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익(利益), 그 빛과 그림자
이익(利益), 그 빛과 그림자
  • 승인 2018.07.16 20:4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우윤 새누리교회
담임목사
“이익은 일정기간의 수익에서 비용을 차감한 것으로, 한 기업의 경영성과를 나타낸다. 투자자, 경영자, 정부 등의 정보이용자에게 제공하는 유용한 정보로서의 이익은 기업이 추구하는 최고의 목표이다.”

기억 속에 희미하게 남아 있는 경영학 원론에서의 기업과 이익. 기업은 그 이익을 통하여 직원의 생계와 복지를 책임지며, 세법에 따라 세금을 납부함으로써 국가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이행한다. 또 투자를 유치함으로써 국가 경제의 발전을 도모한다. 경영학 원론에서 본 ‘기업의 이익’에는 사회공헌과 국가의 발전 그리고 개인 행복을 위한 가치가 담겨 있어서 우리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다.

한 세대가 흐른 지금 돌이켜 보면, 기업의 이익은 우리 사회를 발전시켜 온 주역이기도 했고 또 한편으로는 우리 사회를 퇴행시키고 있는 주범이기도 하다. 일인당 국민소득 삼만 달러 시대의 진입을 앞 둔 우리나라의 경제는 ‘이익’이라는 최고 목표에 헌신해 온 우리 기업인들 과 근로자들에게 힘입은 바 크다. ‘이익’이라는 개념 안에 숨어있는 역동적 에너지가 우리나라의 경제를 이만큼이나마 견인해 온 것이다.

그러나 그 이익의 빛만큼이나 그로 인해 드리워진 그림자도 짙고 길어 보인다. 최근 우리나라의 항공 산업을 대표하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의 공과는 그 빛과 그림자를 잘 보여 주고 있다. 이 두 재벌기업은 항공 산업의 특성상 국영기업이라 할 수 있을 만큼 국가의 온갖 특혜를 받으며 성장해 왔다. 그런 두 재벌 기업들의 숨겨진 이면이 최근 일련의 사건을 통하여 드러나고 있다. 그들의 숨겨진 행태들은 천민자본주의의 속성을 그대로 담고 있어 충격을 준다. 이익은 빛만큼이나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운다.

적법한 방법에 의한 기업 활동의 결과로서의 이익은 우리 사회를 밝게 하는 빛의 역할을 감당하기에 충분하다. 근로자들의 행복 보장, 사회적 책임의 이행, 국가경제에의 기여 등과 같은 기업 이익의 전통적 가치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나 그 빛을 어두움으로 덮어버리는 그들에게 이익이란 과연 무엇인가? 그들이 목표로 삼고 집요하게 추구해 온 이익의 극대화는 결국 이익의 사유화와 다름이 없다. 사유화된 이익은 권력이라는 옷을 입고 사람들을 종처럼 부린다. 이익이 가진 빛의 가치는 그 야만스런 어두움에 묻히고 만다.

그러나 이제 ‘이익’은 ‘기업이 추구하는 최고 목적’라는 자리에서 물러나야 할 때가 되었다. 기업의 목적이 아니라 그것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의 자리로 물러나야 한다. 수단으로서의 이익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첫째, 이익은 그 기업이 사라지지 않고 계속적으로 유지하게 하는 힘, 즉 지속가능하게 하는 수단으로서의 의미를 가진다. 기업이 우리의 몸이라면 이익은 우리 몸속에 흐르는 피와 같다. 피가 몸의 기능을 살아 움직이게 하듯 이익은 기업이 가진 빛의 기능을 지속가능하게 한다.

둘째, 이익은 사회 공헌 혹은 사회적 가치와 관련된 기업의 목표를 이루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지역 사회의 긴급한 문제 해결과 저개발 국가의 다양한 필요들은 수익성을 보장할 수 없는 사업들이다. 그러나 이익은 기업으로 하여금 이러한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도록 하는 동력이 될 수 있다. 이러한 기업의 목표를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이익은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지향함으로써 인류애를 실천하는 힘이 된다.

이렇듯 ‘이익’이 아닌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것을 기업의 최고 목표로 삼은 기업을 사회적 기업이라고 한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의 사회적 기업은 일정한 조건을 갖추면 정부에서 인증하고 지원해 주는 제도적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인증과 지원이라는 제도적 방식에 의해 태어난 기업은 인큐베이터 안의 아이처럼 병약하여 경쟁력이 약해진다. 그렇게 되면 결국 그 기업은 지속가능성을 위한 최소한의 이익마저 실현하기 힘들게 된다.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사회적 기업은 정부의 인증과 지원보다는 변혁적 기업가 정신에 의해 탄생되고 스스로 기업의 이익을 실현할 수 있어야 한다.

이익은 아직도 우리에게 최고 목표인 듯하다. 이익극대화가 우리의 최고 목표가 되어 있는 한 우리는 여전히 이익에 배가 고프고, 이익 때문에 배가 아플 것이다. 이익을 수단으로 삼아 고픈 배와 아픈 배를 치유할 때가 왔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많이 본 기사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