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
장마
  • 승인 2018.07.29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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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순란
주부


폭염이 한반도를 빨갛게 달구고 잇다. 지구촌 곳곳에서 폭염으로 인한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과학자들은 ‘지구온난화’에 따른 이상기온으로 앞으로 더욱 넓은 지역에서, 더 빈번히, 더 강하게 나타날 것이라고 경고한다. 장마가 빨리 끝난 탓이라 한다. 오랜 장마가 있을 때는 그로인한 피해가 생겨 장마가 빨리 끝나기를 바랬었다. 특히 아주 오래전 그 해 장마는 참으로 길었다. 장마가 길어지자 부모님은 수확한 감자와 양파를 가져가라고 했다. 장대같은 장맛비를 뚫고 홍희는 남편과 함께 친정에 갔다. 부모님은 쌓아둔 종이박스에서 두 박스를 가져가라고 했다. 비를 맞으면서 차 트렁크에 실었다. 애써 지어 거둬들인 농작물을 내어주는 부모의 마음은 기쁨이고 풍요로움이다. 감사한 마음으로 실어나르며 부모님이 오래도록 농사를 지으실 수 있기를 바랬다.

아버지는 힘이 약해지셨다. 몸이 말랐다. 사람들과 어울려서 술 마시고, 이야기하고, 노래부르는 것을 좋아하셨었다. 마을 입구에 위치한 집이라 지나가는 사람들 중 십중팔구는 우리집에 들렀다. 물이라도 마시고 가거나 막걸리가 있으면 한 사발 쭉 들이키면서 아버지와 농사이야기를 하다갔다. 일철에는 피곤할 텐데도 저녁을 먹고나면 우리집에 왔다. 한 명이 오고, 또 한 명이 오고 아버지를 중심으로 빙둘러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겨울이면 아침부터 방에 모여서 점심을 해먹고 저녁이 되어서야 각자의 집으로 돌아간다. 아버지의 인기는 동네 최고였다.

친정집에 갈 때마다 동네 사람들이 있어서 가끔은 불편했다. 결혼생활에 대해 묻고, 애들 얘기를 하고 자신들의 자식들 얘기를 했다. 집에 동네사람들이 없는 것이 편하였다. 아버지, 엄마, 나의 가족들끼리만 있는 시간이 좋았다. 아이들이 크면서 우리집에 찾아오는 사람들이 없는 것이 적막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사람들과 왕래를 최소한으로 줄였다. 회관에 놀러가지도 않고, 밤이면 빨리 불을 끄고 TV까지 껐다. 사람들이 오지 말라는 신호였다. 불끄고 자는 방에 들어오려는 사람은 정말이지 긴급한 상황뿐이리라. 그렇게 아버지는 사람들과 스스로 단절을 하고, 집에만 있었다. 동네친구분이 오죽하면 아버지 회관에 놀러가시라고 말 좀 하라고 말씀하셨다.

사람들과 왕래를 줄이고 농사일만 하고 집에만 있는 아버지가 바싹 부스러질 것 같았다. 사 간 족발을 젓가락으로 집어 아버지 입에 넣어 드렸다. 아버지는 달게 잡수셨다. 소주 한 잔도 드렸다. 아버지는 달게 삼키셨다. 야윈 아버지가 안쓰러웠다. 아버지 입술색깔이 시퍼랬다. 아버지는 죽어가고 있는 것인가? 병환이 깊은 아버지나 어머니를 살리기 위해 약을 구하러 떠난 효자, 효녀들의 전설이 생각났다. 그 중 아버지의 버림을 받았던 바리 공주는 아버지의 불사약을 구하러 저승세계를 지나 신선세계로 갔다. 신선을 만나 나무하기 3년, 물긷기 3년, 불때기 3년 등 9년동안 일을 해주고, 신선과 결혼해 일곱아들을 낳아주고 불사약을 구했다. 이미 죽은 아버지는 불사약과 꽃 덕분에 다시 살아났다.

홍희는 아버지를 위해 신선세계에 가고 싶었다. 푸르게 변한 피를 빨간색 피로 변하게 할 수 있는 약을 찾아 오고 싶었다. 현재의 의술로는 불가능한 일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싶었다. 그러나 빗길을 뚫고 어린 아들, 딸이 있는 집으로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 차창으로 빗줄기가 세차게 퍼부었다.

2주후 아버지는 병원에서 돌아가셨다. 오빠전화를 받고 달려갔을 때 아버지는 관에 누우셨다. 차디찬 얼음장처럼 차가워진 아버지는 아무 말이 없으셨다.

문상객들이 오고, 발인을 하고, 장지에 관을 내릴 때까지 장마는 계속 되었다. 땅을 파고 관에 흙을 덮는 순간만 비는 멎었다. 그러고 장마는 계속 되었다. 그 해 여름은 슬픈 장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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