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주소를 바꿔야
현주소를 바꿔야
  • 승인 2018.07.09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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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대열
전북대 초빙교수
러시아 월드컵 경기에서 패전이 확실하다고 점쳤던 독일과의 싸움에서 2:0의 승리를 얻어낸 한국축구팀의 저력은 누가 뭐라고 해도 국민의 마음을 일순에 사로잡았다. 모든 언론이 기적이라고 표현할 만큼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던 세계1위와의 대결이었기 때문에 반전의 기쁨은 더 컸다. 게임이 끝나고 모든 선수들이 한 덩어리가 되어 기쁨을 만끽하는 눈물을 흘리는 순간은 마치 월드컵 우승이라도 한 것처럼 한껏 부풀어 올랐다.

지난 6·13지방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전국을 휩쓴 것과 비슷한 국민적 쏠림이었다. 단지 독일 하나를 이겼을 뿐 16강에도 들지 못한 처절한 패배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은 전차군단을 꺾었다는 이유 하나로 마치 개선장군을 대하는 것처럼 환영했다. 그러나 우리는 좀 더 냉정하게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한국 축구는 최고의 인기를 누리면서도 K리그 관중석은 언제나 텅텅 비어있다. 과거 평균 1만5천이던 관중수가 지금은 9천명대로 줄어들었다. 반면에 인기 면에서는 축구에 뒤지는 야구경기가 항상 만석(滿席)을 자랑하는 현실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이 모든 책임이 어디에 있을까? 당연히 대한축구협회다.

축구협회는 1천억에 가까운 1년 예산을 쓰는 거대한 경기단체다. 오랜 옛적에는 모든 예산을 회장이 책임질 수밖에 없는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이제는 프로팀을 운영하며 막강한 재정을 가진 매머드단체다. 회장의 출연이 없어도 얼마든지 자체경비로 운영되는 단체임에도 불구하고 축구협회는 정몽준 1인 휘하를 벗어나지 못하고 그의 4촌동생인 정몽규가 뒤를 이어 20년 이상 정씨일가의 독점체제에 놓여있다. 오죽하면 대한축구협회가 아니라 ‘현대축구협회’라는 비아냥이 나오겠는가. 물이 한 곳에 오래 머물러 있으면 당연히 썩게 된다. 이를 등한시 하다가 독재자가 되고 결국 국민의 지탄을 받고 쫓겨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물론 오래된 장맛이 좋다고 개방적이고 개혁적인 축구정책을 펴내며 부단한 노력으로 체험과 경륜을 펼치는 현명함을 드러낼 수 있다면 오래한다고 배 아파할 이유가 없다. 그것은 모든 축구인들이 바라는 바다.

그런데 현 축구협회는 그런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정씨일가의 전횡 하에 축구협회 멤버는 언제나 그 나물에 그 밥이다. 말로는 개혁과 개방을 입에 달고 살지만 막상 인사를 보면 전혀 개방적인 모습을 볼 수 없다. 자기 보신에만 매달리는 매너리즘에서 빠져나올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를 혁신하기 위해서는 회장 선출제도를 뜯어고쳐야 한다. 나는 일찍이 선수와 감독 심판진까지 포함하는 거대한 ‘직접적’선거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정씨일가가 독점하고 있는 현재의 구조는 다른 경기단체와 비교할 때 매우 전근대적이다. 빙상연맹, 수영연맹, 농구연맹 등 내부갈등이 치열한 단체들은 묵은 체제를 혁신하고 새로운 활력소를 얻게 될 것이 틀림없다.

축구협회가 지금처럼 늘어진 모습으로 계속된다면 발전을 기약하기 힘들다. 축구의 중흥을 위해서는 선수양성의 기반이 넓어지는 게 첫째다. 나는 전두환시절에 없어진 육해공군 해병대 축구팀 부활을 제의한 지 오래다. 지금 상무팀으로는 이를 카버할 수 없다. 군축구팀이 생겨야 고교를 졸업하고 입대하는 선수들의 활로가 모색되고 지평이 넓어진다. 여기에 인기절정이었던 육해공군사관학교 대항전은 국민에게 새로운 볼거리를 제공할 것이다. 이런 정책대안을 제시하고 정부와 협상을 벌일 수 있는 비전을 제시할 수 있어야 진정으로 축구를 사랑하고 미래를 약속하는 협회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 덧붙여 한국축구클럽연맹 김병환사무총장이 역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유소년축구경기는 한국축구의 미래를 가늠하는 시금석이다. 축구강국들이 모두 유소년축구를 양성해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체계적인 양성책을 내놓지 않고 있는 축구협회의 무감각은 많은 돈을 들여 훈련한 대표팀의 부진상으로 현실화된다는 사실을 깊이 깨달아야만 한다. 현재 축구협회는 홍명보와 박지성을 축구행정의 중추적 책임자로 임명하여 정몽규 산하에 품었다. 그들은 축구선수지 축구행정가가 아니다. 그게 그것 아니냐고 반문하다면 할 말이 없지만 그들은 행정보다 코치 감독진에 적합한 사람이다. 유능한 코치를 서류나 만지작거리는 행정직에 두는 것은 국민이 키운 인재를 썩히는 꼴이다. 우리가 이번 월드컵에서 거둔 대독일전에서 승리한 것으로 면죄부를 삼는 것에 그친다면 한국축구의 미래는 매우 어두워질 수박에 없다고 단언한다. 국민과 협회가 모두 협심하여 새로운 기풍을 조성할 수 있도록 해야만 하며 여기에는 정부의 협조가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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