] 네제 세갱과 조르당
  • 승인 2018.06.27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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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국(수성아트피아 관장)


지금 미국과 유럽 양 대륙을 호령하는 젊은 두 지휘자가 있다.

캐나다 출신의 야니크 네제-세갱(Yannic Nezet-Seguin 75년생)과 스위스 출신의 필리프 조르당(Philippe Jordan 76년생). 일전에 각각 미국과 유럽을 주 무대로 삼아 활동하는 젊은 거장의 음악을 감상할 기회가 있었다. 그것도 메인 레퍼토리가 같은 것이어서 두 사람의 서로 다른 개성의 음악세계를 엿볼 수가 있었다. 두 번의 연주회를 통해서 미국과 유럽의 음악해석에 따른 차이점을 조금은 느낄 수가 있었다.

이날의 주된 연주곡은 베토벤의 5번 교향곡 ‘운명’이었다. LP음반 시대의 거장들의 해석은 악보를 한 음 한음 지속시키는 듯 여유로운 해석이 주류를 이룬다. 따라서 그 시대의 베토벤 운명은 연주 시간이 38분 정도 걸리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네제-세갱의 연주는 32분에 불과 했다. 반면 조르당의 해석은 네제-세갱의 해석보다 한결 여유롭다. 이를 두고 미국과 전통적인 해석을 중요시 하는 유럽의 차이라고 한다면 너무 성급한 판단일까?

네제-세갱은 미국의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PO)를 지휘했다. 통상 특정 오케스트라마다 자동으로 연상되는 이미지가 있는데 오먼디, 무티, 그리고 자발리시로 이어지는 빛나는 거장들에 의해 형성된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의 이미지는 그 실체를 특정하기 어려운 ‘찬란한 필라델피아 사운드’로 각인되었다. 세갱에 의하면 그것은 ‘끊임없이 지속되며 부드럽게 이어지는 현악기, 목관 악기들이 적절한 때에 돋보이는 것, 또 금관악기들과 나머지 악기가 긴밀하게 연결되고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앙상블’이다.

세갱은 고전주의 작품을 다루어도 그 시대의 악기 주법을 의식하고 균형감을 중시하는 최근의 경향을 탈피해, 완급의 폭을 확대하고 과감한 드라이브로 끊임없이 질주한다는 평을 받는다. 과연 그랬다. 나로서는 정신 차릴 수 없을 만큼 몰아치는가 하면 서정적인 부분에서는 한없이 아름다운 선율을 풀어 놓기도 했다. 운동광 이기도 한 그는 엄청난 에너지를 바탕으로 치밀하게 모든 디테일을 계획하고 분석하여 열정적으로 몰아치다가도 때로는 한없이 부드럽게 음악을 어루만졌다. 완전히 새로운 반짝반짝한 ‘운명’을 느낄 수 있었다.

이날 PO와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을 협연하던 데이비드 김은 3악장에서 바이올린 줄이 끊어져 순간 멈칫 했으나 ‘렛츠고’라는 세갱의 말에 즉시 악장과 바이올린을 바꿔 무사히 연주를 마쳤다. 자칫 연주가 중단될 수도 있었으나 세갱의 추진력에 의해서 데이비드 김은 자신의 연주에 비해 훨씬 큰 엄청난 환호를 받을 수 있었다.

인간적으로도 훌륭한 세갱은 2000년 그의 고향 몬트리올 오케스트라 메트로폴리탄(OM)에서 지휘를 시작해 승승장구 하며 2012년부터 시작한 PO의 음악 감독직을 2026년까지 약속 받았다. 모든 악단이 탐내는 그를 미리 잡아두고자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메트)는 2016년 차기 음악감독으로 세갱을 일찌감치 지명했다. 메트에서의 그의 임기는 2021년부터 시작한다. 이때부터 메트에서 일하게 된 과정이 감동적이다. 2015년 무렵 OM은 이미 너무 커버린 세갱을 놓아 주고자 했으나 자신을 키워준 단체를 떠날 수 없다며 스스로 OM과 새로운 계약서에 사인하여 2021년 시즌까지 일하기로 했다. 이에 메트에서는 그의 뜻을 존중하여 그때 까지 기다리기로 한 것이다.

조르당은 빈이 자랑하는 빈 심포니를 지휘했다. 이날 그는 서곡, 협주곡 그리고 교향곡을 연주하는 일반적인 연주회와 달리 베토벤 운명과 브람스 교향곡 1번을 선택하여 교향악의 성찬으로 자리를 가득 메운 관객들을 행복하게 하였다. 세갱의 해석과 달리 전통적인 해석에 바탕 하여 그 만의 개성을 뽐내었다. 전체적으로 묵직하면서도 때로는 솜털처럼 가벼운 사운드를 만들어 내었다. 나는 이날 두 번의 운명을 들은듯했다. 브람스 1번의 도입부의 팀파니 소리역시 운명의 문을 두드리는 듯했다. 큰 강물이 유장하게 흘러가는 듯한 브람스도 감동적 연주였지만 우리의 귀에 훨씬 익숙한 사운드로 연주한 베토벤의 운명은 솟구치는 감격을 억누르기 힘들만큼의 명 연주였다.

현재 파리 국립 오페라단의 음악감독이자 빈 심포니의 수석 지휘자인 조르당은 스위스의 명지휘자였던 아버지 아르맹 조르당의 그늘에서 벗어나고자 몸부림쳤다. 지휘계의 귀공자로 불리는 그는 각고의 노력 끝에 그 만의 음악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분명 다른 음악 색채를 가지고 있는 네제-세갱과 조르당으로 인해 우리는 풍부한 음악을 즐길 수 있다. ‘빛나는’이란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그들의 음악은 너무나 세련되었지만 그래도 나는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가 눈을 지긋이 감고 지휘하는 그의 브람스 4번이 늘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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