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평화보다 더 어려운 자식 키우기
세계평화보다 더 어려운 자식 키우기
  • 승인 2018.07.24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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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효정 ‘우리아이 1등 공부법’저자
지난 주말 영화 ‘인크레더블 2’를 보고 왔다.

개인적으로 14년 전 ‘인크레더블’을 너무 재미있게 본지라 오랜 시간 속편이 나오기를 기다리다가 개봉했다는 소식에 곧바로 극장으로 달려갔다.

영화는 예상대로 재미있었다. 하지만 세계평화를 위한 히어로들의 영웅담보다 내 마음에 더 와 닿은 것은 ‘자식 키우기의 어려움’이었다.

전편에서 악당을 물리치는 사람이 주로 아빠 인크레더블이었던 반면 이번 영화에서 악의 무리와 싸우는 것은 엄마 일라스티걸이다.

아빠는 엄마의 성공을 내조하기 위해 아내 대신 사춘기를 겪고 있는 까칠한 큰 딸과 어디로 튈지 모르는 초등생 아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예측 불가능한 막내를 돌보는 임무를 떠맡는다.

본격적으로 집안 일을 하게 된 아빠 인크레더블은 끊임없이 말썽을 일으키는 아이들 때문에 며칠 만에 초췌한 모습으로 변한다.

다크서클 가득한 얼굴로 아이들 문제를 해결하기 급급한 모습을 보면서 전편에서 세계평화를 위해 하늘을 날던 히어로를 떠올리기는 힘들다.

남자친구 문제로 고민하는 딸에게 도움을 준다고 한 행동에 오히려 사춘기 딸은 크게 반발하고, 수학문제를 도와달라고 가져오는 아들에게 초등생 수학도 풀지 못하는 아빠라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아서 문제를 들고 끙끙대며, 새벽에 잠에서 깨어나 기상천외한 말썽을 부리는 막내를 쫓아다니던 아빠는 결국 침대에 누워 눈물을 흘린다.

반면 엄마 일라스티걸은 모처럼 육아에서 벗어나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면서 세계평화를 위협하는 악당을 물리치고 진정한 히어로로 거듭난다. 그렇다. 육아는 세계평화를 지키는 것보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나 역시 아이를 돌볼 때 “육아만 아니라면 어떤 것이든 자신 있는데!”를 얼마나 자주 외쳤는지 모른다.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아무리 열심히 해도 보람을 느끼기 힘들고, 최선을 다해도 늘 문제가 끊이지 않으며, 출퇴근도 없이 하루 종일 일하는 ‘끝없는 야근’의 연속이다.

에어컨도 없는 더운 부엌에서 정성껏 만든 음식을 아이가 먹지도 않고 뱉어낼 때, 저절로 감기는 눈을 부릅뜨며 밤새 안자고 울어대는 아이를 안아서 달랠 때, 하루 종일 에어컨 나오는 사무실에서 일하다 들어온 남편이 “너는 좋겠다. 집에서 노니까” 같은 말을 뱉어낼 때는 “아이를 키우는 것만큼 보람 있는 일은 없다”라고 떠드는 인간들에게 로켓포를 날리고 싶었다.

지난해 1.05%였던 우리나라 출산율이 올해는 0.9%를 기록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세계적으로 찾아보기 힘든 충격적인 출산율이다.

정부는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어마어마한 예산을 쏟아 붓고 있지만 출산율이 좋아질 것이라는 조짐은 어디서도 보이지 않는다.

대한민국 엄마들이 행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이를 키우는 것이 위대하고 의미 있는 일이라고 주변에서 힘을 주고 격려해줘도 모자란데 걸핏하면 애 키우는 엄마를 ‘맘충’이라고 부르고, 모유 수유하는 엄마를 미개하다고 쳐다보는 사회에서 엄마가 육아에 보람을 느낄 수는 없다.

아이를 돌보는 일에는 동참하지 않으면서 아이가 문제를 일으킬 때마다 아내에게만 책임을 묻는 남편과 함께 살면서 아이 키우기가 행복할 수는 없다.

특히 남편의 가사분담률이 대한민국 최저라는 대구경북지역에서는 아이 키우는 여성의 스트레스가 더 클 수밖에 없다.

영화에서 육아로 지친 아빠 인크레더블에게 아빠의 친구 에드나가 이런 말을 한다.

“제대로만 한다면 육아도 충분히 영웅적인 일이야”

이 더위에 아이와 씨름하는 엄마는, 아이를 제대로 키우기 위해 고군분투 중인 영웅들이다.

그러니 집에서 아이를 돌보는 아내에게 “당신은 지금 영웅적인 일을 하는 중이야”라고 말해주자.

지하철에서 아이를 업은 엄마들에게 자리 좀 양보하자.

그들은 아프리카보다 더 덥다는 대구에서, 대한민국에서 가장 집안 일을 안 도와주는 남편과 살면서 액션 히어로도 어려워하는 육아를 맡아서 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아이와 함께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모든 엄마들에게 “파이팅!”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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