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신의 덫
확신의 덫
  • 승인 2018.07.09 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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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현숙
시인
얼마 전, 등단한 지인이 인사차 선생님을 찾아간 적이 있었다고 한다. 함께 차를 마시며 축하를 하기로 마련한 자리였다는데 한참을 글에 대한 얘기를 나누던 선생님의 표정이 점점 굳어가더라는 것이다. 어렵게 해야 할 말이 있으신 듯 살짝 어색한 웃음으로 운을 띄우시고는 ‘듣고 상처받지 말라’고 ‘그래도 괜찮겠냐’며 몇 번이나 확인하듯 되묻고는 마음속 깊이 담아놓으신 말들을 조심스레 꺼냈다고 한다.

당선소감문에 대해 주변에서 말들이 많다고 하셨단다. 소감문에는 가능한 한 많은 분의 이름을 올려놔야 본인에게 좋을 수도 있지만, 생각했던 분의 이름은 없고 생각지도 않은 분의 이름이 들어가 있어 의아 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잘 나간다는 유명시인의 이름을 올려 그의 명예욕을 채우려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었다.

“앞에서 할 수 없는 말은 뒤에서도 하지마라는 말이 있듯 없는 자리에서 그렇게 뒷담화나 해대는 그들을 선생님께선 얼마나 깊이 신뢰를 하시느냐”며 그는 되물었다고 한다. 선생님은 그에 대한 변명을 대신 하느라 힘들었다고 하셨단다. 그 말에 내심 지인은 자신도 자기를 모를 때가 많은데 선생님께선 그를 얼마나 깊이 아시기에 혼쭐은커녕 변명을 대신 했다고 하시는지 이해가 안 되더라는 것이었다.

그 후, 며칠을 내내 지인은 그 말에 갇혀 지냈다고 한다.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으나 글 한 줄 쓰지 못했고 밥 대신 줄담배만 꾸역꾸역 피워댔다고 한다. 소화제를 달고 살았으며 깨어 있기 위해 수 십 잔 의 커피를 마시면서도 무엇 때문에 깨어 있어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고 한다.

그 며칠 동안 타인의 평가에 얼마나 시달렸을까를 생각하니 그가 측은해보였다. 두 눈은 붉게 충혈 되어 실핏줄이 터져 있었고 지나칠 정도로 신경을 쓴 탓인지 기력이 다해 보였다. 남의 일 같지 않았다. 그에게도 처방이 필요했다.

‘향수’와 ‘좀머씨 이야기’로 잘 알려진 작가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단편소설집「깊이에의 강요」를 처방하기로 했다. 소묘를 뛰어나게 잘 그리는 슈투트가르트 출신의 젊을 여인은 초대 전시회에서 어느 평론가로부터 이런 말을 듣게 된다.

“그 젊은 여류 화가는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고 그녀의 작품들은 첫눈에 많은 호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그것들은 애석하게도 깊이가 없다.”

사람들은 부정적인 비평을 외우고나 있는 듯이 그리고 그녀에게는 깊이가 없는 것이 사실인양 떠들고 다녔다. 형체도 없이 떠돌아다니는 그 말에 사로잡힌 그녀는 그림에는 손도 대지 않았으며 ‘왜 나는 깊이가 없을까’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그림 그리길 시도 해 봤지만 “그래 맞아, 나는 깊이가 없어”를 외치며 거듭 실패하게 된다. 그 후,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그림 앞에 선 그녀는 불쑥 “실례지만, 이 그림에 깊이가 있는지 말씀해 주시겠어요.” 라고 물었다가 크게 비웃음을 사고 만다.

한 때, 그림을 잘 그렸던 젊은 여인은 순식간에 무너졌다. 외출도 하지 않고 타인의 방문도 거부한 채 알코올과 약물 남용에 빠진 그녀는 결국, 텔레비전 방송탑으로 올라가 139미터 아래로 뛰어내리는 것으로 생이 끝나고 만다. 보이는 세상의 깊이에 맞서지 않고 보이지 않는 세계의 더 깊은 구렁텅이로 스스로를 몰아넣고 만 셈이 된 것이다. 그녀가 끔찍하게 삶을 마감한 것에 대해 당혹감을 표현한 단평을 문예란에 기고한 평론가의 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사명감을 위해 고집스럽게 조합하는 기교에서, 이리저리 비틀고 집요하게 파고듦과 동시에 지극히 감정적인, 분명 헛될 수밖에 없는 자기 자신에 대한 피조물의 반항을 읽을 수 있지 않은가. 숙명적인, 아니 무자비하다고 말하고 싶은 그 깊이에의 강요를.”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터키의 작가 오르한 파묵(1952~)은 안다는 것과 본다는 것의 의미를 “안다는 것은 본 것을 기억하는 것이며, 본다는 것은 기억하지 않고도 아는 것이다”라고 했다. 그리고 ‘역피그말리온 효과’라는 것이 있다. 사실을 왜곡하는 안경을 끼고 사물을 보면 모든 사실이 왜곡될 수밖에 없다. 잘못된 꼬리붙이기의 효과는 즉각적이다. 대신 확신의 덫에 걸릴 확률도 높아지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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