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을 추켜세우는 사람들에게
이승만을 추켜세우는 사람들에게
  • 승인 2018.07.23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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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대열
전북대 초빙교수
‘박근혜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는 단체가 한 때 위세를 부렸다. 약칭으로 ‘박사모’로 통했는데 이런 비슷한 이름으로 특정인이나 특정단체를 옹위하는 그룹이 많다. 이와 달리 이미 세상을 떠난 지 오래된 이승만에 대한 추억과 회고에 사로잡힌 이들이 ‘이승만 학당’을 개설하고 인터넷 방송으로 ‘이승만TV’를 개설한 것은 어떻게 해석해야 될지 망설여진다.

때마침 제헌절 70주년을 맞이하여 그들은 이승만을 “독립과 건국에 지대한 공로를 남긴 이 전 대통령을 우리 국민과 정부가 무시하고 저평가했으며 심지어 왜곡해 왔다”고 아쉬움을 토하고 있다. 이들은 이미 2016년부터 이승만학당을 운영해 오고 있으며 4기를 배출하고 현재 5기 교육중이다. 강의 담당자는 전 서울대 경제학과교수 이영훈을 비롯하여 연세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김학은, 전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학예연구실장 주익종, 박정희대통령 기념재단 기획실장 김용삼 등이다. 이들을 대표한 이영훈은 문화일보와의 인터뷰를 통하여 문재인대통령이 지난해 광복절 기념사와 올해 3·1절 기념사 등에서 “2019년이 대한민국 건국 100주년을 맞는 해”라고 언급한데 대하여 “지난 70년 동안 정부가 일관되게 1948년 건국을 기념해 왔고 언론도 1948년 이후 10년 주기로 특집보도를 해왔다”고 반박했다. 이에 덧붙여 “1919년 임시정부 수립이 곧 대한민국 건국이라는 것은 학계의 공론을 거친 바 없는 한두 사람의 개인적인 주장에 불과하다”며 “한국의 지적 풍토의 천박함을 드러내는 문제”라고 비판했다. 여기서 우리는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는 고민에 빠진다.

그가 한두 사람의 개인적인 주장이라고 카운트펀치를 먹인 1919년 임시정부 건국문제는 이승만정부 퇴진이후 역사학계의 뜨거운 감자로 떠올라 수많은 논문과 저서를 선보인 한국 역사학계의 최대 논쟁이었다. 학자에 따라 의견이 다를 수 있음은 학문자유의 입장에서 언제나 환영해야할 일이며 우리는 그렇게 배워왔다. 온갖 세미나와 토론회를 거치며 이 문제는 진보 보수를 막론한 역사와 사회학을 전공하는 학자들의 연구과제가 되었다. 아직도 이에 대한 확고한 국가적 공론화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은 인정할 수 있지만 한두 사람의 뒷골목 대화가 아니었음은 너무나 확실한 팩트다. 더구나 학자들의 연구발표를 폄훼하여 ‘지적 풍토의 천박함’으로 깔아뭉개는 것은 그의 지적 수준이 너무나 고매하여 우리 같은 범인들은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경지에 도달해 있는 것이나 아닌지 부끄러워진다.

70년 동안 우리 정부가 ‘1948년 건국’을 기념해 왔다고 주장하지만 이승만이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하는 날 취임식장에 걸린 현수막은 분명히 ‘대한민국 정부수립’이라고 대문짝만하게 쓰여 있음은 무슨 말로 변명할 것인가. 모든 것이 이승만의 뜻에 의해서 결정되어지던 해방정국에서 정부수립 과정으로 이관해 갈 때 ‘건국’이라고 하지 않고 ‘정부수립’으로 표기한 것은 전적으로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을 역임했던 이승만 자신의 정통성 확립 차원에서 이뤄진 그의 뜻이었음을 왜 굳이 외면하려 하는가. 더구나 일제강점 시기는 민족 전체의 수치스러운 역사로서 우리가 현실을 부인할 수는 없지만 강압을 뚫고 전 민족이 대동단결하여 3·1만세운동을 일으키고 임시정부를 수립했다는 사실은 민족긍지를 위해서도 널리 선양해야만 할 일이다.

이승만학당의 당훈(堂訓)은 ‘우리는 자유롭고 독립적인 개인이다’인데 수강생들에게 자유와 독립의 가치를 가르치는데 목적이 있는 듯싶다. 그들은 “우리의 건국이념이 자유민주주의임은 부정할 수 없는데 자유민주주의 이념으로 결정적 공로를 세운 이승만 전 대통령을 홀대하면 국가 정체성에 심각한 위기가 온다.”고 하면서 “지금이라도 이 전 대통령의 업적을 재평가하고 명예를 회복해야 국가 정체성을 바로잡을 수 있다”고 강변하고 있다.

이승만이 치열한 독립운동과 만난을 극복하고 국권회복에 큰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정권을 휘어잡은 이후 그는 가부장적 전근대적 전제군주와 다름없는 독재자로 변신했다. 그가 야당을 탄압하고 언론을 꼼짝하지 못하게 옭아맨 것은 천하가 다 아는 사실이다. 그는 자신의 독재정치를 합리화시키기 위해서 우의마의(牛意馬意)를 동원하여 요즘 식으로 말하면 드루킹에 의한 여론조작을 강행했다. 영구집권을 위해서 3·15부정선거를 저질러 전국의 학생들이 들고 일어났다. 4·19민주대혁명이다. 이승만정권은 맨주먹의 학생들에게 총질을 해댔다. 186명이 현장에서 죽었다. 이승만은 사퇴하고 하와이로 도망갔다가 시신으로 돌아왔다. 그의 독재행각은 역사의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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