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구초심’ 엄마에게 집은 어딘가?
‘수구초심’ 엄마에게 집은 어딘가?
  • 승인 2018.07.02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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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순란(주부)


홍희가 엄마가 된 지 18년째다. 경력이 이 정도이면 베테랑이 되어 능수능란하게 엄마의 역할을 막힘없이 잘 할법도 한데 갈수록 어렵다. 아이가 클수록 새로운 상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고2가 되면 사고력이 생겨 더 말이 잘 통할것 같았는데 더 벽창호다. 자기마음대로 자기방식대로 하려한다. 참 엄마노릇 힘들다.

홍희는 밥만 챙겨놓고 혼자 있는 엄마에게 간다. 요양보호사가 하루 두 번 밥과 약을 챙겨주는 엄마다. 엄마는 몸은 괜찮은데 인지력이 약해지고, 밥을 잘 챙겨먹지 못한다. 외손자, 외손녀 이름도 잊어버렸다. 금방 있었던 일도 잊어버린다.

엄마는 돈때문에 억척같이 일을 했다. 논과 밭이 적어 남의 땅을 부쳤다. 새벽 부터 밤늦게까지 뼈가 부서져라 일을 하고 수확을 하면 곡수로 일부 주면 남는게 줄어든다. 그걸로 농사짓는데 들어가는 비용을 제하면 남는 돈은 또 줄어든다. 그 돈으로 대구 나간 자식들 학비에 방월세에 생활비를 주고나면 또 남는 돈은 줄어든다. 빚이 있어 갚으러간다. 일을 할 때는 힘든줄 모르는 엄마는 빚갚으러갈 때는 너무 힘들어한다. 엄마의 말을 빌면 “뒷골이 딱딱 땡기고, 머리가 아프다”한다. 엄마는 머리가 자주 아프다했다. 골치가 자주 아프다했다. 그래서인가? 엄마는 점점 머리가 아파져서 많은 일들을 기억하지 못한다.

엄마는 평상시에는 잘 먹지를 못해서인지 훈제통닭 한 마리를 거의 다 먹었다. 엄마가 닭을 이렇게 좋아하는지 몰랐다. 돈이 아깝고, 자식을 먹이느라 닭 한 마리 마음껏 먹어보지 못했을 엄마다. 다음에는 피자도 사 드려봐야겠다. 커피까지 마시고 마루에 앉아 쉬고 있는데, 엄마는 갑자기 말을 한다.

“여기는 내 집이 아니래, 내 집에 가야돼. 내 집은 상구래.”

이 무슨 말인가? 그토록 오랫동안 살았던 이 집이 자기집이 아니라니 치매가 심해진것인가? 엄마가 이제 정신이 어떻게 된 건가? 많은 것들을 잊어버려 ‘몰라’라는 말을 반복하지만, 그렇게 이상한 말을 하지는 않았는데, 갑자기 머리가 쭈볏해졌다. 이러면 안 되는데….

잠시 멍하니 엄마를 바라보다보니 ‘엄마가 아닌 엄마’의 마음을 알 것도 같다. 엄마의 친정 즉 엄마가 어릴 때 살던 집은 홍희의 친정과 가깝다. 가깝지만 홍희는 외갓집에 가 본적이 없다. 엄마도 결혼 이후 가본 적이 없을 것이다.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시고, 오빠와 남동생이 대구에서 살았다. 방학이 되면 어린 자식들을 데리고 오빠네 집, 동생네 집에 갔다. 거기 가면 엄마는 생기가 돌았다. 억척스런 엄마보다는 사랑받는 누이와 누나같았다. 그 오빠와 남동생들은 벌써 이 세상에 있지 않다. 가 볼 형제가 없다. 엄마의 남편인 아버지마저 돌아가시고, 이 텅 빈 집에 10년을 살았다. 돈을 벌지 않아도 되고, 일을 하지 않아도 되고, 남편을 위해 밥을 하지 않아도 되고, 자식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오롯이 자신만을 위해 살면 되는데, 현재와 가까운 기억을 잃어가면서 아주 먼 기억의 ‘자신의 집’이 또렷이 기억난 것이다. 점점 더 많은 것을 잊어가는 엄마가 ‘내 집’이라고 말하는 ‘상구’. 그건 정신이 이상해져서가 아니다.

엄마도 한 인간이다. 요즘 시골에 살던 남자들이 직장을 다니다가 은퇴를 하면, 고향집에 돌아와 집을 짓고 농사를 짓는 경우를 많이 본다. 떠돌이 객지생활을 접고, 어린 시절 살던 고향에 터를 잡고 노년을 보내고 싶어한다. 엄마 또한 다르지 않다. 항상 우리들의 엄마로만 기억되는 엄마는 엄마이기 전에 ‘딸’이었고, ‘동생’이었고, ‘누나’였고, ‘친구’였다. 결혼하면서 아내로, 며느리로, 엄마로서의 삶을 충실히 살았던 엄마는 이제 그 역할에서 해방되니 잊었던 ‘내 집’이 생각난 것이다.

엄마도 엄마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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