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마귀와 백로가 함께 - 울산 태화강 오서원에서
까마귀와 백로가 함께 - 울산 태화강 오서원에서
  • 승인 2018.06.28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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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후섭 아동문학가
교육학박사
일전 문학 관련 볼일로 울산을 다녀왔습니다. 필자는 울산에 갈 때마다 울컥해지는 느낌을 받곤 합니다. 그것은 정유재란 때에 필자의 13대조께서 이곳 학성전투에서 돌아가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렸을 때에 가첩(家牒)을 들여다보니 ‘11세 청(淸)’ 할배(필자는 24세) 항(項)에 ‘임진 창의 훈로, 정유 12월 21일 순절 도산지전, 사 정호 벽절(壬辰 倡義 勳勞, 丁酉 12月 21日 殉節 島山之戰, 賜 亭號 碧節)’이라는 구절이 있었습니다.

선고(先姑)께서는 이에 대해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창의하셨다가 정유년에 다시 난리가 일어나자 도산전투에 참여하여 12월 21일에 순절하셨고, 이에 정자 이름으로 벽절(碧節)을 받으셨다’ 라는 요지로 설명해 주셨습니다.

이때에 ‘도산’이 어디인지는 제대로 알지 못한 채 도산서원이 있는 안동 어디이려니 하고 지레짐작하였습니다. 도산서원이 고향 청송에서 비교적 가까운 곳에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로부터 오래 뒤에 벽절 할배의 비문을 읽다가 도산성(島山城)이 울산에 있고, 학성 또는 울산왜성으로 불린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당시 밀리기 시작한 왜놈들이 울산에 성을 쌓고 자리를 잡으려하자 전국의 의병들이 들고 일어났던 것입니다. 조·명연합군과 의병 약 3만 5천여 명이 도산성을 에워쌌습니다.

그런데 성이 워낙 가파르게 세워져 있는데다 견고하여 쉽게 함락이 되지 않았습니다. 이에 포위 작전에 들어갔습니다.

그러자 성에 갇힌 왜군들은 말을 잡아먹고 소변을 마셔가며 버티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몸부림을 치던 중 부산포에서 6만여 명의 원군이 도착하게 되자 우리는 통탄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원군으로 온 왜군들은 성을 에워싸고 있던 의병들의 뒤에서 공격을 퍼부었습니다. 이에 의병들은 수많은 사상자를 내고 물러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벽절 할배는 이 때 희생되셨던 것입니다. 당시 교통수단이 넉넉하지 못한 상태였으므로 경북 청송에서 경남 울산까지 간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벽절 할배는 두 아들 중 어린 둘째에게 집안을 맡기고 조금 장성한 맏이를 데리고 이 전투에 참여하셨습니다.

태화강에 이르러 학성 쪽을 향해 묵념을 올린 뒤 회의 시작 전까지 대숲을 잠시 걷기로 하였습니다.

도시는 볼 때마다 깨끗해지고 있었습니다.

얼마 전 정원박람회를 한 흔적도 남아있었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관심이 가는 것은 오서원이었습니다. 1회용 작품이어서 그런지 흔적밖에 남아있지 않았지만 그 안내판에 관심이 갔습니다.

‘까마귀 오(烏), 해오라기 서, 정원 원(園)’을 쓰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까마귀와 해오라기가 서로 어울리는 정원이라는 뜻을 품고 있었습니다.

이곳 울산은 1960년대 우리나라 산업화의 견인차 역할을 하면서 공업화의 상처가 많이 남아있는 곳이었습니다. 도시 한복판을 흐르는 태화강도 죽음의 강으로 불릴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시민들의 적극적인 노력에 의해 지금은 전국 어디에 내어놓아도 손색없는 깨끗한 하천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겨울에는 식탐 많은 까마귀들이 몰려오고, 여름에는 깨끗한 물에서 먹이를 찾는 해오라기들이 모여들고 있습니다. 까마귀들은 검고 해오라기들은 대체로 흽니다. 모든 생명체들이 다 그러하듯 새들도 좋은 조건을 찾습니다.

오서원을 설치한 작가는 이처럼 다른 종류 새들이 함께 모여 먹이를 찾으라는 염원을 이 작품에 담지 않았을까 합니다.

이제 임진왜란도 객관적인 입장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는 역사적 산물이 되고 말았습니다. 상처는 아프지만 언제까지나 거기에 매달려 있을 수는 없습니다.

서로 이질적인 조류들이 함께 어울리는 공간을 염원하듯 우리도 각 지역, 각 나라들과 공존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잊을 수는 없지만 매어있을 수만도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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