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톨레랑스(Tolerance)
[문화칼럼] 톨레랑스(Tolerance)
  • 승인 2018.07.25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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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국 (수성아트피아 관장)



10년도 훌쩍 더 지난 꽤 오래 전 일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 꽤나 인기 있던 TV프로그램 ‘도전 골든벨’. 고교생들이 겨루는 이 퀴즈프로그램에서 모두들 구김살 없이 마음껏 기량을 뽐내지만, 보통은 최종관문 전에 다들 탈락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그 날은 마지막 문제까지 진출한 학생이 있었다. 관용을 뜻하는 프랑스 말을 무엇이라 하는가? 이것이 마지막 50번째 골든벨 질문이었다. 우연히 동료 음악인들과 함께 그 프로그램을 시청하던 중 나온 마지막 질문에 내가 답을 알고 있자 모두들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만큼 당시에는 ‘톨레랑스’라는 단어가 생소했었다.

나의 기억에는 우리 사회에 ‘톨레랑스’라는 말이 널리 알려진 것은 홍세화가 쓴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라는 자신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책으로 인했다. 이것은 언론인 출신 홍세화가 과거 시국사건에 연루되어 어쩔 수 없이 하게 된 프랑스 망명시절 택시운전을 직업으로 삼게 된 이야기 그리고 그 때 겪은 여러 가지 사연을 중심으로 쓴 책이다. 여기에 자주 인용되는 단어가 ‘톨레랑스’였다. 지난한 망명의 세월이었지만 관용이 있는 프랑스 사회였기에 그나마 인간답게 살 수 있었던 그 시절을 담담히, 때론 가슴 뭉클하게 풀어 놓았다. 이 책의 인기에 힘입었는지 한때 톨레랑스는 우리 사회에서 가장 많이 회자되던 말 중 하나였다. 세월이 흘러 작금의 ‘소확행’, ‘워라밸’ 시대에 이미 우리에게 잊힌지 한참이나 지난 이 단어가 요즘 다시금 떠오른다.

최근 우리의 밤잠을 설치게 했던 2018 러시아 월드컵은 ‘역습’이라는 키워드로 정의할 수 있다는 평이다. 즉 메시와 호날두, 네이마르 등 수퍼스타에 의존한 팀의 전술보다는 이들을 피지컬 좋은 선수를 통한 압박과 뒤이은 순간적 역습으로 측면 크로스나 세트플레이에 의한 전술을 구사하는 팀이 훨씬 강력했다. 그리고 또 하나의 키워드는 ‘톨레랑스’가 아닌가 한다. 인종 용광로라고 불리는 ‘레 블뢰(Les Bleus -파란색이란 뜻으로 프랑스팀의 별칭)’군단의 우승으로 말미암아 이 정신의 가치를 증명했다. 즉 전술적인 면에서는 ‘역습’ 정신적인 면에서는 ‘관용’이라는 단어로 2018 러시아 월드컵을 정리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다.

1998년 프랑스대표팀 레 블뢰 군단은 22명 엔트리 중 12명의 이민자출신 선수로 구성되었다. 이들을 중심으로 한 선수들의 예술적 몸놀림은 ‘아트사커’로 불리며 자국 월드컵 우승의 위업을 이루었다. 당시 프랑스 대표팀은 그들 특유의 톨레랑스를 보여주는 상징과도 같았다는 평이었으며 인종-문화적 다양성에 찬사를 받았다. 그 후 2005년 프랑스 전역에서 벌어진 이민자 청년들의 집단 소요 사태, 아직도 우리의 기억에 생생한 2015년 파리 바타클랑 극장에서 일어난 IS에 의한 총격 테러 등으로 인해 프랑스 전역에는 반 이민자 정서가 확산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사회 분위기에도 프랑스 대표팀의 그간의 모토(이번 대표 팀 엔트리 23명 중 21명이 이민후손)는 흔들림 없었고 이번에 마침내 두 번째 월드컵 우승을 이루어 냈다. ‘오랜만에 인종과 사는 곳에 상관없이 모든 프랑스 국민이 같은 곳을 보게 하는 경험을 안겨줬다’는 외신의 보도처럼 축구가 다시 프랑스에 새로운 사회 통합의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다는 평이다.

월드컵 우승 한번으로 사회 통합 분위기가 얼마나 폭넓게, 지속적으로 번질지 두고 볼 일이긴 하지만 물꼬가 터졌다는 점에서는 반갑고 다행한 일이다. 한편 이번 월드컵 결승전에서 크로아티아는 전 세계인의 뜨거운 응원을 받으며 불굴의 의지로 놀라운 경기를 펼쳐 우리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이로 인해 인종 청소까지 있었던 지독한 내전을 겪은 발칸반도 이웃들도 ‘크로아티아는 절대 포기 안했다. 이건 우리만의 기질’이라며 함께 공감하며 반색을 표했단다.

너와 나의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여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이러한 관용의 아름다움이 나를 비롯한 우리 이웃에, 우리 사회에 필요한 시대다. 돌이켜 보면 나 자신 부터도 나와 다른 그 무엇에 대하여는 일단 거리감부터 가지며 수용할 자세를 갖추지 못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내 생각에 빠져 있을 땐 나와 다른 의견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아예 들리지가 않으니 또 다른 견해를 받아들여 사고의 폭을 넓힐 수가 없다. 이래서는 자기 오류를 고칠 기회조차 가질 수 없게 된다. 아무튼 오랜만에 듣게 된 톨레랑스라는 말이 나를 비롯한 우리 모두의 가슴에 잘 스며들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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