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스의 전직 승려
라오스의 전직 승려
  • 승인 2018.07.30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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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윤 대구새누리
교회 담임목사
얼마 전 라오스를 방문할 일이 있었다. 하루는 약속된 장소로 가려고 라오스의 간이 이동수단인 툭툭이(tuk tuk)를 불렀다. 도착 장소까지의 거리와 시간을 동행하는 지인들과 의논한 결과 2만 낍 이상은 지불하지 않기로 했다. 첫 라오스 방문이었지만 만만한 여행객처럼 보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거리에 나가 첫 툭툭이를 만나 기사와 흥정을 시작했다. “A까지 얼마에 갈 수 있나요?” 5만 낍이라는 기사의 말에 더 흥정도 하지 않고 보내고 다른 툭툭이를 세웠다. 똑같이 물어보니 이번에는 4만 낍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돈으로 약 5천원. 비싸다 생각하고 또다시 다른 툭툭이를 불러서 흥정해 보니 3만 낍은 줘야 갈 수 있다 한다.

그 정도면 갈까 생각하다가도 약속 시간에 좀 늦을지라도 2만 낍 이상은 지불하지 않으리라 생각하고 마침 지나가는 툭툭이를 세웠다. “A까지 얼마면 갈 수 있나요?” 라고 묻자 기사가 “1만 낍이요” 라고 말한다. 잘못 들었나 싶어 다시 확인해 보아도 1만 낍이란다. 아니 1만 낍이라니. 처음에 비해 오분의 일 가격이다. 정해진 가격이 없는 간이 이동수단인 툭툭이의 요금이라 하더라도 이렇게 큰 차이가 날수 있나 싶고 너무 싼 요금에 당황도 되었다.

일단 반가운 마음으로 툭툭이에 올라타서 기사에게 왜 당신은 이렇게 싸게 받느냐고 물어 보았다. 그랬더니 그 툭툭이 기사는 “이 정도 거리면 1만 낍이면 충분하다. 내가 일한 그 이상의 높은 대가가 내게 필요하지 않다”라고 말한다. 알고 보니 그 기사는 승려 출신이었다. 팔 년 정도 수도승으로 있으면서 나름 깨달은 바가 있어서 스스로 환속하여 세속에서 기사로 일하고 있다 한다. 그러고 보니 그 기사의 몸가짐과 말투가 예사롭지 않게 보인다. 우리는 약속된 장소에서 내리면서 그 기사에게 우리가 처음 생각했던 2만 낍을 애써 지불했다. 비록 약속한 시간에 조금 늦긴 했지만 가벼운 마음으로 지인들을 만날 수 있었다.

라오스는 일인당 국민소득이 1천300 달러 정도로 세계 150위권의 사회주의 국가이다. 경제 성장을 위한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베트남이나 캄보디아와 달리 아직도 라오스의 시간은 천천히 흘러가는 것 같이 보인다. 방문 전이나 방문 기간 중에도 머리에 계속 떠오르는 생각은 라오스도 우리나라나 주위 국가처럼 어떻게 하면 좀 더 잘 사는 나라가 될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동행한 지인들은 사회적 기업이 한 방법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며 그것을 통한 양국의 협력 방안을 찾아보고 싶어 한다.

그런데 전직 라오스 승려 출신인 기사의 말이 우리의 생각을 잠시 돌아보게 했다. “내가 일한 그 이상의 대가가 내게 필요하지 않다”는 그의 말이 예사롭지 않게 들린다. 일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에 이른 우리나라에도 아직까지 외국인에게 바가지요금을 씌우는 경우가 적지 않다. 신제품의 경우 기존 제품보다 훨씬 더 높은 가격을 설정하여 시장 지배를 의도하기도 한다. 가능하면 더 많은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더 빨리 더 크게 성공하는 것이고 또 그것이 우리의 행복이 아닌가?

그러나 전직 승려였던 툭툭이 기사의 운임 결정방식은 자본주의적 성공과 행복에 치우친 우리의 생각에 브레이크를 건다. 그의 운임 결정방식은 원가에 일정분의 이익을 취하고 나머지 부가이익은 다른 사람들이 누리도록 하는 것이 오히려 모두가 더 행복한 것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사회주의 국가인 라오스에서 만난 툭툭이 기사와의 짧은 대화로 말미암아 라오스의 느린 시간과 그들의 게으른 삶에 대한 인식을 달리하게 되었다. 신속한 결정, 분주한 생활, 활발한 경제 활동, 높아지는 소득, 많아지는 소유 등으로 대변되어지는 우리들의 행복은 과연 합당한 것인가? 우리는 과연 충분히 행복하고 만족한 것인가?

문득 멀지 않은 어느 날, 나도 생각한 바가 있어서 목회를 그만두고 세속의 직업을 가지게 될지 모른다. 그 때에 전직 목사였던 나는 나의 서비스나 제품에 대해 과연 어떻게 가격을 설정하고 이웃과 소통할 것인지 궁금해진다. 아마 나는 그때에 이번에 라오스에서 만난 전직 승려였던 그 기사의 운임 책정방식을 반드시 참고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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