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로 꿰맨 눈물, 어머니의 사랑을 말하다
실로 꿰맨 눈물, 어머니의 사랑을 말하다
  • 황인옥
  • 승인 2018.07.17 20: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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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산문화회관 서옥순 ‘눈물’展
바느질로 얼굴 드로잉 시도
늘어진 실에서 눈물 오버랩
여성의 고통 담고 위로 건네
봉산-서옥순1
서옥순 作 ‘눈물’ 봉산문화회관 제공


상처 없는 인생이 있을까? ‘늘 행복, 늘 평화’를 주문처럼 암송하지만 상처 마를 날은 없다. 그러나 매번 아침이면 생기발랄. 하얀 밤을 실타래 삼아 상처를 꿰매고 또 꿰맨 탓이다. 하지만 다시 밤이 되면 살갗을 뚫고 올라오는 새 상처는 막을 길이 없다. 인생이 곧 눈물인 까닭이자 작가 서옥순이 바느질로 ‘눈물’을 꿰매는 이유이기도 하다. “눈물은 슬픔만을 의미하지는 않아요. 슬픔과 기쁨, 고통이 교차한 기억과 망각의 실타래죠.”

봉산문화회관 기획 ‘2018 기억공작소’전에 작가 서옥순이 초대됐다. 전시제목은 ‘눈물’, 작업방식은 바느질이다. 전시장 중앙 벽면에 높이 5.14X폭4.96m의 바느질로 드로잉 한 자화상이 걸렸다. 눈에는 한 줄기 검은 실선이 수직으로 바닥을 향해 흘러내리고 있다. ‘눈물’이다.

자화상 아래 바닥에 설치된 수평의 검은 선의 행렬은 벽면에 걸린 자화상이 흘린 눈물의 바다처럼 다가온다. 그리고 이어놓은 검은 선 아래에 누워있는 실제 인물 크기의 울긋불긋한 입체인형이 설치되어 있는데, 이 역시 ‘눈물’을 주제로 한 자화상이다.

바느질 드로잉 자화상 맞은편 벽면에도 온통 눈물 천지다. 그릇에 넘쳐흐르는 물, 뭉쳐진 실, 손바닥 위에 세워진 식물과 흐르는 흙 , 벌레 등에 바느질로 아로새긴 눈물 자욱이 걸렸다. 새 옷이 몸에 맞지 않아 수선집을 더러 찾기는 하지만 풍요의 시대에 직접 바느질하는 풍경은 사라진지 오래다. 더구나 작품에 바느질을 끌어들이는 것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녀가 큰 눈망울을 깜빡였다. “‘나’를 찾던 과정에서 어린시절 호롱불 밑에서 복주머니를 만들어 주셨던 할머니의 기억이 떠올랐어요.”

첫 바느질 작업은 한복저고리에 얼굴을 드로잉 한 작품이다. 독일 유학 중이었던 2001년에 몽키비취 지도교수가 서옥순에게 서양 답습이 아닌 ‘너만의 작업’을 해 보라고 권유했고, 고민을 거듭한 끝에 한복저고리가 뇌리를 스쳤다. 망설임없이 종이로 한복저고리를 만들고 저고리에 얼굴 드로잉을 바느질하기 시작했다.

“제가 다닌 대학에서는 해마다 방학 기간 동안 일반인에게 공개하는 재학생들의 전시를 열었어요. 그때 몽키비취 교수가 제 한복저고리 작품을 보시고 전시장 하나를 선뜻 내어 주셨어요. 그 전시에 천으로 된 한복저고리 드로잉작품을 걸었죠.”

한복저고리를 만들기 위해 방학 기간 중에 서문시장을 들러 공단천을 끊고, 독일 국기 색의 한복저고리 제작을 맡겼다. 완성된 저고리를 받아놓고 뚫어지게 바라보면서 자신만의 정체성을 덧입히고 싶다는 열망이 차올랐다. 그때 떠오른 것이 수였다. 곧바로 하얀 저고리를 캔버스 삼아 얼굴을 수놓기 시작했다.

작가는 “얼굴은 주민등록과 같다”며 “그 사람의 모든 것이 담겨있다”고 했다. “기쁘거나 힘든 상황에서 자신의 얼굴과 대면하면서 자신을 되돌아보고, 반성하고 미래를 꿈꾸게 되죠. 관객들에게 제 자화상을 통해 그런 시간을 마련해 주고 싶었어요.”

첫 얼굴 작품을 바느질로 마무리하는 시점에 묘하게 눈물이 오버랩됐다. 실을 바늘에서 빼내고 매듭을 지으려는 순간, 길게 늘어진 실에서 빰을 타고 흐르는 눈물 자욱을 보게 됐다. “늘어진 실에서 남아선호 시대의 딸로 살면서 겪었던 차별, 아이 양육과 유학 생활을 병행하며 느꼈던 힘든 상황들이 떠올랐어요. 그것을 보는 순간 눈물이 났어요.”

그녀는 울보였다. 어딘가에서 읽었다는 감동 사연을 소개하고 싶다며 말을 꺼내자 바로 눈시울을 붉혔다. 그녀 스스로 ‘주책’이라고 하면서도 흔들리는 눈물샘은 어찌할 수 없다고 했다. 그녀가 주제로 하는 ‘눈물’이 어머니의 숭고한 눈물, 정화된 후의 순수한 눈물이라는 설명을 하기 위해 꺼낸 사연이었다.

사연의 주인공은 국비장학생으로 미국 유학을 떠나는 딸을 둔 어느 가난한 어머니와 딸이었다. 너무 가난했던 어머니가 자신과 소녀의 언니 옷 중 가장 깨끗한 옷을 풀어 유학 떠나는 딸의 옷을 지어 준 사연이었다.

그녀는 “중앙아시아의 가난한 어머니의 자식에 대한 헌신이 나의 할머니, 어머니, 그리고 세 아이의 엄마인 저의 자식에 대한 사랑과 같다고 본다”며 “내게 사랑은 곧 ‘눈물’”이라고 했다. “어머니의 눈물은 모든 감정이 정화된 순수의 눈물이죠. 그 눈물을 표현하고 있지요.” 전시는 9월 30일까지 봉산문화회관 2층 4전시실 기억공작소. 053-661-3500

황인옥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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