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과 갈등 사이 - 낙태를 찬성하는 것이 아니라, ‘낙태죄’를 반대한다
축복과 갈등 사이 - 낙태를 찬성하는 것이 아니라, ‘낙태죄’를 반대한다
  • 승인 2018.07.16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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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순란
주부


홍희에게 임신은 축복이었다. 결혼하자마자 임신이 되어 허니문베이비를 출산했다. 밤9시에 양수가 터져 산부인과로 가서 새벽 2시까지 진통을 했다. 천정이 노랗게 보였다. 자연분만을 고집했었는데 고통이 길어지니 ‘수술을 해달라’는 말이 나왔다. 간호사가 좀만 더 참아보시라고, 곧 나올 것 같다고 했다. 아이가 세상으로 나왔다. 평화로웠고 아이는 예뻤다. 둘째 출산은 쉬웠다. 딸이라서 머리가 작아서인지 분만실로 가서 몇 분후에 아이와 만났다. 홍희는 셋째를 고민했다. 경제적으로 풍족하다면 셋을 낳아 키우고 싶었다. 외벌이였다. 아이 교육비가 ‘억’소리 날 정도로 만만치 않고, 주택마련에 10년이 걸리는 현실이었다. 그즈음 두 달이 다 되어가는데도 생리를 하지 않았다. 혹시나 임신이 되었나 걱정이 되었다. 임신이 되었으면 낳을 것이다.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서 남편에게 의견을 물어보니 뜻밖에 병원에 가라고 했다. 생리가 나왔고, 셋째 임신이 걱정된 남편은 피임수술을 했다.

임신이 축복이지만 그와 동시에 갈등이 될 경우도 분명히 있다. 아이는 여성 혼자만 임신한 것이 아니고, 여성 혼자 아이를 키우는 것이 아니다. 임신이 되어 출산까지만 여성의 몸 안에 있다. 임신, 출산, 육아, 교육을 여성 혼자의 책임과 의무로부터 남성과 사회가 함께 책임지고 분담하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여성의 사회진출과 더불어 출산률이 낮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과 태아의 생명권이 소중하다는 이유로 여성이 임신이 되어 낳아서 키울 수 없는 상황이 명백하여 불가피하게, 어렵게, 고통스럽게, 몸과 마음이 아파하면서 ‘낙태’를 결정해도‘낙태죄’로 여성을 처벌하는 것은 반대다.

기혼자들의 경우 ‘아이를 낳아도 길러줄 사람이 없어서,’ ‘아이를 키울 경제적인 형편이 못되어’ 등 가정형편 혹은 경제적인 이유로 하는 낙태가 대부분이고, 미성년자 혹은 미혼의 경우는 처한 상황자체가 근본적으로 출산결정을 어렵게 한다고 한다. 최근 10대산모가 갓난 아기를 사탕깡통에 넣어 아파트 화단에 유기한 것이 숨진 채 발견되었다고 한다. 아이를 낳아 잘 키울 수 없을 것 같은데도 임신이 되었으니 무조건 낳아야 하는 것은 아이와 엄마에게 가혹하다. 태아의 생명권 못지않게 태어날 아이와 엄마의 행복추구권도 중요하다.

세계보건기구 가이드라인(2015)은 “인공임신중절과 관련된 법과 정책은 여성의 건강과 인권을 보호해야한다. 안전한 임신중절을 시기적절하게 받는 것을 방해하는 절차적이고 제도적인 장벽을 철폐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안전하지 못한 낙태수술로 인해 매년 700만명이 합병증으로 치료가 필요하며, 4만 7000명이 사망한다고 한다. 의학적이고 안전한 시술만 가능하다면 모성사망(임신.분만 관련 질환으로 사망)의 13%가 줄어든다고 한다. OECD 회원국의 80%인 29개국에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인정하고 본인요청에 따라 낙태가 가능하다. 1975년 프랑스의 낙태 합법화 입법에 견인차 역할을 한 정치인 시몬 베이유는 반대 여론에 대해 “어떤 여성도 낙태를 가볍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며 끈질기게 설득했다고 한다.

여성이 자신에게 잉태된 생명을 가볍게 여기고 쉽게 낙태를 하지는 않는다. 아이를 낳아 키울 수 있는 상황이 된다면 당연히 아이를 낳을 것이다. 홍희는 낙태를 찬성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낙태죄’는 반대한다. 낙태죄를 임산부와 의사에게만 지우는 것도 불합리하다. ‘낙태죄, 처벌하려면 남자도 같이 처벌하라’는 목소리도 있다. 원하지 않는 임신이 되지 않도록 피임교육을 철저히 해야한다. 기쁘게 출산한 경우에도 자녀양육을 하다보면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낙태죄’로 처벌받는 것이 무서워 아이를 낳는다면 여성과 아이의 인생은 어떠할 것인가? ‘낙태죄’는 뻔히 보이는 불구덩이로 뛰어드는 불나방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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