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성 고산마을] 싱그러운 오얏꽃 향기 가득한 ‘의성자두’ 발원지
[의성 고산마을] 싱그러운 오얏꽃 향기 가득한 ‘의성자두’ 발원지
  • 김광재
  • 승인 2018.07.29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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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 고산마을1910년대 박헌국씨 묘목이 시발점60년대 품종개량 등 통해 원형 완성2007년 이종헌·백어용 부부 귀향자두축제 열며 브랜드 홍보 ‘앞장’郡 지원 받아 폐교 활용 밸리축제 개최출향민 150명 참여 꽃길걷기 행사도
의성고산마을
의성 자두의 시배지 고산마을. 봉양면 일대 자두밸리에는 국유림을 개간한 대규모 과수원에서 억대 수익을 올리는 농가도 꽤 있다고 한다.

2018 경상북도 마을이야기 - 의성 고산마을


의성자두는 알이 굵고 맛이 좋아 전국적으로 명성이 높다.

의성군 봉양면 일대는 기후와 토양이 자두 재배에 적합하다. 의성은 해마다 전국 자두 생산량의 20% 정도를 차지하는 자두의 고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낙동강 1천300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태백의 황지라는 작은 연못에 다다르듯이, 모든 일에는 시작이 있다. 의성자두의 발원지를 찾아 역사를 되짚어가면 의성군 봉양면 삼산1리 고산마을에 이르게 된다.

삼산리는 1914년 행정구역을 통합할 때 고산동, 송산동, 오산동 등 세 마을을 합쳐 삼산동(三山洞)으로 명명하면서 비롯됐다.

고산마을은 임진왜란 때 의성 김씨, 동래 정씨, 김해 김씨 등 세 집안 사람들이 난리를 피해 이곳에 정착, 마을 뒤에 높은 산이 있다고 해서 고산이라 이름 붙였다고 전한다.

조문로(927번 지방도) 삼산리 버스정류장에서 바라보면 넓은 들 너머에, 산을 등지고 앉은 고산마을이 마주 보인다.

고산마을 들머리에 있는 쌍계천 고산교 앞에는 높이 5미터의 대형 표석이 서있다. 큰 글씨로 ‘자두의 시배지 고산마을’이라고 적혀있다. 의성 지역에서 자두재배를 처음 시작한 곳이 바로 고산마을이라는 뜻이다.

양옆에는 작은 글씨로 ‘이향만리(李香萬里)’ ‘과진리내(果珍李柰)’라고 새겨놓았다.



 
의성고산마을-자두
고산마을 자두.


이향만리는 오얏(자두)꽃 향기가 멀리 퍼진다는 말이고, 과진리내는 천자문에 나오는 구절로 과일 중에 보배로운 것은 오얏과 능금이라는 말이다.

자두 수확이 끝난 7월 하순, 뙤약볕 아래 고산마을은 정적에 싸여 있다. 인적이 끊긴 길을 따라 마을 뒷산을 오르는 길 양쪽이 자두 밭이다. 탐스런 열매를 생산했으니 이젠 좀 쉬어도 될 것 같은데 나무들은 여전히 맹렬한 기세로 초록을 더욱 짙게 만들고 있다. 내년 더 건강한 잎과 꽃과 열매를 위해 힘을 비축하는 것이리라.

고산마을 자두의 역사는 191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일본 후쿠오카 임업조합에서 일하던 박헌국씨가 살구, 배, 사과, 오얏, 감 등 10여 종의 과실수 묘목을 가지고 처갓집이 있는 고산마을로 들어왔다.

그는 소출을 나누기로 하고 앞집에 살던 김두용씨 소유의 산 1만평에 그 묘목을 심었다. 이렇게 고산마을에 뿌리내린 자두는 점점 이웃 농가, 이웃 마을로 번져나갔다.

의성자두는 1960년대 초 이 마을 김석환씨의 노력으로 한 단계 도약했다.

그는 접을 붙이고 교잡을 시도하고, 경산 하양에서 신품종 묘목을 구입해 오는 등 품종개량과 농사기술 발전에 힘썼다.

그 노력의 결과 좋은 품종의 자두가 인근 지역으로 확산돼 오늘날 고품질 의성자두의 원형이 만들어졌다.

그로부터 다시 50년이 흐르고 고산마을은 또 한 번 의성자두의 도약을 이끌게 된다. 이번에는 생산이 아니라 홍보와 브랜드파워 측면에서의 혁신이다. 2007년 고산마을로 귀향한 이종헌·백어용 부부는 2010년 7월 외지사람들과 마을주민 80여 명을 자신의 집 마당에 초청해 ‘원조 자두마을의 작은 음악회’를 열었다. 색소폰 연주, 시낭송, 노래자랑이 이어졌고 보리밥, 감자, 옥수수, 자두를 함께 나눠먹으며 여름날 하루를 즐겼다. 개인이 시작한 이 행사는 이듬해에 자두 농가들이 참여해, 폐교된 일산초등학교에서 제2회 자두축제로 이어졌다. 이후 의성군의 지원도 더해지면서 봉양자두밸리축제로 확대됐다. 올해 7월에는 제9회 봉양자두체험행사라는 이름으로 봉양종합체육공원에서 열렸다.

4월 중순이 되면 고산마을은 온통 아이보리색 자두꽃 세상이 된다. 그 아름다움을 나누고자 2013년에는 이종헌 부부와 마을 주민들이 꽃길걷기 행사를 열었다. 출향민 등 150여 명이 마을 자두꽃길 4km를 걸으며 꽃향기에 취하고 음악과 음식을 즐겼다. 이 꽃길걷기 행사도 올해까지 이어지고 있다.

또 지난해 7월에는 권역개발사업으로 일산자두활성화센터가 개관했다. 여기에는 고산마을을 비롯해 삼산리, 장대리, 풍리리, 구산리 등 자두농사를 주로하는 봉양면 4개리의 12마을이 참여하고 있다.

고산마을은 자두뿐만 아니라 교육 분야에서도 ‘시배지’ 역할을 톡톡히 했다. 1909년 약 10km 떨어진 비봉교회에 다니던 이 마을 기독교 신자 30여 명은 이영식 영수(교회조직이 갖춰지지 않은 교인 집단의 리더)가 내어준 아래채 초가삼간에서 독립된 교회를 설립했다. 신학문 교육의 중요성을 깨달은 이들은 이듬해 기독계명학교를 설립해 평일에는 학식 높은 마을 어른들이 학생들을 가르쳤다. 계명학교는 1941년 대산간이학교로, 다시 일산국민학교로 바뀌며 60여 년간 이 지역의 초등교육을 담당했다.

이렇듯 의성이 자두로 유명해지게 된 것은 고산마을 사람들의 노력과 도전정신에 힘입은 바 크다. 또 고산마을 삼산교회의 교육 사업도 그 밑거름이 됐을 것이다. 마을을 둘러보고 큰길에 나와 고산마을을 돌아다보니 검푸른 산과 초록 들판 사이에 편안하게 앉아있다. 가벼이 흔들리지 않는 힘과 긍지가 들을 가로질러 전해지는 듯했다.

김병태·김광재기자



“자두시배지 상징성 살린 축제 만들 것”

<이종헌 고산마을 이장 인터뷰>

봉양면 삼산1리 고산마을 이종헌(68) 이장을 만난 곳은 의성읍 의성마늘테마파크 뒤편에 있는 의성흑마늘빵 사무실에서였다. 그는 마을이장이자 의성흑마늘빵 제조업체의 대표이며, 영농조합법인 일산자두골의 대표이사이기도 했다.

“군에 가면서 고향을 떠나 객지 생활하다가 정년퇴직을 하고 2007년에 돌아왔습니다. 증조부 때부터 이 마을에 살았는데, 아버지가 3대 독자여서 마을에 친척은 없어요. 그래도 객지생활 하는 동안 이런저런 대소사로 1년에 열 차례 이상은 고향을 찾았습니다. 마을 이장을 2010년부터 맡았으니 올해 9년째네요.”

일찍 고향을 떠나 농사와 무관한 직장에서 생활했지만 그도 자두와는 깊은 인연이 있었다. 후쿠오카에서 자두 묘목을 들여온 박헌국씨가 그의 고모부이고, 고산마을에 교회를 세운 이영식 영수는 이 이장의 할아버지다. 또 고향을 떠나기 전 어린 나이임에도 아버지를 설득해 천수답에 자두나무를 심어 가꿨다.

“나무를 심고는 집집마다 다니며 똥거름을 모아 듬뿍 주고 정성들여 키웠습니다. 열매가 실하고 껍질에 얼룩무늬가 있어서 마을 사람들이 ‘범자두’라고 했어요. 봄에 가지치기를 다 해놨는데도, 나무가 워낙 탐스러우니까 사람들이 몰래 와서 자기 나무에 접붙이려고 가지를 잘라가기도 했죠. 그 동안 다른 사람에게 그 밭을 맡겼다가 귀향한 후 제가 돌려받아 농사를 짓고 있어요. 그런데 이런 저런 일에 쫓아 다니다보니 농사가 제대로 안 돼요. 이제 나이도 칠십이 다 돼 가는데…….”

칠십이라는 말에 나이를 물었더니 “난리통에 주민등록은 늦게 돼 있지만, 실제로는 범띠예요. 우리 마을 사람들은 6.25 전쟁이 터지자 영천 신녕으로 피란 갔는데, 제가 신녕 개울가에서 태어났지요”라고 한다.

고향마을 이장으로서 영농법인 대표로서 앞으로 꼭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물었다. 그는 우선 자두활성화센터의 회원 농가 소득 증대 사업을 정상 궤도에 올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자두 시배지 마을이라는 상징성을 살려, 내실 있는 축제·행사를 해보고 싶다는 바람도 내비쳤다.



<가볼만한 곳>

 
의성고산마을-교회
 


앞·뒤모습 전혀 다른 ‘반전 교회’

◇삼산교회

의성군 봉양면 삼산1리 고산마을에는 앞모습과 뒷모습이 전혀 다른 ‘반전 건물’이 있다. 바로 삼산교회 건물이다. 담장도 대문도 없는 교회 앞에는 2009년에 세운 ‘삼산교회선교100주년기념비’가 서 있다.

1909년 초가삼간에서 시작한 교회가 현재의 교회 건물을 짓기 시작한 것은 50주년이 되는 1959년이다. 그해 3월 초석을 놓고 5년 뒤인 1964년 4월 준공을 했다. 시간이 오래 걸린 것은 오로지 교인들의 힘으로 지었기 때문일 것이다. 온 산을 돌아다니며 큰 돌을 지게에 지고 머리에 이고 가져오면, 교인 중에 석수장이가 있어 돌을 다듬었다. 강에서 모래를 퍼 와서는 물로 씻어서 시멘트와 섞어 그 돌을 쌓아 올렸다. 그렇게 교인들의 땀과 정성으로 세운 건물이 지금의 삼산교회 건물이다.

그런데 10여 년 전 어느 목회자가 교회 정면을 벽돌로 ‘리모델링’해 지금의 모습이 됐다. 정면은 유럽 스타일을 본뜬 흔히 보는 교회 건물인데 옆과 뒷면은 투박하지만 독특한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건물이다. 고산마을을 들르면 꼭 이 색다른 교회 건물을 둘러보길 권한다.



<2천 년 전 조문국 유물 '한눈에>

◇조문국박물관

고산마을에서 금성면 탑리 방향으로 5km 정도 거리에 의성조문국박물관이 있다. 약 2천여 년 전 금성면 대리리, 학미리, 탑리리 일대에 존재했던 조문국의 유물을 중심으로 의성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살펴볼 수 있다. 전시뿐만 아니라 영화 상영, 음악회 등이 열리고,여름철에는 물놀이장까지 운영되는 복합문화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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