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와 거울 사이
유리와 거울 사이
  • 승인 2018.07.22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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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현숙 시인
“아! 곧 가을이 오겠군.”

나와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고 앉아 창밖을 바라보고 있던 막냇동생이 무슨 뜬금없는 말을 하는가 싶었는지 마시고 있던 커피 잔을 내려놓고 나를 쳐다본다.

“눈으로 보는 것과 몸으로 느끼는 것과의 차이는 엄청나게 큰 것 같아 그자. 막둥이 넌 어떻게 생각 해?”

빵빵하게 틀어놓은 에어컨 바람을 쐬며 창 안에 앉아 바라본 창 밖, 2.28공원의 풍경은 이미 가을이다. 한껏 짙어진 진초록의 나뭇잎들을 흔들고 지나가는 바람까지 쓸쓸해 보인다. 미니 선풍기를 하나씩 목에 걸고 떨어져 걷는 연인들의 거리가 어쩐지 낯설어 보였으며, 짧은 청바지는 시린 바람을 막아줄 수 없을 만큼 아찔해 보인다. 칠월이 느리게 지나가고 있는 도심의 중앙로 카페에서 큰성과 막내로 만난 우린, 늘어진 필름처럼 지나가는 공원 쪽 사람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햇빛을 가리기위해 챙겨 나왔다는 소매 긴 카디건을 꺼내 등을 감싸 안으며 막냇동생이 말했다. “거의 40도를 오르내리는 더위를 몸으로 직접 견디고 있는 창 밖에서는 창 안 세상을 우째 알겠노 큰성아. 겨울을 좋아하는 큰성하고 여름을 좋아하는 나의 사이처럼 창 안 밖의 온도 차이는 그저 짐작만 할 뿐인기라.”

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난 자매로 같은 장소, 같은 시간, 똑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어도 서로 제 각각이 끼워진 장롱서랍들처럼 살아왔다. 그리고 다른 시공간에서 각자 다른 온도와 눈높이로 자리 잡았다. 정현종 시인의 ‘창’이라는 시의 일부분을 떠올렸다.

“자기를 통해서 모든 다른 것들을 보여준다. 자기는 거의 부재에 가깝다. 부재를 통해 모든 있는 것들을 비추는 하느님과 같다. 이 넓이 속에 들어오지 않는 거란 없다/ (중략) / 눈들이 자기를 통해 다른 것들을 바라보지 않을 때 외로워하는 이건 한없이 투명하고 넓다, 성자를 비추는 하느님과 같다.”

생각해보면 막냇동생과 내가 바라본 오늘, 우리의 창은 ‘문’(門)이었다. 열정을 다해 열고 나감으로써 ‘너와 나’, ‘창 안과 밖’, ‘온도와 온도 사이’ 서로의 세상을 보여주는 ‘문’이었던 셈이다. 투명한 유리창처럼 세상이라는 틀에 갇혀 속이 훤히 들여다보일 듯 다 안다고 여겼던 일들이 가끔은 높이도 깊이도 전혀 짐작할 수조차 없는 담벼락처럼 가로막는 ‘문’일 때도 많았다. 그럴 땐 내 입장보다는 상대의 입장으로 한 발 더 가까이 마음을 열고 들어가 봄으로써 인생의 교집합이 보다 더 커지는 것을 깨닫게 되곤 했다. 그러다보면 결국 우주만큼 커다란 원이 되진 않을까.

창밖을 보려는 열정의 의지가 없으면 창의 존재는 무의미하다. 마음은 세상을 향해 열린 창과 같다. 사람들은 창을 통하여 보고 듣고 느끼게 된다. 지금 나의 창엔, 또한 당신의 창엔 어떤 풍경이 보이고 또 그 풍경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드는지 생각해 볼 때가 된 거 같다. 오래도록 거울인 사람들은 바깥 풍경은 보이지 않고 오직 자신만을 비추는 것에 만족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바깥세상을 볼 수 없는 거울은 문이 될 수 없다. 냉정하게 자신을 만날 수도 있겠지만 열정적인 사람들과는 만날 수 없는 것과 같다.

여름과 겨울사이, 조금 전 까지만 해도 보이지 않던 중년의 여자분 둘이서 총을 내던진 병사처럼 피켓을 내려놓고 더위에 지친 듯 공원 가장자리 땅바닥에 주저앉아 있다. 도화지 크기의 사각피켓 안에는 알록달록하게 쓰인 글자들이 삐뚤빼뚤 누군가를 향하여 호소하고 있었다.

“헌혈합니다. A형, O형 급하게 찾습니다.”

2.28 공원이 한순간 냉정과 열정사이로 난 길처럼 뜨겁다가 차가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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