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不貞)의 망상
부정(不貞)의 망상
  • 승인 2018.07.15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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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윤 시인
걱정이 많다. 가질수록 걱정거리가 늘어나는 것은 분명하다. 버스가 없었다면, 차가 언제 오는지 걱정하지 않고, 걸어가면 된다. 핸드폰이 없다면 배터리를 걱정할 이유가 없다. 갖지 않을수록 걱정거리의 수는 분명히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가지려고 한다. 갖기 위해서 걱정을 하고, 가진 것을 지키기 위해서 걱정을 한다. 걱정은 한자어로 고민(苦悶)이라고 한다. 뜻은 모두, 괴로워하며 애를 태운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걱정을 해서 사라질 걱정이라면, 수도 없이 걱정을 할 테지만, 걱정은 대개 또 다른 걱정을 낳기도 한다. 사람에 대해서도 그렇다. 사람을 소유의 개념으로 생각하게 되면서, 문제가 불거지는 사례는 수도 없이 많다.

특히 시쳇말로 관종(남들로부터 관심을 받고 싶어 하는 사람을 얕잡아 부르는 관심종자의 약칭)들의 경우에는, 사람과의 깊은 관계성보다 개체 수를 늘리는 것에 더 많은 관심이 있다. 그러다보니, 아는 사람의 수가 줄어드는 것에 대해서 예민해질 수밖에 없다. 누리소통망의 대표 격인 페이스 북이라는 것이 있다. 실시간으로 자신의 게시판에 글을 올릴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의 게시판에 댓글을 달수도 있다. 얼마나 많은 팔로워를 갖추고 있는지부터, 나의 팔로워가 다른 사람의 게시판에 다는 댓글조차 놓치는 법이 없다. 그래서 본인에 대한 그들의 충성도에 따라, 차단하기도 하고 친구를 끊어버리기도 한다. 걱정거리 하나가 더 늘어나는 셈이 된다. 누구를 만나건, 무엇을 하건 휴대폰을 손에서 놓을 수가 없다. 나를 따르는 팔로워의 수가 줄어들까봐 걱정이 많다. 일상을 공개하고, 댓글로 공감하다보면, 오프라인에서 실제로 만남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좋은 취지로 모임을 만들어, 사회에 기여하는 좋은 사례들도 많지만, 이를 악용하는 사례들도 이에 못지않다. 성매매나 불륜을 조장하는 일은 예사고, 배우자를 의심하기 시작하면서, 치정에 얽힌 강력범죄가 일어나기도 한다.

정절(貞節), 정조(貞操), 절개(節槪)는 하나같이 ‘여자들의 순정, 믿음’과 관련이 있는 단어들이다. 어학사전을 찾아보면, 열에 아홉은 그렇게 표기 되어 있다. 모두 낯설지 않다. 반대로 부정(不貞)하다는 것은 정조를 지키지 않는 여자를 뜻한다. 여자들에게만 정조다. 남자는 외도를 해도 부정한 것이 아니라, 그냥 ‘바람’으로 표현하려고 한다. 지나갈 것이니 기다리라는 식이다. 남녀평등, 뒤집어서 여남평등, 더 나아가 역차별이 우려된다고 양성평등까지 용어는 진화되어왔다. 그럼에도 실제로 성의 평등까지는 갈 길이 멀다. 의처증환자의 수는 늘어만 가고, 의부증 환자는 드물다. 여자가 남편을 의심하면 ‘애교’니까 웃어넘기고, 남편이 아내를 의심하면 ‘의처증’이 된다. 이건 의외다. 남자에게 관대한 사회에서, 병명에 대해서는 이렇게 야속하고 단호한 이유가 궁금하지 않은가. 그것은 바로 간혹 청부업자에게 남편을 살해해 줄 것을 교사(敎唆)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대부분은 남편의 범죄가 주종을 이루기 때문이다. 범죄자를 ‘환자’로 둔갑시키는 놀라운 변주곡이다. 남자에 대한 또 다른 특혜가 아닐 수 없다. 병에 걸린 사람이 환자고, 환자는 ‘치료’를 받을 사람이지, ‘처벌’을 받을 사람은 아니라는 거다. 그래서 범죄를 저지른 남편에게 분노보다 동병상련을 느끼는 사람들도 많다. 여자가 ‘끼’가 많았다는 식의 뒷담화가 매우 다양한 이야기들을 만들기도 한다. 여자는 부정을 저지른 것이고, 남자는 바람일 뿐이라는 말도 안 되는 논리의 역사는 넓고도 깊다. 이 모든 것들의 중심 사고에는 ‘여자’는 ‘남자의 것’이라는 소유욕에서부터 비롯되었음을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의학용어 중에 부정망상(delusion of infidelity, 不貞妄想)이라는 것이 있다. 부인 또는 남편이 상대방의 정조(貞操)를 의심하는 망상성 장애의 하나라고 한다. 한 마디로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로 믿는 질환중의 하나인데, 오셀로 증후군(Othello syndrome)이라고도 한다.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인 ‘오셀로’에서 오셀로가 아내를 의심해서 죽이고, 본인도 자결하는 장면에서 유래된 것이다. 작년에 동해시에서 발생했던 살인사건도 남성들이 많은 직장을 다니는 아내를 의심하는 데서 비롯되었다. 출근을 만류하는 남편의 말을 듣지 않고, 출근했던 아내가 그날 변을 당한 것이다.

요즘 빈번하게 발생하는 데이트 폭력도 날이 갈수록 심각한 수준이다. 대부분은 남성들이 가해자다. 부정(不貞)한 것과 자유로운 것은 분명 다르다. 상대가 의심할 만한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은 서로에 대한 배려다. 특히 여성은 누가 뭐라 해도 사회적 약자다. 어이없게도 완력 앞에 무너져 버리는 양성평등이 서글프지만, 사고는 미연에 방지해야 한다. 서로가 부정(不貞)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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