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의 천궁
어머님의 천궁
  • 승인 2018.07.22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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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남
어머님이 궁금하다

어머님은 약초와 함께 사신다

아버지가 싫어하시는데도 궁궁이를 꽂고 있는

어머니는 어디 편찮으셨습니까



오래 향을 유지하고 있던 궁궁이를

저는 서재방에서 아주 꺼내 버렸네요

허나 그것을 싸고 있던 종이는

아직도 미세하게 그 향이 배어납니다

어머니 너무 섭섭하게 생각하지는 마셔요



여전히 친정 집 욕실 문 안쪽에는

궁궁이 풀이 거꾸로 매달려 있어

은은한 향이 연기처럼 어머니 영혼처럼

나를 안아 사무치게 하고



궁궁이는 아낙이 사는 집 뒤안

장독대에 모여 파랗게 피어나서

뱀들이 얼씬을 못했습니다



궁궁이는 아버지의 다니던 길마저 빼앗아

안채 마룻바닥을 기어 건넛방어머니의 농 안으로

새어 들어가 어머니의 손수건과 파라솔을 곧잘

향으로 적셔놓았지요

늘상 어머님 비녀머리에 꽂혀있던 흰 꽃과

초록 잎줄기로 뿜어대던 어떤 외로움

고요로 가는 진정제



아버님 가신 뒤

한 여인으로 돌아간 어머님이 궁금해

끝내 아버지에게서 해방되지 못하고

입 굳게 닫으신 어머님의 후회가 궁금해



늘 묵묵부답이시던 어머님의 오랜 향



천 년이 가도 궁궁이 속

그 깊은 바닥에서 새어 나오는 향

오른손바닥을 펴놓고 내가 천궁을 읽고 있다


 ◇박정남= 1975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숯검정이 여자’, ‘명자’,‘꽃을 물었다’ 외 다수.

<해설> 궁궁이는 천궁이라는 미나리과 식물로 부인병에 좋다는 약재이다. 그런 약초를 즐겨 키우셨다는 어머니는 어쩌면 자신의 세계를 가꾸고 싶으셨는지 모른다. 꼭꼭 싸매두신 노모의 외로운 세계를 읽고 있는 시인은 무엇을 읽어냈을까 부디 찾아내어 그 남은 여정에 외로움 없게 하기를 빌어본다. -정광일(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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